[대안학교에 가다] : 2월,
오리엔테이션

세 번째 이야기

by 그린

학교 안에서의 월화수목금토일

대안학교는 학생들의 거주 형태에 따라,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기숙사형 대안학교'와 일과가 끝나면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형 대안학교'의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향할 학교는 전국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며 모든 학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도록 하는 기숙사형 대안학교입니다.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주말마다 전교생이 귀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그 외의 주말에는 외출을 나가거나 자유롭게 학교 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평일에는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외출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말 그대로 월화수목금토일 모두를 학교 안에서 보내야 합니다. 학교가 곧 집이고 집이 곧 학교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래서 학교는 수업 공간과 기숙사 외에도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많은 장소와 야외 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학교의 커리큘럼 역시 알차게 채워져 있는 편입니다.


2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귀가 주를 제외한 거의 매일을 친구들과 붙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재미는 있겠지만 그만큼 불편한 점이나 맞춰 가야 할 것들도 많겠죠? 따라서 입학을 앞둔 신입생들이 걱정과 설렘이 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같은 학년 아이들을 궁금해하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3월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신입생들은 저마다 마음 속에 물음표 하나씩을 간직하게 됩니다.

'대체 내가 같이 살아야 할 애들은 어떤 애들일까?'

'나랑 생활 습관이 너무 다르면 어떡하지?'

'혹시....... 이상한 애들 있지는 않겠지?'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물음표가 점점 부풀어오를 즈음이면, 예비 신입생들이 학교에 모여 서로를 처음으로 만나는 오리엔테이션 날이 찾아옵니다.



학교 맛보기 캠프

낯선 사람과 갑자기 한 방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상상만으로도 당황스럽지 않나요? 마찬가지로 생전 처음 보는 사이일 것이 분명한 아이들을 갑자기 한 학교에 몰아 놓고 "이제부터 같이 살아라!"라고 하면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잡음이 굉장히 많이 들려오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입학식이 있기 전 예비 신입생들이 약 3박 4일 동안 학교에 모여 함께 생활하는 시간인 오리엔테이션을 마련합니다. 대외적으로는 학교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오리엔테이션이지만, 사실 ‘이 애들이 너희가 앞으로 3년, 길게는 6년 동안 함께할 애들이다. 서로 어떤 사람인지 미리 감을 잡아 봐라’ 하는 탐색의 장이기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기 직전까지 어깨를 맞대고 살아갈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 만큼, 모두가 기대 반 긴장 반으로 참석하는 캠프인 셈입니다.


오리엔테이션을 며칠 앞두고, 학교에서 안내문을 보내 왔습니다. 오리엔테이션 날짜와 일정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몇 가지 안내사항이 적혀 있군요.


- 각자 책을 한 권씩 지참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 개인 필기구를 챙겨 오세요.

- 핸드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는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학교의 보관함에 수납될 예정입니다.


책을 챙기라고? 전자기기는 반납한다고? 오리엔테이션에 대해 감을 잡을 듯 말 듯 아리송한 느낌이 듭니다.

과연 우리의 오리엔테이션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무엇을 할까

오리엔테이션 날이 밝았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입생 중에는 학교가 코앞인 학생도 있고, 새벽같이 일어나 먼 길을 와야 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모두 저마다의 시간에 맞추어 같은 날 학교로 향하게 됩니다.

