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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Jan 22. 2021

"약닭입니다. 좋은 거예요."

재중동포(조선족) 환자 이야기

백내장, 결막염을 포함하여 여러 안과 질환으로 70대 노인이 병원을 방문한다.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가까운 병원에 다녀봤지만 나아지지 않았고 종합병원에 와서야 수술 결정이 내려진다.


노인성 안과질환에 따른 수술은 비교적 큰 비용이 발생하지는 않는 편이지만 병원비 걱정으로 수술을 망설이는 환자를 보고 의사가 사회복지팀에 도움을 요청한다.


의사는 “다음에 병원비 마련되면 수술합시다.”라고 종결지을 수도 있는 문제지만 증상이 악화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것 같다.


왜소한 체격의 노인은 낡고 허름한 옷에 검은 가방을 짊어지고 사회복지팀의 문을 두드린다.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하며 들어오시는 노인의 모습에 미묘한 이질감이 든다.


2007년에 입국하여 체류 중인 재중동포(조선족)로 배우자와 함께 입국하였으나 배우자는 신장병으로 세상을 떠나 홀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재중동포(조선족)는 중국 국적이 있는 한민족으로 1988년 이후 입국과 체류가 급증했다고 한다.

한국 노동시장의 저임금 노동력 수요와 중국에 비해 높은 임금 수준, 중국 내 재중동포(조선족)의 기회 제약으로 인해 지금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 말인 ‘코리안 드림’을 기대하며 입국한다.(참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국내 체류 외국인 중 30% 이상을 차지하며 실제 체류 인원은 통계자료보다 높은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재중동포(조선족)가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우리와 같은 언어를 쓰는 한민족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렇게 우리와 가깝게 지내고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동질감과 중국 국적이라는 이질감이 교차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과거 항일 독립투쟁을 벌였던 당사자이거나 그들의 후손 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마음이 간다.


상담 중 기록된 주소를 보며 눈을 의심했다.

‘○○군 ○○읍 ○○○ 옆 빈집’

(상담을 하다 보면 ‘○○○ 컨테이너’, ‘○○○ 비닐하우스’ 같은 주소를 볼 수 있기는 하다.)


고령으로 일을 할 수 없고 무엇보다 안과 질환과 폐 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다. 그나마 한국인 친구의 도움으로 힘겹게 생활하고 있어 집을 마련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공기도 좋고 해서 저 혼자 살기는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을 리 없고 한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기 힘겨운 듯 보여 겨울옷과 이불 한 채를 전달하며 수술 일정을 정했다. 그렇게 수술비 지원 결정으로 환자는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며칠이 지나 노인은 달걀 한 판을 들고 사회복지팀을 방문했다.

“키우던 닭이 알을 낳아 좀 가져왔습니다.”

“약닭입니다. 좋은 거예요.”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요즘 녀석들이 알을 좀 적게 낳네요.”

“지금은 3마리뿐이지만 병아리 키워서 알을 더 낳으면 또 가져올게요.”


끼니를 거르기 일쑤고 배가 고플 때면 ‘업소용 라면 사리’를 구매해 스프도 없는 면을 끓여 먹기도 한다는 노인은 몇일치 식량일지도 모르는 달걀을 감사의 표시로 가져왔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라고 대답은 했지만, 선뜻 손을 내밀어 받기도 민망하다.

“저희가 도와드린 것은 작은 부분입니다.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방문하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이렇게 선물을 안 주셔도 됩니다.”

“환자분이 건강하셔야 저희가 더 힘이 나죠.”라고 말하며 배웅을 한다.


배고픔을 달래 가며 모았을 달걀을 주시고 발길을 돌리시는 노인의 뒷모습은 가벼워 보인다.      


어려운 중에도 밝은 표정으로 오히려 병원에 번거로운 일이 될까 걱정하시던 노인은 다시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가실 것이다.


맞아주는 이도 없고 생활이 넉넉하지도 않지만 살 곳이 있어 고맙고 갈 곳이 있어 고맙다는 노인의 말에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중에 부족함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던 것들에 대한 욕심을 자책하게 되고 더 나누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아프시면 꼭 찾아오시고요.’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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