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체크인 후기
무릎은 운동 직후 염증으로 물이 찼고, 왼쪽 늑골엔 원인불명의 통증이 있다.
생리는 한 달을 거를 뻔 하다 겨우 시작됐고, 눈은 뿌옇고 침침해 새로 산 일본어 교재의 요미카타를 읽을 수가 없다. 가끔 집중하면 이명이 들리고, 살들은 발목과 복부로 집중되는 느낌...
단 하나의 몸 이슈도 없는, 말끔하고 거뜬한 하루가 대체 언제였나 싶은데...
바야흐로 중년, 갱년기 입장이다.
난 예전부터 근골격계가 별로 안좋다.
하는 일이 일인지라 앉아있기도 오래 앉아있었고, 그러다보니 몸을 베베 꼬며 이렇게 앉아다 저렇게 앉았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쁜 자세란 자세는 다 했던 것 같다. (나쁜 자세가 당장은 몸이 편하니까)
다리 꼬기는 기본, 의자에서건 소파에서건 아빠 다리로 앉고, 그러다 그것도 불편해지면 거의 눕듯이 앉아 따락따락...
사실 그 탓에 20대 때에도 급성허리염좌로 정형외과를 심심치 않게 드나들었는데, 그게 십 수년 반복되다 보니 허리 디스크는 다 찢어지고 상처입어 너덜너덜...
그러다 30대엔 노화의 일종인 요추 4,5번 척추관협착증, 40대엔 강직성척추염 HLA-B27 양성 진단도 받았다. 나는 지금도 내 허리 통증의 원인이 디스크 때문인지, 척추관협착증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진짜 강직성척추염 때문인지 잘 모른다.
때에 따라 다르고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내과... 가는 병원마다 이야기가 다 다르다.
다만 2,30대 때엔 급성으로 일주일 정도 아프던 허리가 마흔이 되고부턴 만성으로 안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고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일자 허리에 근력 부족, 운동과 관리만이 답이다.'인데...
그래서 요즘은 많이 아플 땐 병원에서 소염진통제를 처방받아 먹고, 덜 아플 땐 운동을 한다.
어디선가 정선근 박사의 책 <백년허리>를 추천받아 신전운동을 아침 저녁으로 틈날 때마다 해주고 있는데, 그 덕일까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허리 뻐근함이 예전보단 덜 하다. 그리고 그 덕을 봐서일까, 길 가다 누가 버스 정류장에 서서 양손을 허리에 대고 뒤로 펴기라도 하면, 속으로 '혹시 백년허리?' '그쪽도 박사님의 열 두 제자?' 이러면서 왠지 모를 동질감에 괜히 말이라도 걸고싶어진다. (그런 적은 없지만)
신전운동과 더불어 조금씩 늘려가고 있는 건 하체 근력 운동.
부끄럽지만 나는 허리 못지않게 무릎도 좋지 않아 왼쪽 무릎 연골연화증을 진단받았고, 계단 오르내리기, 쪼그려 앉아 뛰기 같은 건 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다. 그 대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걷기, 무릎 들기, 발뒤꿈치 들기 따위를 사부작사부작 해주고 있는데...
요즘도 여전히 운동할 때면 무릎에선 기름이 덜 먹어 뻑뻑하게 부딪히는 낡은 기계 소리 같은 게 난다.
아, 소리하니까 하는 말인데... 어디 또 뻑뻑 뿐이랴!
언제부턴가 나는 앉았다 일어날 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읒짜" 소리를 자주 낸다. 그 소리를 내야 일어날 힘이 생긴다고 해야할까. 가끔은 거실이나 다른 방에 있던 남편이 내가 내는 소리에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한 번씩 내다보기도 한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내 방은 주방 옆이었다. 이른 아침 좀 더 자고싶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으면, 밖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엄마가 자꾸 이런 소리를 냈다. 그때 나는 너도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 도우라고, 엄마가 일부러 나 들으란 듯 그런 소리를 낸다고 생각했는데….
당시에 어리고 철 없던 나는 엄마도 늙고 있어 그런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결론은,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늙어가고 있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그것도 연상인 남편보다 빠르고 신속하게!
남편은 매일 눈뜨고 일어나면 아픈 데가 한 군데씩 개발되는 나를, 시사보다 건강 관련 뉴스를 더 자주 클릭해서 보는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말이야 "아파서 어쩌냐." "병원부터 가봐라." 하지만, 말그대로 말 뿐일 때가 더 많다.
그도 그럴 게 남편은 요통이란 걸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사람. 양치를 밥 먹듯 걸러도 웬만해선 충치도 잘 안생기는 사람이다. (허리도 치아도 유전이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플 때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이 얄밉기도 한데... 어느 날은 또 한 사람이라도 덜 늙고 건강하면 그게 좋은 거지 싶기도 하고... 도리어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결혼하자마자 늙어버린 신혼의 아내라 미안한 마음이 더 크다.
인정한다. 나는 늙고 있다. 늙은 건 그럼 오케이. 그런데 정말이지 건강하게 늙고싶다.
골골하니 도리어 팔팔하고픈 희망도 생겼달까, 자잘한 질환들을 시도 때도 없이 검색하고 삼시세끼 약을 달고 살지만, 그 덕에 큰 병은 걸릴 것 같지 않은, 엉뚱한 긍정회로도 작동한다.
허리나 무릎 아픈 것쯤이야 아는 병이니 열심히 관리하면 되고, 다른 큰 병 없는 것에 감사하며 건강하게 늙는 거, 그게 나의 소망이다.
나도 남편도 우리 가족 모두, 부디 건강했으면 좋겠다.
씬1. 운동방 같은 건 없는 우리집
뉴스 시청 중인 남편 앞에서, 요가 매트 깔고 누워 스트레칭 중인 나.
나: 오빠 오빠 봐봐. 나 이제 이거 된다?
남편: (보지도 않고 건성으로) 우와 잘 한다.
뒤집고 누워 있어 남편의 표정 같은 건 안 보인다. 계속 혼자 신나서,
나 : 오빠 그 <생로병사의 비밀>에 나오는 몸짱 어른신들 알지? 또 알아? 내가 그 사람들처럼 갱년기 몸짱, 갱짱으로 거듭날지. 그럼 나 유튜브에 <읒짜>라는 갱년기 여성 대상 운동 채널 개설하려고.
남편 : (좀전 복붙, AI처럼) 우와 잘 한다.
나 : (벌떡 일어나) 오빠 내 말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