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의리
60대 노(老) 여성이 입원하게 된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력이 쇠(衰)한다.
이혼 후, 30년 이상 자녀들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지내왔다.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보살펴주지 못한 무능함만 자책한다.
먹고살기 위해 이발소에서 면도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나마 동거인과 생활하며 마음 둘 곳이 있었다.
입원하게 되자 동거인은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았고 연락을 피하기 급급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인의(人義)는 진종빈처단(盡從貧處斷)이요. 세정(世情)은 변향유전가(便向有錢家)'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의리는 모두 가난함으로 인해서 끊어지고 세상의 인정은 곧 돈이 있는 집으로 향한다는 말이다.
건강도 마찬가지다.
빈부나 건강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돼버렸다.
비단 이 여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하고 건강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각박한 현실이다.
앞으로도 병원 이용이 잦을 것이다.
통장 속 잔고라고는 없는 여성에게 병원 이용은 늘 부담이 된다.
건강해질 수 있다는 기대보다 당장의 생활이 걱정된다.
어찌어찌 국가와 병원의 도움을 받고 나머지 병원비는 조금씩 갚아 나가기로 했다.
기약 없는 빚과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살길이 막막하여 기초생활수급 신청은 했지만, 동거인의 이별 통보로 길거리에 내몰렸다.
다행히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급하게나마 단칸방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불 한 장 없이 차가운 바닥에서 밤을 보냈다.
밥그릇 하나, 수저 한 벌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월세계약서를 자랑삼아 보여준다.
밤새 차가운 바닥도 마음의 온기를 식힐 수는 없었다.
우리가 먼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힘들게 살아갈지 모른다.
빈부나 건강이 사람을 평가하는 척도가 아니듯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인심이 세상 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