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상춘은 늘 휴게실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밥을 먹으러 가는 건 상가에 오래 상주한 직원들끼리나 하는 일이다. 단순 배달업무를 맡은 상춘은 딱히 가까워질 만한 사람도 없고 매일 외식할 정도의 월급도 받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즉석밥 따위를 데워 와서 벽을 보고 먹는다. 이런 때에도 상춘은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다. 일할 때는 일에 집중, 식사할 때는 밥에 집중하면 된다. 진짜 외로움은 이 곳을 벗어나면 생긴다.
밤 10시가 되자 드르륵 하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열 번이 넘게 이어졌다.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난간에 매달려서 관찰해보니 각각의 출입구 셔터를 내리는 것이었다. 옥상 만담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특정 시간 이후에 상가를 퇴실할 시 소속 가게 호수와 이름같은 신변을 적고 나가야 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영업을 마친 상가에서 늦게 빠져나가는 사람은 수상하니까. 오늘 밤은 별 수 없이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오히려 잘됐다. 세콤 경비가 허술한 가게를 찾으면 이곳의 비밀을 좀더 알 수 있을 테다.
바로 3층으로 내려와 다시 아빠의 가게를 찾아 더듬댔다. 전층이 칠흑같이 어두워서 핸드폰 카메라 플래시를 켜고 한 걸음씩 나아가야 했는데 가끔씩 바퀴벌레가 샤샤샥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불쾌해. 밤이 되면 낮에 느낀 불쾌감과는 다른 느낌이 온 몸을 에워 감싼다. 쾌적함의 정 반댓말을 찾아서 말하고 싶은데, 왜 불쾌함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걸까.
코너를 돌았는데 불이 켜진 상가가 몇몇 있었다. 어느 곳은 직원 한 명이 남아 늦게까지 잔업을 하고 있었고, 나머지 상가에서는 아예 이곳에서 취침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젠장, 저 인간들은 집도 없나. 접이식 간이 소파를 펴고 잠자리를 편 사람도 있고, 컴퓨터 앞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열심히 게임을 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부부싸움이거나 중요한 레이드가 있는 거겠다.
3178호의 셔터는 굳게 내려가 있었다. 딱히 세콤 경비 시스템이나 스티커가 붙어있지는 않았지만 셔터 아래에 굵직한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평범한 네 자리 숫자로 구성돼 있어서 아침까지 돌리려고 하다 보면 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잔업하는 잔류 인원들의 움직임이 단순하지 않다. 일단은 몸을 숨기고 돌아다니다가 새벽이 되면 아는 숫자 몇 가지를 조합해서 도전해보기로 한다. 그 전에 찾아야 할 것은 비상용 플래쉬와 약간의 먹을 것이다. 아직 도처에 퀘퀘한 박스 먼지 냄새와 땀냄새가 부유하고 있지만 먹은 걸 온통 게워내니 이렇게 허기질 수가 없다. 일단은 3층 휴게실로 들어가 소파에 몸을 던졌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고급스럽거나 쾌적하진 않았지만 휴식을 취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이게 상남자들의 가성비인가. 조금 귀엽기도 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좀 쉬고 싶으면 몸을 눕히고 힘만 빼면 되는 것이지.
소파 위에서는 운이 좋게도 비상용 후레쉬를 바로 찾았다. 대형 선풍기가 있어서 콘센트를 꽂고 전원을 켰는데 작동하지 않았다. 휴게실 전기만 차단을 할 수도 있는 건가? 벽에 희고 검은 것들이 보여 손전등으로 비춰보았다. 영어 알파벳 스티커가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He is truly happy...’, ‘A rolling stone gathers no mass’, ‘No pain no gain’...
