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사정을 나눠도 통장은 각자 지킨다
낯선 집에서 오가는 대화들
오늘은 부엌에서 룸메이트들과 마주 앉았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집 얘기부터 시작하니 대화가 의외로 잘 풀렸다. 다들 이 집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불평인지 공감대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숟가락처럼 가볍게 오갔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에서 제일 먼저 친해지는 건, 역시 집에 대한 불만과 소소한 칭찬들이다.
“여기 오신 지 오래됐어요?”
“아뇨, 저도 얼마 안 됐어요.”
이런 식으로 시작된 대화는 금방 서로의 사정으로 흘러갔다.
한 룸메이트가 내게 물었다.
“혹시 워킹비자로 오셨어요? 일은 구하셨어요?”
나는 대충 웃으며 말했다.
“토론토에서 학교 마치고 왔어요.
밴쿠버는 처음이라. 일은 구했는데,
천천히 적응하고 고르려고요.”
그분은 7월부터 이 집에 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식 일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어디서 장을 보는지, 교회는 다니는지. 부엌에서 오가는 말은 늘 비슷하고, 묘하게 가볍다.
타이완에서 온 룸메이트는 교사였다고 했다. 아이들 얘기를 할 때 잠깐 빛나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 룸메이트는 한국에서 막 돌아왔다고 했다. 밴쿠버에서 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는 말에, 그가 익숙한 곳에서 다시 낯설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점심은 카레였다. 양배추와 계란, 토마토를 넣고 김치와 함께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한 끼였는데, 이상하게도 대화를 하고 난 뒤라 그런지 맛이 조금 달랐다. 향신료보단 사람의 목소리가 더해진 맛이었다.
부엌 한쪽에 놓인 작은 식탁 위에서 각자 다른 인생의 조각들이 잠깐 섞였다. 타이완의 교실, 한국의 거리, 그리고 내가 지나온 토론토의 시간까지. 전혀 닿을 것 같지 않은 길들이 이 좁은 부엌 한가운데서 한순간 겹쳤다.
그 순간만큼은 이 부엌이 잠깐 ‘집’ 같았다. 하지만 알았다. 내일이 되면 우리는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지금 이 작은 교차점은 오래된 인연이 될 수도, 그저 스쳐간 흔적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공간이 붙잡고 있는 건 집이 아니라, 잠깐 머무는 사람들의 흔들리는 시간뿐이다.
저녁 전에 운동을 갔다. 러닝 30분, 근력운동 3세트. 숨이 가빠지고 땀이 흐르자 온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이상하게도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머릿속이 금세 가득 차고, 운동을 하면 그게 조금씩 흘러내린다. 오늘은 그 두 가지가 묘하게 맞물린 하루였다.
채우고 비우는 걸 반복하는 게 결국 사는 일인가 싶다. 머릿속은 대화로 꽉 채우고, 몸은 땀으로 비워내고. 그래도 내일이 되면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질 거고, 다시 다른 땀으로 씻겨 나갈 거다. 어쩌면 이건 성장이라기보단, 버티기 위한 순환일지도 모른다.
서른이 넘어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늘 같은 결론에 닿는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누가 더 잘 살고 못 사는지 따지는 건 결국 의미 없는 싸움일 뿐이다. 중요한 건 각자의 길이 다르다는 걸 그냥 인정하는 것. 그걸 받아들이면 관계가 조금은 덜 피곤해지고, 나 자신도 괜히 덜 예민해진다.오늘 부엌에서 잠깐 나눈 대화가 괜히 오래 남는다. 낯선 집, 낯선 사람들. 그런데도 이런 자리에서 오가는 말들이 제일 강하게 박힌다. 거창한 얘기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런 순간이 기억된다.
평범한 식탁, 평범한 대화. 잠깐의 시간이지만, 어쩌면 이런 게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신호일지도 모른다. 다들 곧 제각각의 삶으로 흩어질 테니, 이런 대화가 남기는 건 울림보단 ‘잠깐 스쳐 간다’는 현실감에 더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