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미숙은 오랜만에 집에서 식사하는 태식을 위해 지난주에 담가서 알맞게 익은 오이김치를 내놨다.
인스타그램 보고 처음 안 사실인데… 씨가 많은 오이는 속을 긁어내고 오이김치를 담아야 오래 아삭하다고 해서 그렇게 했어. 어때? 이번 오이김치는 좀 더 아삭하지?
태식은 티브이를 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음식을 씹느라고 내 말을 못 들었나?” 그러나 미숙은 태식의 태도가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런 문제로 벌써 수없이 화내고 무언의 시위부터 큰 소리로 따지고 편지도 썼지만 몇 번 나아진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다시 되돌이표였다. 그래서 미숙은 태식과의 대화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숙은 남에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선언하고 다닌다. 왜 그럴까? 미숙은 한 번도 이 점에 대해 찬찬히 생각한 적이 없었다. “뭐, 나랑 말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말은 하잖아… “ 그랬나? 아이들을 미국에 보내는 이야기를 할 때도 미숙이 그냥 결정했고 남편은 그냥 따랐던 것 같다. 우리가 정말 그것에 대해 이야기했었나?”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미국에 돌아가 공부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하자 남편은 좀 더 생각해 보자고 했지만 미숙이 계속 같은 이유를 반복하자 “그럼 당신이 잘 알아보고 결정해. 뭐 여태까지 당신이 잘 키웠으니 아이들 교육에 대해 당신이 잘할 거라고 믿어.”라고 미숙의 결정에 동의했다.
로봇처럼 감정 표현이 적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태식은 좋은 남편이다. 우선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한다.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가장 많은 의사이고, 의대생들에게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아 상까지 받았다. 미국에서 이름 있는 학회지에 계속 연구 논문을 등재하여 구글에서 태식의 이름을 치면 제일 먼저 나온다. 미숙이 차려주는 대로 밥을 먹으며, 한 번도 불평을 한 적이 없다. 미숙이 아프면 언제든지 로버트 택권 브이처럼 달려온다. 한 번은 목욕탕에서 미끄러져 기절한 미숙이 숨을 쉬지 않자 태식이 심폐소생술로 살려냈다. 그 후 미숙은 모든 검사를 받고 미주신경성 실신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나 조심하지 않아 지하철에서 한 번 더 쓰러졌다. 그날 오전 일본 학회에 갔던 태식은 미숙의 소식을 듣고 오후 비행기로 돌아왔다. 미숙이 확실히 괜찮은 걸 확인하고 다음날 새벽에 일본으로 돌아가 오후에 논문 발표를 했다. 아마도 이런 부분 때문에 미숙은 태식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용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도 없고 두 부부만 남았는데, 미숙은 태식이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게 못내 섭섭했다. 그때 태식이 갑자기 미숙을 보며 물었다.
“여보, 아까 뭐라고 했어?”
“언제?”
“아까 밥 먹을 때 당신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잘 듣지 못했어.”
“아아, 오이김치가 아삭했는지 물었었지.”
“응, 당신 이제 오이김치 잘 담그는 것 같아.”
미숙은 태식의 칭찬을 듣자 속으로는 은근히 기분이 좋으면서도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당신 아까 내 말 무시한 거 미안해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당신 말을 무시했어?"
"뭐, 당신이 노력하는 것 같으니 내가 착해서 용서한다. 그리고 칭찬해 줘서 고마워. 나 사실 요즈음 조금 우울했거든... 뭐 나이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전화가 울렸다. 두 아들이 카카오로 영상통화를 건 거였다.
"엄마 아빠 잘 지내시죠?"
"너희들 엄마 눈이 조금 튀어나온 것 같지 않니?" 태식이 아이들에게 다그쳤다.
"내 눈이? 어디?" 미숙이 얼굴을 카메라 가까이 들여대며 말하자, 아이들도 "엄마 어디 아파요? 저희는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대답했다.
"아니, 네 엄마가 너희들 전화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려서 튀어나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