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갈다 멘탈도 갈림

시험, 실습, 사람... 나는 지금 버퍼링 중

by K 엔젤

요즘 아침에 시리얼이랑 아몬드 우유를 먹고 학교에 간다. 너무 일찍 먹어서 그런지 실습장소에 도착하니 벌써 배가 고팠다. 그래서 오늘은 점심으로 싸 간 땅콩치즈바나나 샌드위치와 요플레를 오전 9시 반쯤에 먹어버렸다. 결국 점심시간엔 Saatwik이랑 Shivneet이랑 함께 서브웨이에 가서 따로 사 먹었다. 점심 먹으면서 “너는 언제부터 일자리 지원(job apply)을 할 거야?” 하고 서로 근황 얘기를 나눴고, “다른 친구들은 어디에서 실습 중이래?”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러던 중, 영주권을 따면 캐나다 경찰이 되고 싶다는 Karam이 갑자기 “지금 강사랑 11번만 더 만나면 수업 끝나는 거 알지?”라고 물었다. 나는 놀라서 “정말?” 하고 말했고, “시간 진짜 빠르다(Time flies)!”라고 했다.


실습 올라가기 전, 강사님이 이번 교육 과정에서 진행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다음 주 화요일에 중간평가(Midterm)가 있고, 지금까지 우리가 환자들을 어떻게 케어했는지를 토대로 합격(Pass) 또는 불합격(Fail)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그리고 26일부터는 학교 강사가 아닌, 실습기관에 근무하는 케어에이드(HCA: Health Care Assistant)들이 우리 교육에 참여해, 우리가 환자를 케어하는 모습을 평가하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실습기관의 HCA들이 우리를 지도하고 관찰하게 되는 거다.


나는 ‘시험’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쪼여온다. 예전에 미국에서 해부생리학(Anatomy & Physiology) 수업을 들었을 때도 실습(Lab)에서 Pass/Fail 방식으로 평가받았는데, 그때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공부도 안 되고, 잠도 못 자고, 결국 불합격한 적이 있다. 그게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실습평가 방식도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오늘은 Hirji 할머니를 먼저 케어했다. Walji 할머니와는 성격도 다르고, Hirji 할머니는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하셔서 침대에서 기저귀를 갈고, 양말을 신기고, 로션도 발라드리고, 옷을 갈아입히고, 앉기-서기 기구(Sit-to-Stand)를 이용해서 휠체어에 앉히고, 화장실에 모시고 가서 틀니를 끼워드리고, 장신구(주얼리)를 착용시켜 드리고, 안경과 스카프까지 챙겨서 다이닝룸까지 모셔다 드렸다.


오늘은 두 분을 모두 케어하다 보니 좀 정신이 없었다. 내가 너무 분주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서였는지, 담당 HCA가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Walji 할머니 케어를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했다. 원래는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케어해야 했는데, HCA가 다시 시범을 보여줬다. 나는 모든 걸 빠르게 끝내고 잘해보려고 하다 보니 너무 급하게 움직였던 것 같다. 그래서 HCA가 “천천히 해도 돼, 그렇게 서두를 필요 없어”라고 말해줬다.


두 번째 케어까지 마친 뒤 강사님이 나를 부르셨다. “원래는 잘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왜 그 모습을 안 보여줬니?” “리프팅 기구(lifting equipment) 사용하는 것도 보여줘야 다른 환자도 맡길 수 있는데, 왜 혼자 하지 않았니?”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씀드렸다. “저는 배울 때 HCA가 시범을 보이고, 그걸 제가 노트에 적고, 그다음에 천천히 따라 하면서 익히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두 번째 환자 케어는 아직 과정이 익숙하지 않아서 기록에 더 집중했어요.”그랬더니 강사님이 “기록보다는 직접 해보면서 몸으로 익히는 게 더 중요해. 그래야 내가 너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어”라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또 솔직하게 말했다. “시험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고,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 HCA가 뭔가 지적하거나 지도하면 자신감이 떨어져서 행동이 더 위축돼요. 리프팅 기구도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HCA가 보고 있으면 더 긴장돼요.” 나는 원래 하나하나 확실히 이해하고 익혀야 마음이 편하고 자신감이 붙는 스타일이라고 말씀드렸다.


강사님은 “여기서 오래 일해서 능숙해 보이는 HCA들도 결국엔 똑같은 케어에이드야. 실제 평가자는 나니까 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보여줘야 해”라고 하셨다. 또 만약 HCA가 잘 안 알려주거나 너무 까칠하게 굴면, 본인이 학교와 실습기관 사이에서 조율하고 있지만, 문제 생기면 반드시 자기가 나서서 도와줄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조금 안심이 됐다.


점심시간엔 흐름표(flow chart)와 배변 기록표(BM chart)를 작성했고,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음료 나르는 일 외에는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때 Karam이 나에게 와서 “너 담당 HCA 괜찮던데 왜 그래?”라고 묻길래, 나는 “응, 잘 알려주고 좋아. 근데 그분이 날 평가한다고 생각하니까, 지적을 듣거나 가르침을 받는 것도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거야”라고 답했다. 내 HCA는 필리핀에서도 케어에이드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Taran의 클라이언트인 중국계 할아버지가 식사 중이셨는데, 너무 잘게 썰어준 걸 보고 내 HCA가 “그분은 손으로 드실 수 있어. 손을 쓸 수 있는 분들은 혼자 드시게 해도 돼. 너무 느리게 드시면 안 돼”라고 알려줬다. 자립을 돕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다시 느꼈다.


오늘도 하루가 금방 갔다. Hirji 할머니께 컬러링북을 갖다 드리고, 화장실 가실지 여쭤본 다음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HCA들이 사용하는 방법들과 우리가 배운 이론 지식을 어떻게 조율해서 현장에 적용했는지, 또 여러 종류의 슬링(sling: 들어 올리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중요한 건 정석대로, 내 몸을 보호하면서 바른 자세(body mechanics)를 유지해 케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실습이나 평가 때 잘 보여주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습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인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사람마다 케어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이 정말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운 하루였다. 성격이 급한 나로서는 요즘 벌써부터 “어디에 취업해야 하지?”, “밴쿠버에서 과연 취업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하지만, 차근차근해나가면 방법이 보일 거라 믿는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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