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소 주간과 여름방학 맞이
청소 특수 요원을 길러내는 청소 사관학교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우리의 학교에서 여름방학을 앞두고 하는 청소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대청소 주간이 공식 일정으로 정해져 있을 정도다. 본래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달력에는 산악등반, 인문체험학습, 문화축제처럼 공식적인 행사가 적혀 있는데, 7월의 달력을 넘기면 '대청소 주간'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당당히 적혀 있어 조금 황당하기도 하다. 청소를 얼마나 전문적으로 시킬 작정이면 축제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걸까? 대청소 첫날이 밝아 오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대청소 주간은 열띤 경매로 시작한다. 전교생이 본관의 로비에 모여 있으면 선생님이 모두의 앞에 서서 청소구역를 하나씩 부르고, 아이들은 원하는 청소구역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곳에 배정되기 위해 경쟁적으로 손을 치켜든다. 가장 인기가 좋아 경쟁이 치열한 부문은 다름아닌 학급교실 청소다. 청소가 비교적 쉬운 편인 데다가 교실에 비치된 큰 스피커로 음악을 틀며 자유로운 디제잉을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실이 아닌 다른 구역을 위해 몇몇 학생들이 블루투스 스피커를 동원하여 음악을 틀어 두곤 하니 교실 청소에 배치되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교실과 반대로 분리수거장과 화장실은 가장 기피되는 청소구역의 쌍두마차다. 분리수거장은 기껏 정리를 끝내 두기가 무섭게 다른 청소구역 아이들이 새로운 쓰레기를 들고 찾아오는 바람에 아무리 치우고 치워도 쓰레기가 끝없이 들어찬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 되었고, 화장실은 그 자체로는 깔끔하고 정갈한 장소지만 매번 어김없이 정밀하고 깐깐한 청소 검사의 대상이 되며 온몸을 내던져 청소에 임해야 하는 탓에 기피 구역이라는 오명을 썼다. 한바탕 뜨거운 경매가 끝나고, 원하는 청소 구역을 따낸 학생들은 흡족한 표정으로 담당 구역으로 향한다.
대청소가 시작되면 학교 곳곳에서 서로 다른 음악소리가 들려와 마치 번화가를 걷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국어 교실 앞을 지날 때는 서정적인 발라드가 들렸다가 바로 옆 영어 교실로 향하면 정신없는 EDM이 틀어져 있고, 계단에서는 누군가 스피커로 팝송을 재생하고 있고, 반대편에서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이다. 이렇듯 자신이 엄선한 플레이리스트를 들려주는 수많은 임시 라디오 DJ들 덕에 비록 청소 과정은 조금 힘들지라도 학교의 분위기는 한층 더 흥겨워진다.
대청소가 평소의 청소 시간보다 더 흥겨운 만큼, 대청소 검사는 평소보다 더 엄격해지곤 한다. 따라서 대충 쓸고 설렁설렁 닦아 구색만 맞추려 했다가는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 간혹 청소에 누구보다 열성적인 선생님이 청소 검사 담당을 맡게 된다면 그날은 정말 근육통이 생길 만큼 청소에 온몸을 내던질 각오를 해야 한다. 화장실 얼룩은 뭘로 닦아야 하는지, 유리창을 닦을 때는 어떤 세정제를 묻혀서 어느 방향으로 닦아야 흔적이 남지 않고 깨끗하게 닦이는지, 나무바닥과 타일바닥에는 각각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등 그동안 쌓아 온 노하우를 십분 발휘할 시간이다. 지난 일 년 하고도 여섯 달 동안 겪어 온 청소 생활에서 터득한 요령을 모조리 쏟아부어 담당 구역을 책임지고 탈바꿈시켜야만 비로소 검사를 통과할 수 있다.
본관 청소가 끝났다고 빗자루에서 손을 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본관 청소를 하는 날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달력에 적힌 명칭이 '대청소 날'이 아니라 '대청소 주간'이었던 이유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본관 청소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다음은 기숙사를 청소할 차례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본관 청소가 순한 맛이라면 기숙사 청소는 매운 맛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숙사 대청소 날이면 모두가 보다 편안하고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한 채 양손에 청소도구를 들고 신들린 청소를 보여주곤 한다.
