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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Aug 16. 2024

<잠입>-5


5월 20

상춘은 모임에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모임에 끼워달라고 하면 애정결핍이 있는 것 같다고 여론을 몰았다누구랑 누가 유독 친한 것 같으면 둘이 수상한 애착 관계가 있다고 놀렸다상철은 그게 놀릴 거리가 아님을 본인도 알고 있었다어차피 본인도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래도 문제될 게 없었다동조하는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유일한 희망과 품, 팔베개, 말동무가 꺾였다는 좌절을 하기도 전에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이 순간부터 그녀의 죽음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다. 그건 아주 중요한 용의자가 돼서 경찰서에 꼼짝없이 끌려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번 잠입도 실패하고 범죄자로 낙인이 찍히는 일만 남는다. 나는 최초 목격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녀도 아늑하고 아름답지만 불쾌한 혼자만의 삼각존에서 혼자 죽어서는 안된다. 초록색 테이프는 연약해보이지만 생각보다 끈끈해서 푸르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심폐소생술도 해보고 시든 꽃에 물을 주듯 찬물도 뿌려봤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숨을 쉬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가녀린 편이었지만 죽은 사람의 육체는 아주 무거웠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질질 끌어서 가게 한가운데 옮겨놨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삼각존 위에 가지런히 모으고 장미 한 다발을 안겨주었다.


 시체의 시큼한 냄새와 갓 꺾은 식물에서 나는 풋내가 섞여 들어왔다. 사실은 식물이 꺾일 때 나는 풋내는 식물이 고통스러울 때 내뿜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서 느꼈던 따뜻함과 싱그러움은 사실 고통에서 나온 안티엔도르핀같은 것이었나. 대가 없는 무한한 호의가 아니었나. 나의 잠입에 대해서만 말했지 그녀는 자기 안의 어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어디가 그렇게 외로워서 이 작은 방 안에서 아무 소녀나 기다리면서 웅크려 있던 걸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나를 만나고 나서,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나서 자살을 한 걸까. 외로운 장미 같은 모습으로. 마치 자기를 찾아올 사람이 있는 한 여름밤에 죽을 거라는 걸 알고 있던 사람처럼. 아니면 꾹꾹 눌러놨던 아픔과 상처가 찰나의 아이디어를 만나서 실현된 걸까. 자살은 늘 그렇게 실행되니까.     


 애착이 사라졌다. 목을 매달기 전에 다른 방식으로 자살을 시도한 흔적이 있었다. 손목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상처의 깊이가 동맥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피는 유난히 거무튀튀했다. 내 손에는 좀더 주황빛에 가까운 피가 묻어 있었다. 테이프를 풀다가 마침내 물집이 터져서 곪았던 고름과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래, 너와 나의 피는 같지 않았지. 애초에 함부로 애착을 품었던 건 나였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누구보다 진하게 피를 섞고 서로를 확인하고 그간의 외로움을 확인함으로서 진정한 관계를 완성시켰다.     


  나는 그녀가 자살한 것임을 알 수 있도록 테이프를 모아서 제 자리에 갖다 두고 커튼을 양쪽으로 걷어두었다. 그리고 손을 씻고 경건한 마음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만들고, 카페 양 문을 활짝 열고 걸어 나왔다. 내일이면 그녀는 시체로 발견된다. 경찰의 수사 결과 현장에는 내 지문과 피와 고름이 발견될 것이다. 이곳에 삼일이나 숨어 지낸 소녀를 안다는 사람이 등장할 것이다. 그 소녀의 인상착의와 발견 일자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될 즈음 집으로 경찰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각성이 필요하다. 그녀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그것을 감행할 시간이 됐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야밤에 마시는 카페인은 제정신 아닌 머리를 각성시켜주지는 못할망정 사지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찬물로 연신 몸을 닦아내는데 자꾸만 바닥에 핏물이 번져서 바닥을 닦다가 내 몸을 닦다가, ADHD라도 있는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누가 보면 영락없는 살인자로 보일 것 같았다. 얼마쯤 안 가서 나는 깨끗하게 씻기를 포기했다. 그냥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그냥 울었다. 막 울었다. 그러다가 유행가가 생각나서 잠깐 웃기도 했다가 다시 울었다. 울다가 옷을 조금 빨고 다시 울고, 바닥을 닦다가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또 울었다. 피, 땀, 눈물. 범벅이었다.          


