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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보이 Dec 05. 2023

책상 앞 출근이 너무 어려운 프리랜서

한글 창을 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나요?

시작이 가장 어려운 일.

그래도 시작하면 곧잘 하는 일.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로 하루를 시작 하려면, 일단 남편의 출근 후엔 절대 침대에 누워선 안된다.

침대에 도로 눕지 않기 위해선, 남편이 집을 나서기 전 침구 정리부터 해두는 게 좋다.

그래야 혼자가 됐을 때 침대로 안가고 주방으로 간다.

주방에 가는 이유는 일을 시작하기 전 배를 채우기 위해서다.

간단하지만 양양소도 챙기고 정갈한 모양새도 갖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혼자 먹는 밥을 차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대로 해내면 뿌듯함이 크다.

그래서 가끔은 남편과 먹는 밥보다 혼자 먹는 밥에 더 공을 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먹고나면 먹은 그릇들은 바로 정리하고 치운다.

설거지나 주변 정리는 서둘러 책상에 앉지 않고 시간을 질질 끌기 위한 수단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주변을 정리하는 것도 글 작업을 위한 나의 작은 준비다.

주변 정리가 잘 되어 있어야, 책상 앞으로 출근할 마음도 생긴다.    

그것까지 마치면 이제는 진짜 컴퓨터를 켜야 하는데이제부터가 나와의 싸움이다.

전원을 켜는 것쯤은 별 것 아니지만, 전원이 들어오고 인터넷 창을 연 후에 글쓰기 창으로 옮겨 가기까지가 내 작업의 고비!!!

인터넷 창을 열지 않고 한글 창을 바로 열면 간단하지 않냐고? 그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포털의 뉴스, 즐겨보는 온라인카페, 핫딜 게시판까지 둘러봐야 마침내 한글 창을 열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그러니 바로 창을 열길 기대하기 보다, 덜 방황하다 가급적 신속하게 한글 창을 열길 바라는 게 나은데...눈이 번쩍 뜨이는 핫딜이라도 발견하면 링크를 타고들어가 상품을 살펴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지어 결제까지. 족히 한 시간은 더 지체가 된다.

그것까지 다 하고 나야, 마침내 나는 더 물러서거나 비빌 데도 없어 진짜 한글 창을 열게 되는데...

열었다 치자. 바로 두드릴 게 생각나면 다행이지만,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면 다시 제자리다.

껌벅이는 커서만 하염없이 바라다본다. 두 눈도 커서처럼 껌벅이면서.

그러다 오늘 같은 날은 한글 창 대신 브런치로 옮겨와 의식의 흐름대로 무작정 써내려 가기도 하는데...


심기일전. 다시 대본을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이 안 돼 며칠을 이 모양으로 지내는 중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있는데 어떻게 해야될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데 왜 쓴다고 했을까)

그러다 결국 쓰긴 쓸 거다.

그런데 한 씬 한 씬 쓰다 결국 또 나는 자기 검열에 빠져 허우적댈 게 뻔하다.

그걸 알기에 지금 나는 쓰는 게 두렵다.

대본 쓰기는 가끔 블럭 쌓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씬 한 씬 쌓아 올리지만, 언제 어느 순간 공든 탑이 무너질지 모르는 블럭 쌓기.

그러니 어느 한 곳도 허술하지 않게 튼튼하게 잘 쌓아올려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이 정도 깜냥인 줄 알았으면, 부지런히 열심히 꾸준히 써서 실력부터 쌓았어야 하는 건데….

놀았다. 너무.

그러니 다시 시작하는 게 이렇게 힘들 수 밖에.

이번엔 또 얼마나 방황을 해야 나는 쓸 수 있을까.

과연 내가 해내기는 할까.


오늘은 침대에 도로 눕지 않았고, 정갈한 아침을 챙겨 먹었고, 책상 앞에 앉아 한글 문서 창을 열었고, 곧 바뀔테지만 제목을 정한 것까지가…

오늘 하루 나의 깜냥인 것 같다. (사진의 제목은 사실과 다름)


곧 점심 시간이다.

비록 책상 앞으로 출근만 한 프리랜서지만, 이런 나도 맛난 점심을 먹을 자격 정돈 있겠지.


아, 근데 점심까지 내 손으로 챙겨먹긴 진짜 싫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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