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채우기 전엔 결혼 생각 말아라."
10대부터 아버지로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이다.
.
.
그리고 어느 날, 거실에서 여느 때처럼 둘이 술 한잔 기울이던 중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아들, 이제 네가 누굴 데려오든 아빠는 허락이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참 연애에 있어서는 부지런했다. 돌이켜볼수록 풋풋했던 열일곱, 첫 연애를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나는 열 번의 연애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떤 것을 얻길 바라며 어린 나에게 그런 말을 했으며 실제로 그 간의 경험들이 나에게 알려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혼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결혼은 나의 인생 최대의 과제이자 동시에 버킷리스트였다.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였고 지금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하트시그널 4'를 정주행하다 왔으며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런 나에게 사랑의 종착지인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며 요즘 같은 세상에 비혼 주의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지금 내면적으로 결혼에 대한 준비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
#감정
인간의 쾌락 수치 중 마약과 도박 다음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 좋아하는 이성과의 교제 성공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칭찬, 감동, 위로, 성취보다도 압도적으로 높은 순위를 보이고 있는데 출처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공감한다. 밤을 꼬박 새우고도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고 말 그대로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던 당시를 되돌아보면 마약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쾌락이 맞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세상을 무너지게 하기에도 충분했다. 지금은 당시의 나에 비해 나이도 경험도 많아져 조금은 무뎌진 나로선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 하긴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어려움을 잘 견뎌냈음에 무한한 존경을 보낸다. 인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감성 중에서도 극도로 자극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연애였다. 연애와 이별을 한다는 것은 크고 다양한 감정에 노출된다는 것이고 또 극복한다는 것이다.
#관계
'오래 연애해 본 남자는 잡아라.'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언제나 관계 속에 노출되어 있으며, 연애는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연애 경험은 관계를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 역량을 가지게 한다. 상대적으로 외동보다 형제를 여럿 둔 이들이 그러한 것과 비슷하다. 연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언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서로 간에 알게 되면서 지식과 노하우를 습득한다. 이는 전부 필수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경험
관계뿐만 아니라 연애는 다양한 경험을 가능케 한다. 아무래도 편한 친구들을 만날 때보다는 데이트를 준비하면서 더 많은 곳을 찾아보고 실제로 가보게 된다. 특히나 남자들은 PC방, 노래방, 당구장을 떠나 여러 맛집과 카페, 공방 등의 핫플을 다니게 되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다. 성별을 불문하고 연애가 장기화될수록 서로의 취미나 생활을 공유하며 개인으로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 또한 연애로 인해 접해보고 시작하게 되어 지금까지도 즐기고 있는 취미들이 많이 있다.
#기회비용
얻는 게 많은 만큼 연애로 인해 잃게 되는 것도 정말로 많다. 우선 어릴 적 연애일수록 자유를 잃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넘쳐나는 에너지를 연애에 쏟아내게 되므로 뜨거운 사랑을 하는 만큼 집착과 질투도 지나칠 때도 많다. 혹시 지금 그러한 상황을 겪고 있거나 지난날에 대한 상처로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면 그저 어린 날의 추억으로 좋게 생각하길 바란다. 정말 많은 연애 상담을 해봤지만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는 드라마라고들 하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볼 때는 지지난 주 들었던 다른 친구의 이야기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또 하나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이다. 연애만큼 꾸준한 고정 비용을 요구로 하는 것도 많이 없다. 앞서 말한 대로 많은 경험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한정된 시간과 돈을 연인에게 많이 투자한다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다른 곳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할 수 없다는 말과 동일하다. 가족, 친구, 본인에게 드는 비용이 아무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애는 사람을 많이 지치게 한다. 친한 친구와의 사소한 말다툼도 나를 그렇게 피로하게 만드는데 나랑 가장 가까운 관계였던 연인과의 갈등 혹은 이별은 몸과 마음을 모두 지치게 만든다. 말 한마디에도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가도 또 다른 말 한마디가 그날 나의 하루를 망쳐놓기도 한다. 이런 담금질을 견디기란 웬만한 멘탈을 가지고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나 다신 연애 안 한다.'라는 말이었다. 숙취로 고통스러워하며 '내가 다시 술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을 수십 번 반복하고도 그날 저녁에 술자리에 앉아있는 모습과 겹쳐진다. 그 고통을 감수할 만큼 좋아서일까.
#끝으로
첫사랑도 있었고 짝사랑도 있었다. 밤새 고민해서 고백을 해본 적도 누군가의 밤샘이 담긴 고백을 받은 적도 있다. 먼저 이별을 고해본 적도 원치 않던 이별을 통보받은 적도 있었다. 참 미웠던 사람이 있었고 지금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 지난 시간들로 인해 알게 된 것은 딱 하나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 지금 누구보다 행복할 신혼부부도, 만난 지 60년이 넘은 지금도 손을 잡고 다니는 노부부도 모두 본인이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고 상대방 또한 그런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미운 사람이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저 서로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이 준비란 상대적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낀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만난 연인은 상대방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울지라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상대의 탓이 아니라 내가 준비되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도 후회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그저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길 바란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