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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훈 Apr 26. 2023

웰 다잉(Well-Dying) : 바르게 죽기(2)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


웰 다잉(Well-Dying) : 바르게 죽기(1)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적이 있나요?"



흔히 말하는 마음의 준비 따위가 아닌 마지막을 위한 진짜 준비가 필요했다.



만약 본인이 일 년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보내야 '잘' 죽을 수 있을까? 누구나 준비를 하려 들 것이다. 먹고 싶은 것도 다 먹어보고 가고 싶은 것도 가보고 다퉜던 이와 화해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사랑한다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미련이 없을 순 없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미련을 덜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가능한 한 잘 죽기 위해서. 하지만 위 상황에는 문제가 2가지 있다. 우선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도 나를 비롯한 모두의 죽음을 예견해 주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앞두고 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떤 행동이든 간에 '나름 최선'일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린 나이에 맞이할지도 모르는 이별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 필요하다.


먼저 우리는 나를 포함한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이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오늘 현관문을 나오면서 본 가족들과 어제 다퉜던 친구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원망스럽게도 운명은 나의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의 이별을 항상 오늘 혹은 내일로 둔다. 그리고 이 가정에서 비롯된 행동들을 매일 수행하려 한다. 처음에는 '그게 마음처럼 될까?'하는 의문이 반드시 든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이 또한 익숙해진다. 사랑하는 이들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굉장한 거부감을 가져올 텐데 그마저도 익숙해진다니 그 거부감이 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익숙해진다는 것은 매 순간 이별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슬퍼한다는 것에 익숙해진다는 말이 아니다. 대신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답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오늘 부모님한테 전화를 할지, 사랑한다(미안하다) 말할지, 물어봐야 할지, 만나봐야 할지...'와 같이 관계와 관련된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내일 후회할 것이라면 지금 하는 것이 맞다. '말이나 쉽지'라고 생각이 든다. 사람에 따라 큰 노력이 필요 없을 수도 혹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연코 그 사람이 떠나 간 후에 느낄 후회의 고통보다는 그 대단한 용기 혹은 노력을 내보는 것이 낫다.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매일 저녁 돌아가며 할머니, 할아버지와 통화하던 5분이 사라졌다. 알람 시계 마냥 일일연속극 전후로 전화 하셨던 할머니가 안 계시자 우린 덩달아 할아버지와의 연락도 뜸해졌다. 그래서 개인 휴대전화로 어색하게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어봤다. 할아버지도 나도 둘 다 무뚝뚝한 편의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경상도 남자 둘이서 1분 이상 통화를 유지하기는 어려웠다. 돈이나 시간, 큰 노력이 드는 것도 아닌 전화 한 통도 어려웠다. 처음에는. 하지만 3년 정도 지나 대학에 진학한 후를 생각해 보면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하루는 60년이 넘는 나이차를 극복하고 할아버지와 통화하다 싸웠다. 무슨 내용으로 서로 섭섭해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 날 나는 여전히 뾰로통했지만 이미 앞서 말한 무언가를 선택할 때의 기준이 체화된 상태였기 때문에 고민 없이 도서관 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를 걸었다. 약오를 만큼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셨다. 나는 기억을 못 하시나 생각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던 중 할아버지는 "가족끼리는 하루 이상 나쁜 마음을 가지는 게 아니다."라고 하시며 오랜만에 소싯적 교장 선생님의 포스(할아버지는 오랫동안 교직에 계셨다)를 뽐내셨다. 그 말을 듣고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그날도 나의 선택에 만족하며 열람실로 올라갔다. 또 하나의 변화는 혼자 시골 가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 할아버지 댁을 방문하면 나름 재밌는 일이 많이 생긴다. 한 날은 담배 냄새가 적어도 십수 년은 밴 것 같은 다방을 가서 생전 본 적 없는 알 수 없는 곡물 블렌디드(?)를 마셨는데 무슨 메뉴인지 몰라 다신 먹을 수 없지만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또 하루는 국가 유공자 할아버지의 현역 때 한국전쟁 썰도 들었는데 내 생 최고로 재미있던 군대 썰이었다. 군대를 갔을 뿐인데 전쟁이 나 탈영하셨다가 양심 기간에 자진 귀대해서 군 복무를 잘 마치셨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또 몇 년 흘러 이제 할아버지와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을 때 나는 당연히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할아버지가 병원에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뽐낼 때도 이제는 말씀을 못 하실 때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눴다. 돌이켜보니 준비되지 못한 채로 할머니를 보내야 했던 내가 겪었던 그 아쉬움을 다시 겪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름 최선으로 할아버지와 많은 시간들을 보내왔고 여기선 말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할아버지와 내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작은 생각으로 쌓아온 큰 보상이었다.


이처럼 익숙해지면 가능하다. 단지 내일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는 것들이 모여 그들과 이별할 때 나에게 좋은 기억이라는 큰 선물로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욱할 때면 이젠 이 생각이 먼저 들어 절로 사그라든다. 막상 사그라들거나 먼저 사과하고 보면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고 심지어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아들이 곧 서른을 바라보는데도 아직도 뽀뽀를 좋아하신다. 누군가는 부러워하고 누군가는 징그러워한다. 나도 당연히 부러워하는 쪽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함께해 주지 않는다. 언젠가 하고 싶어도 못할 때가 후회될 것이라면 망설이지 말자. (물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다음은 '나름 최선'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말한 대로 아무리 가정을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고 노력을 한들 우리에게 이별은 너무나 슬프다. 정말 이뤄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들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나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위독하신 상황에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멀쩡히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몰입해선 안된다. 이별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냥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선택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 과한 대처는 오히려 나를 해친다. 매일 같이 부모님과 애인, 친구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고 좋은 것을 사줄 수는 없다. 하지만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면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을 딱 그 정도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다. 과몰입해서는 나의 삶이 사라지고 결국 본인을 지치게 만든다. 가족, 사랑 같은 단어가 무서운 이유는 모든 것에 우선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어떠한 종류의 이벤트든 항상 사람과 함께한다. 무엇이든 혼자서는 잘 해내기가 버겁기 마련이다. 죽음도 마찬가지이다. 바르게 죽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잘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작 시험 한 번에도 그렇게 노력하고 축하해 온 나날들이 있는데 무려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누구나 겪어야 할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고민하고 또 수행하면서 스스로 많이 건강해졌음을 체감해 왔다. 사랑하는 이들의 'Well-Dying'을 함께 하는 과정이 나의 'Well-Being'으로 연결된다.


위 글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운 현생 1회 차 한 20대 청년이 기록하는 일, 사람, 환경 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또 다른 이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이에게는 지난날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청춘기록 #청춘을글이다 #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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