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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방 구하기 전쟁

부동산 판 오징어 게임

by K 엔젤
방 구하기, 그 치열한 전쟁


사실 요새는 일하는 곳 근처로 이사 가려고 집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혹시라도 지금 다니는 일을 그만두게 될까 봐, 결국 그 동네로 집을 보러 가지 않았다. 전화로 “못 갈 것 같다”라고 했더니, 집주인은 중국인 할아버지였고 같이 살아야 한다며 남자만 받는다고 했다. 아, 어차피 들어갈 수 없는 집이었구나. 찜찜했지만, 마음 한편이 정리되니 이상하게 편안했다.


요즘 내 집 기준은 점점 명확해졌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 남자만 사는 집, 남자만 받는 집은 바로 제외.

그렇게 걸러낸 뒤, 야간 근무가 끝나자마자 리치먼드로 방을 보러 나섰다.


리치먼드에서 방 구하기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사기도 많았다. 먼저 연락처를 받아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500불에 개인 욕실이라는 광고를 보고 문자를 보내자, 답장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WhatsApp 번호를 달라더니, 프로필은 비즈니스 계정에 여자 사진. 질문은 “언제 이사 오냐, 얼마나 살 거냐, 가구는 있냐.” 신청비 70불을 내야 신청서를 주겠다며 디파짓도 선불 요구. 환불 가능이라지만, 이렇게 돈 이야기가 먼저 나오면 이미 게임 끝이다. 순간, 속이 싸~하게 얼어붙었다. ‘아, 스캠이구나.’


결국 후보는 몇 개로 압축됐다.


첫 번째 집은 인도 집주인. 사진과 실제가 달라 찜찜했다. 875불을 850불로 깎아준다더니, 작년엔 1000불 받았다고 거짓말까지 했다. 결국 연락 차단.


두 번째 집은 중국 아주머니. 친구 방문 금지, 집주인·아들·나 셋이 함께 살아야 한다. 친구 초대가 안 되면 끝이었다.


세 번째 집은 또 다른 중국 아주머니. 방값은 평균보다 약간 비쌌지만, 부엌과 욕실이 분리되어 있어 혹시나 하고 가봤다.


집 안을 걷다 보니 넓고 깨끗했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구조였다. 집주인 부부, 아들 부부, 한국인 남자 한 명과 함께 살고 있었다. 요리는 제한적이었다. 기름 튀기거나 국물 요리는 일주일에 한 번만 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인 남자는 집에 거의 없고,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고 했다. 주방에서 나는 오래된 냄비 냄새와 미지근한 공기가 왠지 불편하게 다가왔다. 친절하게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었지만, 마음 한쪽은 여전히 애매했다.


마지막 집은 가나 남자가 소개해 준 곳이었다. 원래 에어비앤비였지만, 장기 거주를 원하는 손님 때문에 렌트로 바꾼 집이었다. 집주인은 타이완 부부, 세입자는 중국 남자 1명, 가나 커플, 나이지리아 남자 2명, 캐나다 승무원 여자 1명, 짐바브웨 남자 1명. 인원은 많았지만, 신식 아파트 구조 덕분에 프라이버시는 잘 지켜졌다.


사람들도 대부분 각자 방에서 식사했고, 거실에서 수다 떠는 일은 드물었다. 현관도 메인문과 사이드문으로 나뉘어 있어, 내가 사이드문 옆 방에 살면 굳이 메인문을 거치지 않고 바로 드나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게스트 초대 가능. 집주인도 쿨했다. 영어가 서툴러도 번역기를 써서 소통할 수 있었고, “1년 살면 월세 조금 깎아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배달 음식을 시켜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피곤했지만, 오늘은 뭔가 성취한 기분이었다. 방 구하기라는 전쟁 속에서, 드디어 살아볼 집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작은 성취감이 함께 찾아왔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100% 만족한 방은 없었다.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이 집이 맞나?’ 하는 작은 고민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적어도 당분간 살아볼 집을 찾았다는 사실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 충분히 안도했다. 마음속 한쪽에서 ‘다음번엔 더 나은 집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기대와 설렘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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