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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Aug 19. 2024

<아담의 이브화>-2


 “남자들은 다 그래요?”

 “네, 남자들은 다 그래요.”

 “그놈이 그 놈이라니까요.”

 “하여튼, 믿을 인간 하나 없네. 말세야 말세.”

 언제나 그렇듯이 나에게 온 질문 중에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문제는 없었다. 청순한 스타일의 손톱을 부탁한 그녀는 며칠 전 친구와 관계를 맺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리 제가 먼저 달려들었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요, 그건 성폭행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더러워. 욕정밖에 없는 쓰레기들.”


 그녀들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지 내 눈치를 보는 척을 했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신상 구두를 비벼대며 발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투명 매니큐어를 집어 들었다. 울퉁불퉁한 손톱 결 위에 두 번, 세 번을 두껍게 발랐다. 그녀들은 말라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나 또한 말라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것은 것이 무엇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건조한 나의 눈빛을 그녀들은 불쾌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사실 말라가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끈적끈적한, 불쾌의 장에서 자신의 문란함을 남자들의 욕망 때문으로 치부하는 그녀가 손톱 치장을 모두 마치고 일어났을 때,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치마의 흰 레이스가 팔랑거렸다.

이제, 그녀는 완벽하게 처녀로 보였다.


 그런 손님들을 몇 차례 거치고 짬이 날 때마다 나는 딱, 딱, 손톱을 깨물며 창밖의 먼 공원을 쳐다보았다. 동료들은 손톱을 지우고 또 다른 색으로 발랐다. 나원장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원피스에 이 색이 더해지면 완벽할 것 같은데요.”

 탈의실에는 그녀의 옷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나는 그녀가 새로 갈아입고 나온 빨간 플라워 프린트 원피스에 아쿠아 블루 매니큐어를 집어 들고 말했다. 그녀는 손뼉을 치며 리폼을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원피스를 입은 채로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녀의 다리를 부여잡고 원피스의 끝자락부터 꽃무늬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녀의 허벅지 근육이 조여지는 느낌이 났다. 허리, 똥배를 지나 가슴 부분에 다다랐을 때 손은 느려지기 시작했다.


 “괜찮아, 뭐 어때.”

 나는 이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컹한 지방 위에 세상에 없는 꽃을 그려 넣었다. 그녀는 나를 남자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의 그녀 같지 않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저급하게 들려왔다. 나는 매니큐어가 거의 닳을 때까지 꽃을 그리는 일에만 집중했다. 마지막 한 송이가 피어나고, 그녀의 위대한 아름다움은 완성되었다. 작은 손톱 따위가 아니라 온 몸이 매니큐어로 뒤덮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추한 여성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나는 이 경이로운 추함이 완성되었을 때 진이 빠져버렸다. 나원장은 흡족한 듯이 거울 앞에서 춤을 추었고 동료들은 자신들의 옷도 봐달라며 어깨를 배배 꼬며 나에게 곁눈질을 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녀는 그 옷을 벗었다. 그리고는 탈의실 문 안쪽에 걸어두었다.

 “비로소 여자가 된 느낌이 드는 옷이라고나 할까.”

 그녀에게 여자란 단순히 성별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말은 아주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딱, 딱.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와 함께 초침이 너무도 느리게 움직였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얇게 손톱을 뜯으려 애썼다.     


 배꽃은 피어 있었지만 이화는 보이지 않았다. 몇몇 저질스런 커플들과 개를 끈 노인네들뿐이었다. 모든 손가락의 손톱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손톱을 깨물며 공원을 한참이나 돌아다녔지만 현기증만이 날 뿐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커플들은 더욱 어두운 곳으로, 지친 노인네들은 개에게 간신히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화와 함께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던 그 장소로 갔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로운 풍경이 있었다. 이화의 손가락 향기가 나는 곳 즈음에 앉아서 허공을 응시했다. 달빛 아래 쏟아지던 순수가 눈에 아른거렸다. 나는 불현듯 태초의 어느 공간에 서있는 느낌이 들었다. 불완전한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였다. 발밑에 버려진 나뭇가지를 주워 반으로 부러뜨린다. 한쪽 눈을 감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가지 끝에 초점을 맞춘다. 무언가 보인다.


 이화는 가지런히 앉아 있었다. 옆에는 달빛을 쥔 아파트 경비원이 앉아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경계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공원의 광경을 깨는 그는 왠지 선악에 대해 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화는 두려움에 떨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평온하게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와 나는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한다.     


  나는 네일 샵의 비상구를 발로 차서 열었다. 사실 열쇠는 옆 화분 밑에 있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나는 탈의실에서 꽃무늬 원피스를 꺼내 입고 욕망에 대해 말하던 입술에 파스텔 핑크로 매니큐어를 칠했다. 주황색 머플러로는 짧은 머리를 감쌌다.

 한 손엔 날카로운 나뭇가지를 쥐고 밖으로 나와 유리창 앞에 섰다. 이제 나는 유리창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다.     


이브를 향해 어둠 속을 천천히 걸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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