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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May 12. 2019

줄탁동시(啐啄同時)

아이들의 상처

매년, 여름휴가를 뒤로하고 소아당뇨 캠프를 찾는다.

올바른 당뇨병 관리 교육, 심리상담, 레크리에이션 등 건강관리와 사회적응에 도움을 주고자 의사, 간호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가 함께 참여한다.


보이지 않는 질병과 싸우는 환자들의 모습은 어둡고 우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두운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밝고 활기차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래들과는 다른 생활을 해야 하고 절제된 생활을 해야 한다.

가슴속에 많은 한(恨)과 상처를 품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 약을 먹어야 하고 주사를 맞아야 하고 식이 조절을 해야 한다는 말, 무조건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아이들에게 더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소그룹으로 아이들과 집단상담을 시작한다.


"10년 뒤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니?"


"다리가 절단되고 없을 것 같아요."

(당뇨합병증으로 인한 괴사로 사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누구도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침묵이 흐른다.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살겠죠. 뭐"

침묵이 어색한 듯, 한 아이가 입을 뗀다.


"저희는 하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먹으면 안 되는 것들도 많고요."

"체육 시간에도 앉아 있기만 해야 해요."

"엄마는 저보고 집에만 있으래요."

"아이도 낳을 수 없데요."

.

.

.

아이들에게서 불만 썩인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잘못 알고 있는 내용도 상당수다.)


지금의 모습도, 10년 뒤의 모습도 긍정적으로 말하는 아이는 없다.

 

고민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속이 후련하다고 말한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마음으로 듣고 마음으로 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일정을 소화하며 지칠 만도 하지만 오늘 하루가 지나는 것을 아쉬워하며 아이들은 밤잠을 설친다.

평소 얼마나 절제된 생활을 해야 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짧은 기간 이런 활동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구분되지 않는다.

어리고 귀한 생명 앞에서 나의 존재가 낮아지고 겸허해지는 마음이 들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사진출처 : Pixabay

줄탁동시(啐啄同時), 본래 사제 간의 연분이 무르익음을 비유로 쓰이는 말이다.

닭이 알을 깔 때, 알 속의 병아리가 껍질 안에서 쪼고,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 어른들의 역할에도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모든 상처를 혼자 감당하기는 버겁고 벅찰 것이다.


아무리 어두운 곳에도 빛은 들기 마련이다.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희망의 빛이 되어주어야 한다.  


캠프를 끝내며 가끔은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따뜻한 일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들은 가슴 가득 행복을 담고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다시 만나게 될 아이들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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