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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Aug 15. 2019

집이 없는 사람

노숙인이야기

열기가 채 가시기 전인 8월,

도로변에 쓰러진 채 발견된 50대 남성이 119 구급대에 의해 응급실로 내원한다.    

복통을 호소하며 배를 움켜쥔 남성이 들어서자 깊게 배인 땀과  알 수 없는 냄새들이 코를 찌른다.      


20년 전 이혼, 10년 전부터는 자녀들과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의지했던 형은 백혈병으로 사망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      


Jimmy Ch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20년 전만 해도 인쇄소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배우자의 외도로 이혼 후 삶은 빠르게 피폐해졌고 부채는 늘어만 갔다.

게으르고 방탕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거리로 내몰렸다.

     

무료급식소에서 하루 두 끼 식사를 해결할 때면 그나마 운수가 좋은 날이다.

3일 전부터는 식사도 하지 못했고 노숙 생활 1개월 만에 체중은 20kg 이상 감소했다.

     

좋아서 노숙 생활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적응하기 쉽지 않았고 다른 노숙인들과도 어울리지도 못했다.

하루하루 기력은 쇠해졌고 건강은 극도로 나빠졌지만, 병원에 다녀 본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주민등록 말소,  건강보험자격 없음

의사는 보호자 확인과 의료비 지원요청으로 사회복지팀에 의뢰했다.     


심부전, 신장결석, 췌장질환, 고지혈증 등 (컴퓨터)모니터를 꽉 채운 진단이 내려진다.

구석구석 벌레 먹은 낙엽처럼 마르고 성한 곳이 없다.  


그런 중에도 노숙인은 병원비에 대한 걱정뿐이다.


“저는 드릴 수 있는 병원비가 없습니다. 그만 퇴원하고 싶습니다.”

“저도 양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병원비를 구해서 다시 오겠습니다.”     


여느 노숙인들과는 다른 태도에 의아한 생각도 든다.

이제껏 봐 온 노숙인들은 치료비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치료받기 귀찮아서 혹은 누구보다 더 당당하게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도움받은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조금 더 용기 내어 살았더라면 폐를 끼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정성으로 돌봐 준 의사, 간호사들에게 고맙다며 희끗희끗한 머리의 어른이 한참이나 눈물을 보인다.

     

“노숙인이 어디에 가서 이런 대우를 받아 보겠습니까?”

“이제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다행히 퇴원 후 기초생활 보장수급자가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주민센터에서는 임대주택을 마련해줬다.

생활하기도 빠듯한 기초생활수급비를 쪼개어 모으기도 하고 부족한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임대계약금을 다 모으기는 어려웠다.


자립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기에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후원을 연결하여 부족한 계약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겼다.

      

지금도 외래진료를 오게 되면 항상 안부를 물어본다.


"집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생활이 넉넉하지도 않을뿐더러 좋은 집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어쩔 수 없이 오게 된 병원과의 인연이 이렇게 자신을 변화시킬 줄은 몰랐다고 한다.

마음이 치유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고 한다.

대화에서 느껴지는 편안함에서 진실성이 묻어난다.


지금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THE COLLAB. 님의 사진, 출처 Pexels

노숙인을 종종 보는 편이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 인근에 역사(驛舍)가 있기 때문이다.  


왜 역사(驛舍)에 노숙인이 모여드는 것일까?


노숙인은 집이 없는 사람이다.

안전한 장소를 찾아 역사(驛舍)로 모여든다.

폭력이나 범죄로부터 안전한 곳이 공공장소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겪는 불쾌감보다 노숙인이 느끼는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다.


노숙인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 혹은 노력하지 않고 자립 의지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남루한 행색에 한 짐을 둘러메고 옆구리에 소주병을 끼고 다니는 노숙인의 모습이 그려지는가?

노숙인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열에 아홉은 갈 길을 빙 둘러 발걸음을 재촉한다.


노숙인 모두가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처음부터 알코올 의존이 있고 이상행동을 하는 노숙인은 많지 않다.

오랜 기간 노숙 생활을 하며 알코올 문제와 이상행동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앞서 노숙인은 집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주거 외에도 가정과 같은 인간관계의 손상도 내포한다.

노숙 생활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인간관계 손상은 더욱더 깊어지고, 고립된다.


노숙인을 구제할 수 있는 제도는 소극적이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안전한 장소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의 욕구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계급사회와 다르지 않다.

격이 맞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길거리에서조차 쫓겨난다.


몇 해 전 대구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한 '노숙인실태조사'자료를 받아 본 적이 있다.


실직, 사업실패, 가족해체, 가정폭력, 부채증가 등 다양한 계기로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일자리는 제한적이고 거리와 쪽방(고시원, 만화방, 사우나 등), 일시보호시설 등을 전전하며 살아갔다.


건강을 돌볼 겨를이 없고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단순처치나 약 처방에 대한 병원 이용 경험이 있을 뿐, 어디에도 중증질환으로 인한 병원 이용 경험은 보고서에 보이지 않는다.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니 노숙인의 건강권은 보장된 것일까?

가벼운 질환에 대해서만 선심성 치료를 하고 돌려보내기 급급한 것은 아닌가?

우리병원에만큼은 입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아닐까?


중증질환의 노숙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노숙인들이 겪는 생존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최소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책임만을 강요하기보다 기회를 제공하고 희망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노숙인의 문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사회적 관심과 지지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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