기숙사 청소 구역 배정은 '에이스'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로 해당 구역의 청소에 정통한 3학년이나 2학년을 사감 선생님이 특정 구역에 배치하면 나머지 아이들은 그 한 명을 중심으로 체계를 정해 청소를 돕곤 한다.
청소를 위해 온 사방의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학교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간혹 자연으로부터 거대한 벌레들이 넘어올 때가 있다. 청소 도중 기숙사 한구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갑자기 커진다면 높은 확률로 그곳에 벌레가 출몰한 것이다. 용감하게 기숙사로 침입하는 벌레들은 그 종류도 정말 다양해서, 학교생활을 몇 년간 하다 보면 수많은 벌레와의 조우를 통해 더 이상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강인함은 물론 척 보자마자 벌레의 종류를 구분해낼 수 있는 전문성까지 갖추게 된다.
로비를 닦는 것은 기숙사 청소의 백미 중 백미로 꼽힌다. 모두가 대걸레를 하나씩 잡고 한쪽 벽에 일렬로 섰다가, 사감 선생님이 신호를 주면 저마다 기합을 넣으며 열심히 대걸레를 밀고 달려나가는 레이싱이 개최되기 때문이다. 로비까지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길었던 기숙사 청소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대청소 주간이 지나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숨을 좀 돌릴 수 있다. 그러나 노는 것도 질리기 마련이라고, 산책하기, 책 읽기, 낮잠 자기, 교실에 모여 영화 보기 등 많은 여가 활동을 몇 번씩 반복하다 보면 조금 지루해진다. 이 무렵 아이들이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은 하나로 통일되곤 한다.
"내일은 뭐 하지?"
한가로움이 짙어져 무료함으로 변하면, 이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들이 가끔 시끌벅적한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예고 없이 기숙사 로비가 노래방으로 변하는 날이 있다. 주로 학년에서 행동대장 역할을 맡는 아이들이 사감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 노래를 틀 권한을 따낸 경우인데, 드물게 사감 선생님이 먼저 나서서 음악을 틀어 주시기도 한다. 이런 날이면 모두가 기숙사 로비에 모여 노래를 틀고 무아지경의 댄스 파티를 벌인다.
노래방 역할을 톡톡히 해낸 기숙사 로비가 그 다음 날이면 게임의 장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다. 하루는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서니 로비에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서 단체로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단체로 배가 아파서 누워 있나 싶어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우리 '마피아 게임' 하는데. 너도 할래?"
전자기기와 외부 문물의 반입이 없는 곳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놀이가 자연발생했다는 이론적 관점을 생생히 체득하게 된다. 변변찮은 보드게임이나 놀이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은 별의별 놀이를 만들어 정말 잘 논다. 모두가 마피아 게임을 비롯해 둥글게 모여 앉아서 할 수 있는 오만 종류의 게임을 숙지하고 있다.
놀이 본능은 기숙사 안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가끔 운동장으로 나가 보면 한구석에서 때아닌 전통놀이 한마당이 열려 있기도 하다. 아이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꼬리잡기, 비석치기처럼 대체 어디서 배워 왔을지 궁금한 온갖 정겨운 놀이들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학교에서 방학을 기다리며 벌였던 가장 황당한 '시간 때우기'는 도서관 내부 돌기였다. 그 아이디어는 하릴없이 데크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보던 친구들 사이에서 대뜸 이런 말이 튀어나오며 시작되었다.
"심심하다. 운동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럼 운동장이라도 뛰어."
"날이 너무 덥잖아. 시원한 곳에서 운동하고 싶은데."
그러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도서관 안이라도 한 바퀴 돌래?"
일순간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곱씹어 볼수록 괜찮은 제안이었다. 도서관도 운동장처럼 둥근 구조를 지니고 있고, 거기다 에어컨이 틀어져 있기까지 하다. 도서관 가장자리 길을 따라 아무에게도 방해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걸어다니면 운동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실천에 옮겼다. 마치 찾고 싶은 책이라도 있는 척, 둥근 도서관 홀의 가장자리를 따라 천천히 돌고, 돌고, 또 돌았던 것이다. 아마 선생님들이 아셨다면 황당해서 뒷목을 잡으셨을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저마다의 독특하고 때론 황당하기까지 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면, 어느새 다시금 여름방학이 훌쩍 코앞까지 다가와 학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