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 정도를 그리고 작년 1년을 함께 누군가와 근무하고 난 뒤 나에게 생전 생각해 보지도 못한 것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삶.의.목.표. 여행 갈 때 어느 정도 플랜을 짜야 하고 짐은 늘 보부상이 되는 파워 J 이긴 하지만 삶의 목표나 철학 따윈 너무 거창한 것이라...는 핑계로 없었는데 어느덧 지향점이 생겼다. 물론 첫 번째, 아니 영 번째 목표는 나의 시어머니와 같은 시어머니가 절대 되지 말자...는 것도 있지만 이는 말하기도 싫으니 넣어두고.
나의 인생 후반기 목표: 꼰대가 되지 말자.
사무실에 직장 선배님 한 분과 근무하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서로 처음 알게 된 분이라 존중하고, 도와주며 신혼 부부인마냥 적당한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서로의 사정도 봐주며 잘 지냈다. 어른으로 배울 점도 많고 또 내가 젊은 인력으로 도와드리는 부분도 소소하게 있어서 합이 맞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밀접함과 만남이 일 년을 넘어가자 사람에게 약간 물려버린달까.. 자꾸 이제는 안 좋은 점만 보이는 건 내 탓인가 그의 탓인가.
그래서 내가 정리한 꼰대가 되지 않는 행동 강령을 적어본다.
첫 번째, 친해졌다고 함부로 하지 않기.
특히, 여기서는 서로 존칭, 사적인 일 시키기, 자기가 가져온 간식이나 음식 다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기. 뭐 이런 소소한 것들이 해당된다. 올해에는 어쩌다 보니 나보다 더 나이가 어린 분이 부서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존칭을 안 붙이신다. 그리고 본인의 업무에 자꾸 데려가신다. 아... 이거 아닌데.
둘째, 나이가 들어도 공동체의 할 일은 함께 하기.
간단한 과업이지만 모두가 함께 일을 벌이고 마무리하는 행위에 있어서 어쩌다가 쏙 빠지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사소한 일례로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는데 내리는 것은 무조건 나이 든 자신의 몫이라고 본인이 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거기까진 좋다. 그렇지만 퇴근 시간 즈음에 혹은 야근할 때 커피포트 등 용품을 씻는 적은 거의 본 적이 전무하다.
셋째, 본인의 경조사를 적당히 알리기.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시다 보니 가족 구성원에 정말 다양한 경조사가 벌어지셨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며 시간과 축의를 준비하여 자리를 함께했다. 그런데 또 하나, 또 하나 계속 생기고 이제는 좀 더 친해졌다고 생각하셨는지 예정된 둘째 아드님 결혼식을 종종 언급하시면서 준비과정을 자주 말씀하셨다. 뭐 스토리 들어드리는 건 어렵지 지 않으나 막상 결혼식이 닥친 날, 내가 정확한 날짜가 그때냐고 몰랐다고 에둘러서 말하니 돌아오는 반응. "응~ 그때야~ 시간 안 비워뒀어~?"
이건 농담인가 진담인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나에게 챗 GPT에게 물어볼 시간을 달라.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마음속으로 이 선배와 손절해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 같은 직종의 친구들에게 여럿 물어본 결과, 본인의 회사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으면 한 번, 혹은 많아도 두 번 정도까지는 회사에 알리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개인 연차로 처리하시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부담을 지우지 않았다는 경험담이 돌아왔다.
너무 가까운 자리에서 지내다 보니 어쩌다가 나는 수십만 원을 경조사비로 지출하게 되었고, 물론 그분도 종종 커피나 식사로 보답은 하셨지만, 주말의 내 시간은 역시 소중하고 한정된 자원이라는 생각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넷째, 나이가 들수록 입은 무겁게.
우리 아버지도 그런 편이긴 하지만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본인의 말을 더 길게, 많이 하려고 하는 걸까. 아는 것을 나눠주고 싶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점점 자신의 말에 주목을 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그런 걸까. 어떤 순간엔 나는 일이 쳐밀려서 1분 1초라도 집중하고 싶은 모멘트에 자신의 업무는 조금 마무리가 되셨는지 꼭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사람이 있다.
다섯째, 본인이 좋아한다고 직장 동료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허겁지겁 출근했는데 꽤나 큰 소리의 클래식 음악이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더운 날씨에 막히는 차를 뚫고 겨우 출근했는데, 오늘 할 일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바쁜데 내 고막으로 저 소리까지 처리하려니 너무 스트레스다. 컴퓨터부터 켜려는데 게다가 들려오는 말 "응~ 왔어~? 어서 앉아(커피 마셔)"
"저는 아침에 오자마자 커피를 마시면서 어젯밤에 있었던 당신의 소소한 일상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물론 마음의 소리)
여섯째, 직장은 직장이고 개인적 활동은 적당히.
부서원끼리 몇 개월이 지나 다들 마음이 착하고 라포가 형성되니 이제 퇴근하고서도 한잔하자, 어디를 가자, 어디 카페가 좋더라. 하는 빌드 업을 하신다. 추천만. 해주셨으면 좋겠다. 함께 하자고 제안하는 것도 상대에겐 부담이다. 아들자식 다 키우고 출가하신 세대와 허겁지겁 육아에 업무에 자기 계발에 허덕이는 내 나이 대와 스케줄이 많이 다르다는 걸 지나오셔서 아실만한 분들이 한 번씩 훅 치고 들어오는 그런 사적인 제안은 정말 곤란하다.
내가 그 유명한 엠지라고 하기엔 난 너무 나이가 많다. 내가 느끼는 이 불편감과 아쉬움은 누구나 직장 생활에서는 다 겪어봤으리. 현명한 직장 생활 지속 및 멋진 늙은이가 되기 위해 나는 위의 강령들을 잘 지켜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반드시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며 반성해야겠다.
#꼰대 #직장생활 #엠지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