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자 Apr 25. 2019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가장 두렵다.

마주하는 두려움

요란한 진동과 함께 머리맡 휴대폰에 불이 밝혀진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전화번호다. 환자나 보호자인듯싶다.   

   

주말, 그것도 밤늦게 걸려오는 전화는 분명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고민할 여유도 없이 통화버튼을 눌러본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나지막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많아도 대학생쯤의 나이인 듯싶다.      


4일 전 퇴원했던 환자의 딸이었다.


입원 기간 딸은 보호자 역할을 거부했으며 이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핏줄이라고는 딸밖에 없었던 환자는 홀로 수술을 견뎌내고 외로운 입원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연락이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교통사고로 인한 뇌출혈로 입원 당시만 해도 의식불명으로 대화조차 불가능했던 환자는 빠른 회복을 보였다. 기억력 장애가 남아 있었지만, 완치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다행히 환자는 36일 만에 스스로 걸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상태로 회복되어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 후 한 시간쯤...

환자는 다시 사회복지팀을 방문했다.      


머뭇거리며 말문을 뗀다.

“현관문 열쇠가 바뀌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딸이 열쇠를 바꾼 것 같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손에 쥐여주며 등 떠밀듯 다시 돌려보낸다.   

   

“내일 꼭 주민센터에 방문하셔서 수급자 신청 마무리하세요.”

“네, 꼭 찾아가서 상담 받겠...” 말끝을 흐리며 문을 나선다.     


내가 본 환자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렇게 대부분의 환자들은 퇴원 후 잊혀지게 된다.     


그렇게 빠른 회복을 보이고 퇴원했던 환자가 사망했다고 한다. 의료상의 문제는 없었으며 도움이 필요할 정도의 몸 상태도 아니었다.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자살 경위까지는 물어볼 수 없었다. 딸은 지갑 속 명함을 보고 연락을 준 것이다.      


자살할 만한 어떤 것도 나는 파악하지 못했고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찾아온 환자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나는 별일 아닌 듯 돌려보냈다.

손에 쥐여 준 돈 몇만 원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했다.      


환자는 어떤 불안함 때문에 자살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동안의 치료과정과 입원 생활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수화기를 꽉 쥔 채 울먹이는 딸의 모습이 그려진다.     


감정을 억누른 채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에 자괴감이 든다. 내가 간과한 부분은 없었는지 내 무능함을 자책하기에 이른다.      


이 부녀(父女)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기에 환자를 탓하기도 딸을 탓하기도 어렵다.      

딸은 어렸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충격받았을 것이다. 불어나는 병원비를 보고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환자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해했을 수도 있다.     

 

딸은 장례가 끝난 후 상담받기로 약속했다. 어떤 사연이 있을지, 그리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벌써 두려움이 몰려온다.      


딸에게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슬픔과 자책의 감정이 복받치지 않을까 두렵다.

늦은 밤, 전화 한 통화에 뜬눈으로 두려움을 마주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가장 두렵다.

이전 01화 곰탕 한 그릇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