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자 Apr 25. 2019

곰탕 한 그릇

한 통의 군사우편, 전쟁이라도 나는 걸까?

가족이라고는 아버지밖에 없던 아들은 육군훈련소에 입대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은 훈련병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입대하기 전까지 심한 통증을 참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아니 내색할 수 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2개월 전부터 0원이다. 그나마 아픈 몸으로 하루 벌이(일용직)를 하여 모은 5만원으로 입대 전 아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던 흔적이 고작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통증은 아들의 입대 후 더 견디기 힘들다.

더는 견디지 못하고 응급실에 입원했지만, 병원비에 대한 부담으로 치료를 거부한다.


의료진의 입원 권유와 사회복지사의 설득을 통해 입원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적극적인 치료는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채찍을 휘갈기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찢어 내는 것 같다.

더 지체할 수 없어 검사와 치료를 서두른다.


‘간암 말기’

이미 암세포는 전이되어 몸 전체를 갉아먹고 있다.  


면회 온 아들을 마주하고도 혹여 군 생활에 지장을 줄까, 별말씀 없이 멀뚱멀뚱 빈 천장만 바라본다.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훈련은 안 힘드냐?”

“나는 괜찮다. 치료 잘 받고 있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짧은 면회를 마치고 아들은 병원비 지원부터 수급자 신청 등 이런저런 서류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를 지켜보던 의사는 며칠째 끼니를 거르고 교통비가 없어 걸어 다니는 것 같다고 의뢰한다. 급하게 교통비와 식비를 제공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 본 일이 익숙하지 않다. 아들은 복귀할 때까지 끝내 그 돈을 쓰지 못했다.


며칠을 굶고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곰탕 한 그릇을 사주며 병원에서 잘 치료받게 될 것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환자의 증상은 급격히 악화하여 사망에 이른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해주지 못한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무 말도 전하지 못한 채 통증과 외로운 사투를 벌이다 힘 없이 쓰러진다.


뒤늦게 도착한 아들은 푸른빛이 감도는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참아왔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낸다.


목 놓아 부르지도 않는다.

흐느낌조차 없다.

함께 울어 줄 가족도 없이 장맛비처럼 눈물만 하염없이 흘린다.  


불도 켜지 않은 채 컴컴한 빈소를 홀로 지킨다.

이따금 눈물만 흘릴 뿐 아무런 말이 없다. 하소연할 가족도 없다.


쓸쓸한 장례를 마치고 다시 군대로 복귀한 아들에게서 군사우편과 택배가 도착했다.  

군사우편, 부모님께 드리는 글

'부모님께 드리는 글'


아직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걸까?

마땅히 보내야 할 곳이 없어 보내온 걸까?


삐뚤삐뚤한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의사와 간호사의 이름을 잊지 않고 빼곡히 적은 편지에는 마지막까지 아버지 곁을 지켜주었고 함께 있어 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택배 : 곰탕

그리고 택배 상자 안에는 곰탕 5 봉지가 들어 있다. 5배가 되어 돌아온 곰탕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순간 의지할 곳 없어 불안해하는 아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환자가 살아온 삶의 무게만큼이나 내 마음은 다시 무거워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