모쪼록 열심히 하자는 격언들이 문장 간 적절한 띄어쓰기도 없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 영어 숙어장에서 본 적이 있는 말이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 사랑도 일이라서 아빠는 사랑을 돌볼 수 없었던 걸까. 여기는 대기업이 아니다. 작고 작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살기 위해 드글드글 모여 있는 곳이다. 각자 힘내서 으쌰으쌰하자는 저 격언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모든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은 아이들이 희생되었나. 나는 손톱으로 A 스티커 먼저 긁어내보려고 애를 썼다. 이것 또한 전문 스프레이로 부착됐는지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연화제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소파배드를 펴고 코를 드르렁 골며 자는 사장의 가게에 몰래 들어갔다. 어찌나 깊게 자는지 코를 한 번 골 때마다 바닥과 테이블에 진동이 느껴지는 듯 했다. 검은색 통에 빨간 글씨가 적혀 있는 스프레이 몇 가지를 골라서 빠져나왔다. 휴게실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대부분 윤활제였다. 빨대처럼 생긴 빨간 토출구를 꺼내 하나씩 뿌려봤다. 기름기가 뿜어져 나와 유리벽이 자꾸만 맨들맨들해졌다. 하나 쓰고 던지고, 하나 쓰고 던지고. 찾았다! 연화제를 온 벽에 뿌리고 스티커를 하나씩 뗐다. 그리고 네 개의 철자만 남겨뒀다. l, o, s, s. loss. 아마 영어를 잘 아는 사장님이라면 손실부터 생각해 치를 떨 테지. 상가에 좀도둑이 들었다고. 소파베드 사장은 사라진 스프레이를 찾으며 자기 물품이 분실되었다고 소리칠 테고. 이게 인간의 상실이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건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아빠였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잔업자는 셔터를 내리고 자물쇠를 잠그지 않았다. 이미 상가가 모두 문을 닫아서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버스 막차를 타러 갔을 테다. 나는 가게 앞에 방파제처럼 쌓인 큰 뽁뽁이 뭉치 한 봉지를 훔쳐서 휴게실 한 쪽으로 가져왔다. 의자를 한 쪽으로 치우고 테이블 아래에 몇 겹을 깔았다. 남은 것은 바닥에 깔고 누워서 한 바퀴 굴러서 테이블 아래로 쏙 들어갔다. 나름 포근한 침낭이 완성됐다. 태풍이 온다고 한 날 저녁에 부랴부랴 유리창에 뽁뽁이를 붙이던 일이 생각났다. 그날도 춥고 외로웠는데, 뽁뽁이가 방한과 파손 방지에 큰 역할을 한다는 건 그때 알았다. 나름 폭신하고 따뜻했다. 수족이 묶여서 답답하긴 했지만 나는 모처럼 ‘새제품’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다리던 택배를 받았을 때 물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껍게 싸인 뽁뽁이를 들어올리면 왠지 모르게 대우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이건 중요한 물건이라서, 파손되기 쉬운 제품이라서, ‘취급유의’ 스티커를 붙일 만한 제품이라서, 문제가 생기면 골치 아파질 정도로 비싼 제품이라서. 어쩌면 박스테이프로 누가 나를 돌돌 말아줘도 행복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쿰쿰하고 어두운 바닥에 내팽개쳐진 인간이 아니다. 그 자체로 값이 비싸고 소중한 ‘물건’이다. 좋은 물건이 되는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인간이라면 모를 것이다.
5월 19일
상춘이 모자란 사람처럼 부랴부랴 퇴근하는 일이 적어지자 동료들은 오히려 걱정하기 시작했다. 상춘은 요새 메신저를 잘 하지 않는 미아 때문에 별로 기력이 없다. 번갈아서 서로를 기다린 적은 잦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오랫동안 본인이 기다려 본 적은 처음이다. 이 정도면 잠수 아닌가, 너무 만나기 싫어하는 티를 많이 내서 그런가, 나중에라도 만날 것처럼 밀당이라도 했어야 했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상춘은 다른 메신저 친구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미아도 좋지만 당장 원룸에 돌아가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잠입을 가장한 나의 노숙, 아니 나의 방랑, 아니 부유는 시작됐다. 집에 돌아가지도 않았지만 이 건물을 떠나는 일도 없었다. 자그마한 가게가 택배박스처럼 켜켜히 쌓여 있는 이 상가에는 사실 없는 것이 없었다. 휴게실도 작은 공원도 화장실도 있고 박스와 뽁뽁이도 있었다. 밤이면 각종 전자기기로 가득한 가게들 몇 곳을 찾아 핸드폰을 충전하고 컴퓨터를 했다. 없는 건 아빠밖에 없었다.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땀냄새는 아빠 품의 향기로 느껴지면서 아늑하기까지 했다. 이곳에 없는 건 단 하나였다. 웃기게도 아빠가 아니라 ‘아빠의 연락’이었다. 온갖 요리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딸내미가 나흘째 집에 오지 않는데 아무런 제스쳐가 없다. 사랑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것의 실종 선고를 받는다면? 좌절할 거라 생각하는가?
