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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짤린건가요

캐나다식 해고 통보

by K 엔젤

모처럼 맞은 휴무를 맞아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지만, 왠지 받아야 할 것 같아 전화를 받았다. 부서 총괄 책임자인 디렉터 신디아였다. 그녀는 우리 팀과 함께 일해본 소감과 오리엔테이션 경험, 혹시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물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은 없고, 오리엔테이션도 잘 마쳤으며 이제 시프트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저께 오리엔테이션 동안 네 행동이 보고되었어. 무슨 일 있었니?”

순간 멍해졌다.

내가 “아무 일 없었다”라고 하자, 신디아는

“네가 오리엔테이션 때 일 인하고 잠을 많이 잤다는 사실이 보고되었어. 사실이야?”라고 되물었다.


나는 당황하며 설명했다.

“오버나이트 근무 때는 일이 별로 없으니 중간중간 쉬어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트레이닝한 사람도 이불 가져와 누우라고 해서 따라한 것뿐이에요. 분명해야 할 일은 다 마치고 퇴근했습니다.”

알고 보니 첫날 나를 맡았던 로나는 나에 대한 평가를 “질문이 많고 일에는 관심 없고 정규직 되는 데만 관심 있어 보였다”라고 보고했고, 마지막 날 같이 일했던 리나는 “ 쉬는 시간을 너무 많이 가졌고 잠만 잤다”라고 보고했다. 결국 두 번이나 리포트가 올라 케어 디렉터 귀에까지 들어간 셈이었다.


신디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환자를 케어하는 일인데 잠자는 건 허용되지 않아요.”


신디아는 이어 말했다.

“다른 팀원들이 네가 오티 때 지각도 많이 했다고 보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너에게 계속 일을 맡겨야 할지 아직 확신이 없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신디아에게 물었다.

그럼 혹시
저는 짤... 린 건가요?"



"네가 원한다면 너에게 오리엔테이션 기회를 한 번 더 줄 수도 있다. 일단 다른 시니어 동료들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


애매모호한 답변을 남긴채 신디아는 전화를 끊었다.

그 순간, 나는 몸을 쓰는 일보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버티는 게 더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내심 인터뷰 때 좋은 인상을 주었던 헤일리가 혹시 이 소식을 듣고 나에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내가 이미 잘렸다는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 돌까 하는 걱정이 마음을 지배했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런 불안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두 얼굴의 동료들에게 배신감도 들었다.

확실한 것은 나는 해야 할 일을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했다는 것. 차라리 내 앞에서 뭐라고 말을 하지 뒷말은 겁쟁이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는 잘한다고 칭찬, 뒤에서는 열라게 씹는 것.

이게 캐나다식 해고 방식인가? 싶었다.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하면 때로 비참해지고, 때로 교만해진다. 향수병이 들면 90년대생 공감 짤로 마음을 달래며, 내가 왜 여기에 와있는지 다시 되새긴다. 결국, 결론은 늘 같다. 어디에 있든, 결국 버티는 수밖에 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버티고, 또 다음 날을 준비한다.

규칙적으로 사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부수입으로 인생이 한 방에 바뀌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쉽지 않지만,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만들어낸 작은 망상조차 버팀목이 된다.

어쩌면 운명이란, 결국 각자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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