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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Oct 15. 2019

아이가 써 내려간 동화

보호 받지 못하는 아이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는 아이였다.

계획 없이 열차에 무임승차하여 생전 처음보는 낯선 곳까지 오게 되었다.


쓰러진 채 행인에 의해 발견되어 응급실로 입원하게 된다.


뇌전증(간질)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치료계획을 위해 의사는 사회복지팀에 보호자 확인을 의뢰한다.

수소문하여 마침 어머니와 연락이 닿았다.


"○○병원 사회복지팀입니다."

"아이가 응급실로 입원했으니 병원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답변이 황당하다.

"아이가 알아서 하게 놔두세요."


보통의 부모라면 아이의 상태를 물어보기 바빴을 것이다.

열 일 제쳐두고 달려왔을 것이다.


귀를 의심하며 다시 한번 물어본다.

"혹시 부모님이 아니신가요?"


"남의 가정사에 신경 쓰지 마세요."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린다.

더는  통화가 되지 않는다.

가족관계가 더욱더 의심스럽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침상에 걸터앉아 있는 아이는 병원이 낯선지 두리번거리고 있다.

아이와 상담을 진행해 보려 하지만 무엇이 두려운지 쉽게 입을 떼지 않는다.


경도의 지적장애도 의심된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 아이와 함께 동화를 만들어 본다.


아이는 고민도 없이 그림을 그려나간다.


엉성하고 일관성 없는 그림이 그려진다.

지팡이, 칼, 찹쌀떡, 불가사리, 상자


아이는 해맑게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지팡이와 칼이 싸움을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 칼이 이깁니다.

항상 칼이 이겼습니다.


싸움에서 이겼지만, 화가 채 가시지 않은 칼이 옆에 있던 찹쌀떡을 반 토막 냅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불가사리는 찹쌀떡을 비웃으며 토막이 난 찹쌀떡 하나를 삼켜 버립니다.


나머지 한 조각의 찹쌀떡은 상자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황당한 내용이지만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아이가 겪어왔을 두려움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지팡이로 표현했다.

칼은 가족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새어머니이며 아이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날카롭게 선 칼날이 눈에 선하다.

힘없이 반 토막 나버린 찹쌀떡은 아이 본인이었다.

이목구비까지 그려 넣은 불가사리는 예쁜 이복 여동생이다.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찹쌀떡이 숨어버린 상자는 홀로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도피처이다.

주위에 아무도 지켜주는 이가 없다.


재혼한 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일을  할수가 없다.

새어머니가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를 챙길 여유는 없다.

항상 불만인 어머니는 아버지와 다툼이 잦고 아이도 화풀이 대상이 된다.

다만 친딸은 끔찍이 아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여동생은 자연스레 아버지와 오빠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아이는 가정에서 적절하게 보호받고 있지 않았다.

다른 가정이 아니라 이복 여동생과 비교해도 대조적이다.

부모가 있지만, 눈치를 보며 배고프다 보채지 못하고 끼니를 거르기 일 수였다.


아이의 진술이 일관적이고 구체적이다.

아동학대나 방임을 의심할 수 있지만 한 번의 상담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급하게 주민센터에 가정방문과 부모 상담을 의뢰한다.

주민센터에서는 확인 후 필요하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의뢰할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이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학대를 경험한 아이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이 남은 채 살아가게 된다.

생활에 부적응을 초래하고 학대가 답습되기도 한다.


낳은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한 관심보다 낮은 출산율로 아이를 낳지 않는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관심 속에 지금도 우리 주위의 아이들이 학대를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개인의 가정사,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어른들의 잘못을 아이들에게 답습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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