학교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역/터미널에 도착한 뒤 다시 도시 중심부를 벗어나 논과 밭이 사방으로 펼쳐진 한적한 도로를 쭉 달려야 합니다. 한참을 달리다 자동차 유리창 너머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풍경이 점점 고즈넉해지고, '정말 이런 시골에 학교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들 즈음이면 학교의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따라가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것만 같은 작은 시골길로 꺾어 들어가면 일순간 저만치서 드드득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아, 캐리어를 흙길에 끄는 소리니 놀라지 않아도 됩니다. 그 소리가 들린다면 학교에 거의 도착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죠. 드드득 소리를 따라가면, 캐리어를 끌고 줄을 지어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캐리어 행렬에 슬며시 끼어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자원봉사자 명찰을 찬 선배들이 곁으로 다가와 길을 안내해 줄 것입니다. 오리엔테이션의 시작입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으레 다룰 법한 주제로는 단연 학교생활에 관한 전반적인 안내, 학교 지리 파악하기,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해지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오리엔테이션은 조금 남다를 예정입니다. 물론 앞서 말한 주제들 역시 오리엔테이션의 주요 일정이기는 하지만, 이곳 오리엔테이션의 핵심 스케줄은 입학식 당일에 부를 노래를 연습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입학식에서 노래라니, 무슨 말일까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 'One Day More'가 있고 <오페라의 유령>에 'Think of Me'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입학식에도 모두가 집중하는 하이라이트 넘버가 있습니다. 바로 신입생들의 합창 무대입니다. 매년 입학식에서 그 해의 신입생들은 무대에 올라 미리 연습한 합창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 합창 무대는 옹기종기 앉아 입학식을 구경하는 2, 3학년 학생들과 선생님들, 학부모님들이 가장 기대하고 집중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신입생들은 처음 만나 간단한 자기소개를 거치고 선생님들의 소개를 들은 뒤 곧장 입학식을 위한 노래 연습 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제 이름만 겨우 외울락 말락 한 생판 모르는 남들과 한자리에서 노래라니, 조금 불편한 일일 것 같죠? 처음 만난 친구들과 함께 합창 연습을 한다는 건 처음에는 꽤나 낯선 일이지만, 머지않아 낯간지러운 인사치레와 질문을 하며 어색함을 떨쳐내려 노력하는 것보다 함께 노래를 하다 가사를 틀리는 것이 오히려 서로 친해지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노련하고 유쾌한 진행에 따라 노래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음정이 어긋날 때마다 서로 숨넘어가라 웃으며 놀리는 사이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사를 가기 전 새로운 동네의 지리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은 필수입니다. 같은 이치로, 학교에 이사를 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신입생들에게는 학교의 구조에 익숙해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신입생들은 학교 이곳저곳을 누비며 구조를 파악하고,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나 학교생활 중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을 배우게 됩니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단연 그 공간의 이름입니다. 우리의 학교는 학생들이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는 형태의 이동 수업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의 모든 교실은 한 학급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적인 교실이 아닌 특정 과목을 위해 만들어진 과목 전용 강의실입니다. 과목의 특성에 맞게 꾸며진 각 교실은 모두 자신만의 고유한 순우리말 이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꼭 그 이름으로 불러 주어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교실을 ‘몇 학년 몇 반 교실’이라고 부르면 되레 이상한 취급을 받게 되죠. 교실 외에도 기숙사, 도서관, 공예실, 각종 활동을 위한 공간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봉사자 선배들의 안내에 따라 학교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문득 학교의 많은 장소들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구조가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사방에 창문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이며, 간혹 천장에 나 있는 유리창은 대체 무엇이고, 어딜 가든 하나씩 존재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넓은 공간'은 왜 있는 걸까요?

우리의 학교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지향하여, 각 건물마다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반드시 하나씩 지니게끔 설계되어 있습니다. 본관, 기숙사, 도서관 등 많은 장소의 가운데에 넓은 공용 공간이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더불어 산다'라는 것은 단지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뜻하기도 하죠. 이러한 학교의 가치관을 반영하듯 학교 곳곳에는 풀과 나무가 가득하고, 건물에는 유리창이 사용된 구조가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면 천장에 난 채광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학교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행동은 되고 어떤 행동은 허용되지 않는지 등 자세한 사항을 여러 선생님들이 여러 장소에서 돌아가며 설명하십니다. 물론 항상 스크린 앞에 선 선생님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뒤에 앉아 예능인 뺨치는 만담을 보이는 오리엔테이션 봉사자 선배들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본 신입생들은 '나도 지금 옆에 앉아 있는 이 애들과 몇 달을 살다 보면 저렇게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첫 기숙사 체험

하루 일정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가게 됩니다. 학교의 다른 건물들이 그렇듯 기숙사 역시 개방된 넓은 공용 공간(로비)를 갖추고 있는데, 이 로비는 기숙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장소입니다. 오리엔테이션 일과가 얼추 마무리된 늦은 저녁이면 신입생들은 기숙사 로비에 모여 사감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기숙사의 규칙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됩니다.


