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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준비 중입니다

잠깐 멈춰 쓰는 기록

by K 엔젤
이사준비, 그리고 이상한 기분


요즘 집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딱 드는 곳이 없다.

그나마 괜찮았던 집이 하나 있었는데, 남자 4명에 여자 4명.

총 8명이 사는 집이라길래, 냉장고가 이미 꽉 차 있기만 할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방은 “문이 잘 안 열린다”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스르륵 접혔다.


집을 보는 동안 다른 일들은 거의 손을 못 대고 있다. 해야 할 잡 인터뷰 준비도, 메모만 해둔 채 그대로다.

집 보러 다니다 보면 하루가 훅 지나가버린다.


어제는 퇴근하자마자 또 다른 집을 보러 갔다. 이번엔 여자만 받는 집이라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집주인은 필리핀 출신 남자였는데, 일본인 아내와 이혼했고 자식 다섯은 모두 전 부인이 데리고 나갔다고 했다.

이야기를 굳이 여기까지 해줄 필요는 없었지만, 왠지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집은 깔끔했고, LG 세탁기와 건조대도 있었다.

그리고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문자가 도착했다.


“곰 지나야 잘 자 :)”


곰 지나?

굿 나잇을 한국어로 써본 건지, 곰돌이 이모티콘을 쓰려다 실패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귀여웠다.

그리고, 그래. 이제 정말 이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새 1년. 버나비에서의 시간이 이렇게 끝난다고 생각하니 조금 묘했다.

큰 추억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라는 말이 주는 감정이 있다.

짐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안 입는 옷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thrift store에서 사 온 옷들이라,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20만 원 기부했다고 치자.”


이사 준비는 늘 귀찮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정리해 가는 물건들 사이로, 지난 1년이 조용히 정돈되는 느낌이다.


한 챕터가 끝나가고 있고, 그다음 장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왠지 이번엔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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