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이라 딩크가 되기로 했다.
서른 여덟에 만난 남자와 1년 6개월 간 연애를 했고, 서른 아홉에 그 남자와 결혼을 해 어느 덧 5년.
그 사이 나는 두 번 유산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부부는 딩크가 되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판단했기에, 그렇다면 아예 딩크처럼 살아보겠노라 마음을 바꾼 것인데...
남편의 속내까지야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래야만 우리 부부가 난임이라 우울하고, 난임이라 슬프고, 난임이라 덜 행복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결혼 전에 나는 딩크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견해라고 할 만큼 진지하거나 확고한 생각은 아녔지만, 막연하게 딩크 = 이기적인 사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 임신과 출산은 결혼 후 자연스레 이어지는 다음 수순이고 부부이기에 주어지는 선물 같은 건데 (블라블라), 그걸 거부하고 자신들의 삶에만 몰두한다?! 그럴 거면 결혼을 왜 해선...
예전의 나는 그랬다. 그랬는데...
결혼을 하고 임신 대신 유산을 경험하면서 내 생각도 많이 바꼈다.
먼저 임신과 출산은 결혼을 했다고 해서 당연하게 이어지는 수순도 아닐 뿐더러, 부부라고 해서 모두가 받을 수 있는 선물도 아니다. 그러니 임신은 필수가 아닌 선택인 게 맞고, 임신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도 아닌데...
누군가에겐 선택인 이 임신. 누군가에겐 일상을 내어놓고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며, 그리고 이렇게 성공한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지는 건, 내 생각엔 기적 중에 기적이다.
가까스로 임신에 성공했다 치자. 노심초사 열 달을 지켜내야 하고 (나는 지키내지 못했다),
무사히 출산을 했다 치자. 그 다음엔 임신보다 더 혹독한 양육의 과정이 또다시 부부를 기다린다. 건강하게 태어난 아기가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우고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되록, 부부는 양육을 해야만 한다. 한 마디로 인생 매 순간이 넘어야 할 산이고 고비인데...
세상 그 누구도 저절로 태어나 아무렇지도 않게 성장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새삼 이 사실을 깨닫자주변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빛나는 기적처럼 느껴지는 신기한 현상.
나는 유산을 경험하고나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우리 부부는) 난임이지만, 일체의 시술을 받지 않는 딩크가 되기로 결심했다.
만일 정말 기적적으로 임신이 돼 아기가 생긴다면 그때는 기쁜 마음으로 출산을 하겠지만, (실은 지극히 낮은 확률에도 이걸 바라는 마음이 아직 있다) 임신을 위해 하는 인공적인 시술, 그 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일단 또다시 겪을지도 모르는 유산, 반복되는 시술 실패가 두렵다. 그리고 그때마다 들어가는 돈, 시간, 노력도 아깝다. 뭣보다 나는 나의 일상을 내어주고 아기를 임신해, 나의 전부를 받쳐 그 아기를 건강한 성인으로 자라게 할 자신이 없는데... (이 부분에서 새삼 지금의 나와 남편을 있게 해준 부모님을 존경하게 된다)
난임이 되고보니 도리어 딩크가 되었달까, 현재 나는 이런 상태다.
그러면서도 한 번씩 나는 예쁜 아기들을 보면 심쿵하고, 길 가다 어쩐지 독거 노인일 것 같은 분을 보면 나와 남편의 미래를 그려 본다. 가끔씩 속 모르는 누가 "왜 애가 없어?" "혹시 딩크야?" 물으면 나도 모르게 꿍해지고, 주변 지인이 출산 소식을 전해오면 온전히 축하해 주는 일도 쉽지 않다. 지금껏 별 생각 없던 어버이날도 앞으론 쓸쓸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딩크라곤 해도 여전히 나는 자신의 삶에 몰두하며 자기 개발에 힘쓰고 삶을 즐길 줄 하는 진정한 딩크와는 좀 거리가 멀다.
엊그제 난임 부부 정부 지원이 확대 된다는 기사에 또 한 번 이런저런 생각들, 아니 사실은 후회가 밀려왔다.
혹 진작부터 정부 지원이 돈 걱정을 안해도 될만큼 넉넉했다면, 나 역시 시술을 했을까? (그랬을 것 같다)
혹 시술을 했더라면, 지금쯤 우리 부부는 부모가 되어 있을까? (어쩐지 그랬을 것 같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이 사안이 전보다 그리 우울하거나 슬프진 않다. 점점 더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다.
거기엔 임신보단 폐경이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버린 나이 탓도 있고 (여전히 한 번씩 나는 생리가 늦어지면 임신일까 폐경일까 굴레에 빠진다. 어쩔 수 없는 늙은 신혼 아내)
그보다 이제는 정말 임신 보다, 아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부부의 길을 더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서다.
일단 내가 생각한 건 이 정도다.
부부. 노후를 위해 돈과 건강을 무조건 확실하게 챙길 것!
우린 돌봐 줄 자식이 없으니 서로를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노인이 되기로 하자.
그러면서 부부. 현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즐길 것!
노후 걱정만 하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실수는 범하지 말자.
기왕 딩크가 된 거, 딩크여서 좋은 점은 충분히 즐기고 누려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