 한참을 울다가 일어나 4층 비상구 앞 한켠의 폐기물 및 재활용 분리장 옆에 있는 집진기 사용실로 갔다.집진기는 거대한 기계로 되어 있는 강력한 에어컴프레셔인데 보통 데스크톱 본체나 복잡한 기기 내부를 청소할 때 사용한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사용법을 본 적이 있는데 어찌나 시끄러운지 수상한 고글과 마스크, 헤드셋을 꼭 착용하고 사용했다.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고막 통증을 호소하는 직원도 있었다. 나는 집진기의 전원을 켜고 파란 호스를 들었다. 이걸 내시경 하듯 목젖으로 삼키고 한껏 쏘아본다면 공기의 소리가 클까, 내 비명소리가 더 클까? 아니, 내가 만약에 자살한다면, 이라는 가정을 수십번 했지만 이런 결말은 아니었다. 나는 피, 땀, 눈물로 젖은 알몸에 총알 같은 공기를 쐈다. 사실은 몸을 말리러 들어온 거지만 생각보다도 더 아파서 양손으로 최대한 멀리서 쏴야만 했다. 살이 많은 팔뚝이나 뱃살은 움푹 들어가기도 했고, 손등이나 정강이 같은 곳은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는 것처럼 뼛속까지 저릿했다. 공기가 주는 아픔에는 익숙했다. 특히 하릴없이 거리를 쏘다니거나 누구를 기다리느라 따분한 여름 방바닥을 버티고 있을 때 공기는 자주 나를 때리곤 했다. 많이 외로워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무심한 공기는 자주 사람을 때린다. 물이나 불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온 피부는 공기와 맞닿아 있어서 온 구멍을 통해 침입하는 외로움에서 도망갈 수 없다. 이 지구에 태어난 이상 가끔은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흉터는 남지 않았고 피부는 완벽히 말랐다. 옷도 말려서 다시 입었다. 회색 후드 소매는 터진 실밥에 공기를 잘못 쏘는 바람에 한 단이 풀어졌다. 어쩌면 좀 더 이 상가에 어울리게 됐는지도. 우스운 일이다. 함께할 때는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떠날 때면 항상 내게 꼭 맞게 물들어 있었다. 그것과 얼마나 닮게 되었는지는 헤어져 봐야만 알 수 있다. 싸구려 염료로 염색된 천들이 그라데이션으로 물들어가는 것과 같이 한 사람의 시간도 어쩌면 그런 것이다. 나는 땀냄새 나는 상가에서 숭고한 노동자의 체취를 흡수하고, 카페 사장의 명랑한 외로움을 흡수하고, 이곳에 부유하는 험난한 질서와 켜켜이 쌓인 박스와 뽁뽁이의 습성을 학습하고, 이제는 비로소 여기 즐비한 전자기기가 되기로 한다.     


 아빠의 가게로 갔다. 캐비넷 서랍을 하나 열었다. 거기는 십수개의 저장장치가 들어 있었다. 1kg은 되어보이는 거대한 외장하드부터 쇠로 된 USB까지. 외관은 달라 보이지만 거의 비슷한 색이었다. 각 저장장치에는 견출지가 붙어 있었는데 이를테면 ‘2010~2015’라던지 ‘5월 산출’, ‘납품자재관리’처럼 어떤 내용의 정보가 들어 있는지 나름대로 적혀 있었다. 내 몸에 뭔가를 적고 싶었는데 뭐라고 적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Mia’? 본명인 미연을 적을까? 아니면 ‘딸’이라고 적을까? 무엇이 되었든 내 안에 든 초인텔리전트 정보는 기기 속 데이터와는 다르게 시시때때로 바뀌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무엇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었다.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좋은 퍼포먼스로는 이어지지 못해 아쉬웠지만 캐비넷을 닫았다.     


 겹겹이 놓인 박스 중에 손잡이가 달린 박스를 찾았다. 여기에는 엄청 큰 박스가 많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박스 몇 개를 해체해 거대한 널빤지로 만들고는 큰 물건을 싸서 제멋대로 접어 테이프칠을 하곤 했다. 다행히 나는 키가 크거나 살이 찐 편은 아니어서 가장 큰 박스에는 어떻게든 몸을 구겨넣을 수 있었다. 박스는 구했고, 이제 송장을 뽑을 차례다. 받는 곳은 집을 떠날 때부터 구상해두었다. 미국 아니면 우리 집이었는데, 지난 며칠간 살펴보니 이곳에서 미국을 포함한 외국으로 택배를 직접 보내는 경우는 잘 없고, 일단 수화물이 모이는 곳에 보내면 오픈마켓측에서 알아서 처리하는 방식이라고 하니 참 서글픈 일이다. 불쌍한 아빠, 딸을 무료로 외국 유학 보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수신처에는 집 주소를 적었는데 발송처가 문제였다. 원래 계획은 아빠 가게 주소를 적는 것이었다. 생각을 바꿔 카페 주소를 적었다. 이 잠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애착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카페에서 새로운 죽음을 보기도 했지만 그 전에 나는 새로 태어났다. 아빠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갓 태어나버린 딸내미를 선물로 받아본 아빠의 표정은 어떨까. 사실은 내일까지 이곳에서 몇 가지 더 훔쳐보고 싶은 것이 많다. 이곳의 숭고한 노동자들은 그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소식을 들은 아빠는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할까. 기왕이면 아빠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놀랄까? 울까? 어딘가에 전화를 걸까? 눈꺼풀은 또 얼마나 찡그릴까? 그의 순수하게 인간다운 반응을 보고 싶다. 나는 태어나 한 번이나 본 적이 있었던가? 호탕하게 웃거나 주저앉아 울거나 물건을 던지며 화내거나 생식기를 부여잡으며 초조해하는 모습을? 그러나 아쉽지만 나는 오늘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순식간에 아는 여자 둘이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될 아빠의 표정도 무척 궁금하기 때문에 많이 아쉽지는 않다.     