안내가 끝나면 함께 로비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습니다. 과자, 빵, 음료수 등이 담긴 간식 상자가 열릴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신입생과 선배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대개 신입생들은 간식이 나와도 시큰둥하게 받아들고 먹는 둥 마는 둥 하기 마련인데 선배들은 조금 다릅니다. 간식이 나오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환호하고, 조그만 초콜릿 하나도 누가 뺏어 먹을라 치면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이죠. 처음에는 이깟 간식이 뭐라고 선배들이 그렇게 목숨을 거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생활을 시작하면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된 이곳에서 간식은 화폐 단위 이상의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금방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간식을 먹고 나면 각자 배정된 기숙사 담당 구역별로 향해 가볍게 청소를 합니다. 사실 청소의 9할은 선배들의 몫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청소해야 하는지 온갖 쇼맨십을 발휘하여 열심히 시범을 보여야 합니다. 신입생들의 주된 임무는 온갖 종류의 청소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선배들의 시범을 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열띤 성원을 보내는 일입니다. 청소가 끝나고 마침내 밤이 찾아오면, 각자 배정된 방으로 향합니다. 여러 명이 쪼르르 누워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다음날이 되어 있곤 합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많이 시키던데요?

오리엔테이션 일정은 실제 학교 하루 일과표만큼이나 꽉꽉 알차게 채워져 있습니다. 학교 측에서는 노래 연습이나 학교 규칙 습득 외에도 신입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일정을 마련합니다.


아침마다 교실에 모여 책을 읽는 '아침 독서'는 하루 중 가장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입니다. 오리엔테이션 전 학교에서 발송하는 안내문에 '책을 한 권씩 챙겨 올 것'이라는 공지가 포함되어 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담게 될 학교는 독서에 상당한 중점을 두는 커리큘럼을 지향하고 있기에, 매년 도서관을 중심으로 각종 행사가 개최되고 실제 학교 시간표에 매일 아침 40분이 독서를 하는 시간으로 지정되어 있는 등 책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다수 존재합니다.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시간표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독서 시간 역시 학생들이 이러한 아침 독서 시간표의 리듬에 익숙해지도록 돕기 위한 것이죠. 독서 기록을 위해 받은 임시 책자에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이나 기록하고 싶은 대목을 간단히 적으면 됩니다. 입학 후에는 임시 책자 대신 더욱 공들인 디자인의 정식 독서 기록 책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 한적한 시골 동네를 빙 돌며 산책을 하는 것 역시 프로그램의 일부입니다. 이 시간에는 드넓게 펼쳐진 논밭, 인근의 저수지와 공원, 마을을 천천히 걸으며 수다를 떨곤 합니다. 학교생활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인 '주말 외출'을 위한 코스를 선생님들께 안내받기도 합니다. 학교로 오는 길이 복잡한 만큼 나가는 길도 복잡하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드넓은 논밭 한복판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 이 시간에는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도서관 홀에 빙 둘러앉아 같은 주제로 글을 쓰고, 친구들 앞에서 글을 발표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입학을 앞둔 지금의 마음', '내가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 등의 주제로 수필을 쓰기도 하고, 아무런 제재 없이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기도 합니다.


다른 학생들의 발표를 듣다 보면 입학을 앞두고 우리가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하구나, 라는 약간의 안도감과 동질감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이렇듯 함께 생활하는 며칠 동안 신입생들은 조금씩 안면을 트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됩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노래 연습 때 배운 합창곡의 가사가 조금씩 긴가민가해질 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어느덧 입학식 당일이 다가옵니다. 입학식을 기점으로 우리는 생활의 터전을 완전히 학교로 옮겨 가게 될 테니 이 무렵이면 마치 이사를 앞둔 듯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지도 모릅니다. 비록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오긴 했지만, 앞으로 어떤 사람들과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3월의 첫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제, 입학식에 참여하러 먼 길을 떠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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