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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희 Oct 25. 2024

팔자 좋은 미숙

9회

“아뇨… 또마 때문이에요… 사실 내가 아들문제와 시댁 문제로 힘들 때 또마를 만나서 모든 걸 얘기했었죠. 그리고 지난여름엔 친정에 큰애를 맡기고 또마와 프랑스에 다녀왔어요. 만약 프랑스에 살게 된다면 아이가 다닐만한 예능 전문학교가 있는지 알아보고도 싶어서요…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리거든요…” 정민은 그렇게 말하고 빨대로 아이스커피를 몇 번 휘저어 녹은 얼음으로 농도가 약해진 커피를 급하게 빨아 마셨다. 

“그런데 언니, 그거 알세요? 또마는… 뭐랄까? 확실히 잘 모르겠지만 제 경제력을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암튼 그래요.”

이렇게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고, 정민은 뒤집어 놨던 핸드폰을 돌려 시간을 확인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니! 벌써 7시가 다 됐네요. 30분만 이야기한다고 하고… 죄송해요… 학원에는 나오지 못하지만, 언니에게 가끔 연락해도 되죠?”

“물론이죠.”

말을 그렇게 했지만 미숙도 정민도 앞으로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민이 미숙이 자신보다 17살이나 많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며 미숙을 똑바로 쳐다보며 어느 피부과에 다니는지 물었던 게 생각났다.

“어디서 관리받으세요? 보톡스 맞죠?”

미숙은 정민의 당돌한 질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미숙도 자신이 어려 보이는 게 싫지 않았다. 아니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50대 중반부터 일 년에 두 번씩 보톡스를 맞으러 피부과에 다녔었다. 이제 한국나이로 벌써 60이 넘으니 한계가 온 것 같다. 점점 옛날의 모습이 사라진다. 피부는 수분을 잃고 건조하다. 군데군데 낀 기미는 컨실러로 가리면 어느 정도 커버가 되지만 전처럼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얼굴을 마주하는 게 싫다.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나?” 미숙은 갑자기 우울해지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면 성형외과의 전과 후 사진이 나온 광고를 들여다본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나이가 들어 모든 기능이 저하되는 걸 받아들이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말처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다. 얼굴만 젊으면 되겠나? 그다음에는 다른 장기도 예전처럼 젊어지고 싶을 거다. 어떻게 해야 잘 나이들 수 있을까? 어떻게 나이를 잘 먹어가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이나 프랑스 여성도 나이 들어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성형을 하지 않고 당당히 산다. 서양인은 40대인데도 한국인이 보면 50-60대 같은 사람도 많다. 그래도 그들은 쭈글쭈글한 팔다리를 노출시킨다. 그렇게 자신 있게 늙어가야 하는데 미숙은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또마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착각했을 때 소녀처럼 좋아했을까? 그리고 자신의 외모에 더 신경을 썼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미숙은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에서 붉어진 얼굴을 들킬까 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놀랜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마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건 얼마나 다행인가? 사실 미숙은 또마에게 “해변에 같이 가자”는 말을 들은 후로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게 좋으면서도 두려웠다.  더욱이 일 년 넘게 같은 선생님에게 회화 수업을 들으니 좀 식상하기도 해서 그다음 달 수업은 다른 원어민 선생님 반으로 등록했다. 그래서 그동안 가르쳐줘서 고마웠다는 말도 하고, 한 시간 개인회화 연습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좋은 한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민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식었다. “내가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던 거야? 아유, 망측해라. 여자 선생님이면 몰라도 남자 선생님에게 굳이 친절하게 대해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어. 다른 학생도 이 반 갔다 저 반 갔다 하는데 내가 굳이 또마에게 다른 반에 간다고 식사를 사며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이렇게 이성적인 결론에 도달하자 미숙은 태식의 얼굴만 떠올랐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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