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국의 하우스메이트, 그리고 나의 첫날밤
지금 살고 있는 집주인은 중국인 여자다.
밴쿠버에서 방을 알아보러 다니던 중 집주인 다섯 명 중 세 명이 중국인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직접 보니 실감이 났다.
지금 사는 집은 신식으로 리모델링된 데다가 방도 넓고 가격도 괜찮아서 선택했다. 렌트비는 싸진 않지만, 내가 본 다섯 곳 중에서는 조건 대비 나쁘지 않았다.
첫 번째로 본 집은 한국인 집주인이었는데, 베이스먼트의 작은 ‘덴’ 방이었다. 여성 전용이라 룸메이트가 전부 여자 셋. 그중 한 명이 토론토로 코업을 가면서 방을 내놓은 거라고 했다. 나머지 두 명은 워홀로 와서 카페 아르바이트 중이고, 한 명은 ECE로 영주권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집주인은 친절했지만, 규칙이 빡빡했다. 여성 전용이라 이모부나 아빠도 못 들어오고, 방 사진도 찍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화장실을 여자 다섯 명이서 공유해야 했고, 냉장고에 붙은 청소 당번표를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돌아가면서 청소를 정해진 날 꼭 해야 한다는 말에 이 집은 아니다 싶었다. 주방 식기를 모두 공유하는 것도 걸렸다. 프라이팬이나 냄비를 각자 쓰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프라이버시가 부족할 것 같았다.
두 번째 집은 남자 넷, 여자 둘이 사는 곳. 역시 중국인 집주인. 외국인 남자 룸메이트 한 명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자유롭고 쿨했다. 여자들만 있는 집보다 스트레스 덜 받을 것 같았지만, 바로 입주가 안 된다고 해서 아쉽게 패스했다. 7일 동안 임시 숙소를 구하기엔 기간이 애매했다.
세 번째는 완전 고시원 스타일. 이탈리아 남자, 한국 남자, 인도 남자, 일본 여자.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이었다. 화장실이 두 개라 괜찮았고, 서로 터치 없이 개인주의적인 분위기는 마음에 들었지만, 집이 전체적으로 낡고 어수선했다. 방은 넓지만 식기가 오래돼 있었고, 다른 집보다 렌트가 100불 이상 비싸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 집. 계약한 바로 그곳이다. 역시 중국인 집주인인데, 집은 신식으로 리모델링돼 깨끗했다. 위층과 베이스먼트에 총 11명이 사는데 모두 여자였다. 베이스먼트와 가격 차이가 거의 없어서 위층 방을 선택했다. 룸메이트는 아프가니스탄, 한국, 베트남, 타이완 출신이고 곧 일본인 여자도 들어온다고 했다. 인종 구성도 다양하고 분위기도 순해 보였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가격을 양심적으로 받는 느낌이라 바로 계약했다.
아이디와 워크퍼밋을 보여주고 계약서를 쓰고 보증금을 냈다. 방 열쇠를 받은 뒤 부모님과 짐을 풀고, 근처 한국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부모님은 다시 시애틀로 돌아가 귀국 준비를 하러 갔다.
밴쿠버에서의 첫날밤이다. 처음엔 다운타운에 살지, 광역 밴쿠버를 선택할지 고민했는데 이 동네에 와보니 나쁘지 않다. 웬만한 건 걸어서 갈 수 있고, 밴쿠버가 왜 ‘차 없이 살기 좋은 도시’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다운타운이 직장이 아니라면 굳이 그 복잡한 한가운데 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삿짐을 옮기는 걸 도와준 이모부, 이모, 그리고 부모님 덕분에 첫날을 무사히 마쳤다. 마지막으로 킴스마트에서 장을 보고 냉장고를 채워 넣었다.
— 밴쿠버에서의 첫 페이지가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