부유. 그래, 이 곳에서는 부유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첫째는 담뱃재가 공기 중에 유유히 떠다니는 공원에서. 전소한 유해 물질 잔여물의 빛깔이 저리도 희고 가볍게, 세상을 즐기듯 유유히 존재해도 되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들려오는 사장님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간 열심히 모은 돈으로 누구는 현금만으로 부천에 아파트를, 누구는 대출 영끌로 대치동 오피스텔을 매입했다고 했다. 물론 상가 옥상에서 보이는 용산구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식하게 땀 흘리며 번 돈으로 과연 순수한 부유를 가질 수 있을까. 그들 또한 밤 8시 아니면 9시나 되어서야 겨우 집에 들러 잠이나 자고 나올 게 아닌가.
비상구 한 켠에는 이런 벽보가 붙어 있기도 했다. 사실은 아래 상우회 공문이 이곳의 부유에 대한 열망을 압축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제목: 상가 내 가상화폐 채굴 금지의 건
상가 내에서 가상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채굴은 전체 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최근 상가 내에서 몇몇 상인이 인터넷 가상화폐 채굴행위를 함으로 인해 상당한 전력을 소모하여 저희 상가의 최고 사용량이 갱신되었습니다.
전력 사용량 피크치가 상승하면 전력요금이 상승하여 채굴기를 가동하는 몇몇 상인들로 말미암아 대다수 선량한 입주 상인에게 상승된 전력요금을 고스란히 전가시키는 행위임으로 마땅히 근절되어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집에도 가지 않고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내 처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너무 간단한 방법으로 집보다 외롭지 않은 거처를 획득하고 여러 가지 인생의 결말을 구상할 수 있었다. 가출 청소년의 부유하는 삶이라기에는 너무나 편안했다.
오랜만에 상춘에게 다시 연락을 남겼다.
<요새 뭐해? 소식이 뜸하다? 여친이라도 생긴거야?>
<아니라고 진짜 너밖에 없다고 요새 왜 이렇게 잘 안들어와? 너야말로 외국인 남친 사귀는거 아니지?>
<됐고, 주소 불러>
<아니 이제는 직접 찾아오려고 하는거야 설마?>
<아니, 선물 보낼테니까 받을 주소 부르라고. 찜찜하면 근처 편의점 택배로 받던가>
<됐다 ㅋㅋ 건물주소로 불러 주겠음. 잠시만.>
처음에는 심심풀이 겸으로 시작한 채팅이었다. 매일매일 화면을 통해 만날 때마다 일상 공유를 많이 하게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친구나 가족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대화가 통해갈 즈음에는 화면 밖에서도 상춘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그나 나나 적적한 집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으로나마 전력을 다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 채팅을 마치고 캄캄한 방에 누워 있을 때는 두꺼비집이 내려간 빌딩처럼 마음이 캄캄하고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적막과 어둠에 숨은 공기가, 여기 너 혼자뿐이라고 내게 달라붙어 속삭이는 공기가 온 모공을 통해 들어와 닭살이 돋았다.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 서로에게 더 위로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랜선이나 와이파이가 아니라 두 다리로, 전력을 다해서 그에게로 뛰어가고 싶던 밤도 있었다.
외로운 사람이 많은 이유는 외로운 사람이 많아서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이 많아서 또 외로운 사람이 늘어난다. 상춘은 마음이 외로운 사람인 것 같았다. 그냥 대화를 하다가 보면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채팅 하다가 조금이라도 일찍 잠들라 치면 분리불안이라도 있는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날이 많았다. 그 정도가 심해서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다른 채팅 친구가 생겼는지 한동안 뜸하다가 다시 급하게 대체재로 나를 찾기도 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상춘에게 랜선은 자기가 외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밧줄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현실에서 만나기는 꺼려했다. 싫어하는 이유야 이해가 가지만 손해를 본다고 해도 오히려 어린 여고생인 내 쪽이 아닌가. 그때 나는 느꼈다. 그가 지금 친구로 삼고 있는 것은 나, 미아가 아니라 활발히 돌아가는 데스크탑 쿨러이고, 끝없이 출력되는 텍스트이며, 숨 쉬듯 들어오고 나가는 전기였던 것이다. 진짜 밧줄을 여러차례 던져봐야 소용없는 것이었다. 외로움이 턱 끝까지 차 위태로운 이들은 저 멀리 뻗은 손을 잡을 여력이 없다. 당장 살고 봐야 하기에 가까운 부유물을 잡고 간신히 숨을 몰아쉰다. 손쉬운 구원자이자 그것이 주는 시원하고 달콤한 숨. 거기에 중독된 사람들은 더 이상 구차하고 복잡한 남의 손을 잡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