 송장을 하나 더 뽑았다. 이번엔 발송처를 우리 집으로 적고 수신처에는 상춘의 주소를 적었다. 그에게 늘 보내고 싶은 게 있었다. 백팩에서 전선 뭉텅이를 꺼냈다. 언젠가 그는 우리가 선으로 이어져 있다고 했었지. 그래봐야 랜선 만남을 긍정하려는 핑계야. 이번에는 랜선이 아니라 지독하게 다양한 전선들을 보낸다. 거기에는 티비와 노트북을 잇는 선도 있고, 앰프와 관련된 것도, 심지어 와이파이나 자전거와 관련된 것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입은 옷의 모든 고무줄을 꺼내서 넣었다. 브라나 팬티도 예외 없었다. 둥근 고무줄을 끊어 잡채를 버무리듯 다른 선들과 섞어버렸다. 우리가 진짜로 가까이 이어질 수 없다면, 내가 너에게 먼저 선을 보낼게. 이 난잡한 관계들 중에 네가 처음으로 집을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 된 돌 아기처럼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헤맬 지도 모른다. 그 우스운 돌잡이 상황이 궁금해서 내부감시용 CCTV 카메라를 하나 연동해서 넣어둘까 하다가 참았다. 사실 나는 그가 무엇을 집을지 하나도 궁금하지가 않다.     


내일도 아빠와 조팀장님은 택배사로 보낼 물건을 한가득 실어 나를 예정이다. 가게 앞에 아파트처럼 쌓은 택배 사이에 상춘에게 보낼 박스를 적당히 섞어두었다. 그리고 손잡이 박스를 옮겨 몸을 구기고 들어갔다. 손잡이 부분을 내 팔이 지나갈 만큼 커터칼로 찢었다. 한 손으로 적당히 테이프를 붙이고 스카치테이프로 손잡이 부분을 다시 수선했다. 손잡이 구멍으로 밖을 빼꼼 내다봤다. 캄캄한 복도에는 여전히 쿰쿰한 냄새만이 진동했다. 눈앞에는 박스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 박스에는 어떤 게 들어있을까?     


 순간 나는 전기가 통한 듯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정신없이 물건을 나르고 포장하고 전화로 빨리 보내달라고 소리 지르고 거대한 화물차를 움직이게 하는 주인공, 이 거대한 상가의 표정을 결정하는 결정체, 그게 바로 박스에 들어갈 전자기기가 아니었던가. 위풍당당하게 입장했다가 창고의 썩은 내를 얼마간 맡다가 뿌듯하게 납품되고 마는, 손님이자 주인이 아니었던가.      


내일 나는 비로소 아빠의 그 날 가장 소중한 무언가가 된다. 아파트처럼 쌓여 캄캄한 상자 안에서 망가지지 않고 잘 있는지. 일정에 맞춰서 잘 데려다 줄 수 있는지. 행여나 어디가 깨지거나 문제가 있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신경 쓸 테다. 온 하루의 근력과 땀과 시간을 온전히 여기 이 박스에 쓸 것이다. 이제야 나는 당신의 일이요, 돈이요, 보람이요, 성과요, 하루를 사는 의미가 된다. 마침내 물집 잡히고 터지고 상처 가득한 나의 몸을 당신의 손으로 직접 실어 나를 테지요. 작고 조용하고 적막한 나와 그의 집으로. 만약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다면 관찰하고 싶다. 나의 상처를 그가 과연 알고 있었을지. 예상치 못한 택배 박스를 받아볼 때처럼 이게 웬 것인가 멍청하게 들여다볼 것인지. 아니면 지난날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려줄 것인지. 그때에서야 나는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내가 계획한 잠입이 완전히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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