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안 하지만 김치는 기다려진다.
"저희 시댁은 김장 안 해요."
병동을 돌아다니던 중 간호사들이 하는 대화가 들린다.
이 시기 며느리들의 고충과 관심사는 김장인가 보다.
예전만큼 김장하지 않지만, 며느리들에게 명절이나 김장은 스트레스다.
며느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익숙해질 만도 한데 처가에 가는 것에 면력이 안 생기는 내 모습도 그렇다.
며느리의 고충이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원가정이 아닌 곳에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딸 같은 며느리도 없고 아들 같은 사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장 관련 뉴스가 많이 보이지만 내게 김장은 크게 의미가 없다.
사계절 입맛에 맞는 김치를 클릭 몇 번으로 주문할 수 있고 숙성 정도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대다.
가족 수가 적어 크게 벌려놓고 김장할 일도 없다.
김장해 놓았으니 시간 되면 가져가라는 통보만 받는 정도다.
작년에 가져갔던 빈 김치통을 꽉 채워진 김치통으로 맞교환한다.
자녀를 위한다고 김장해서 보냈더니 며느리가 입맛에 안 맞는다고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는 목격담도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재료를 써도 집마다 맛이 다르니 늘 먹던 김치가 제일 맛있기는 해서 안 맞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내 가족이 먹을 거라고 좋은 재료만 썼을 텐데 음식물 쓰레기통은 너무했다.
그럴 거면 이웃에 나눔이라도 할 것이지.
배추를 씻고 다듬어 소금물에 절이고 물기를 뺀 다음 준비한 양념을 바른다.
별거 없어 보이지만 담그는 양에 따라 중노동이고 어지럽혀진 주변 정리까지 하면 하루가 부족하다.
고되고 온몸이 고춧가루로 범벅이지만 갓 담근 김치에 수육과 군고구마는 참을 수 없다.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는다는 말처럼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김치다.
안 먹어도 일단은 접시에 담고 본다.(버려지는 김치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급식이나 도시락에는 김치를 제외한 반찬이 몇 개인지 표기할 정도로 김치는 기본 세팅이다.
이맘 때면 사회복지기관이나 동네 부녀회 등에서도 김장 행사를 많이 한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모여 김장 봉사활동을 하며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후원금을 내는 것보다 직접 담근 김치를 이웃에게 나눠주며 더 큰 보람을 느낀다.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자원봉사자를 위해 김장을 한다는 말까지 있다.
투덜투덜하던 자원봉사자도 보람 있었다며 밝은 표정으로 바뀐다.
김치를 구매해서 전달하는 것이 비용이나 시간적으로도 효율적이지만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인적자원관리의 일환으로 김장행사를 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자원봉사활동이나 잠재적 후원자로 관리하는 것이다.)
노인 세대나 한부모가정 등 취약계층에 전달되는 김치는 도시락배달보다 인기가 좋다.
도시락은 입맛에 안 맞아서 못 먹겠다는 분도 있고 호불호 없는 김치와 김 같은 반찬은 비교적 장기간 두고 먹을 수 있어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올해는 사회복지기관에서 기금 마련을 위해 판매하는 김치를 10kg 주문해 봤다.
비용이 싼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후원금으로 적립되니 좋은 마음으로 주문했다.
금방 배송될 줄 알았더니 한 달째 소식이 없다.
일반적인 판매처였으면 벌써 고객센터에 연락했겠지만, 취지가 취지이니만큼 참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 집에 김치가 없다.
김치가 없으니, 라면 하나 끓이는 것도 망설여진다.
김장은 안 하지만 김치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