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 소설을 마치며
<잠입>은 방랑하던 시절 적은 이야기다. 스토리라인은 자신을 미아라고 칭하는 미연이 아빠를 찾아 용산 전자상가로 들어가는 이야기다. 그 당시 나는 실제로 용산의 한 전자상가에서 지독한 9-6의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일을 한 것은 아니고, 퇴사 후 남편과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정말 미아처럼 상가 근처의 식당과 카페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휴게소에 들어가 잠시 쉬기도 하면서 얼마큼 기생하는 시간을 보냈다. 굴다리 건너의 화려한 건물과 예쁜 카페들. 사실 그곳은 내가 떠나온 전 직장의 터였다. 그 곳을 건너와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또 보고만 있어야 하는 내 처지를 담아 지어낸 것이 이 소설이다. 이곳에 이렇게 침입해 있을 거면 이 경험을 취재 삼아 좀더 생동감 있는 결과물을 창출해보자 한 것이었다.
소설의 주제는 단연 '사랑(애착)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 인물을 설정할 때는 반대 척도에 서 있는 미아와 아빠, 그리고 제3의 인물 상춘까지만 설정했다. 미아와 상춘에는 나 자신을 투영해서 썼고, 아빠(경제활동이 생의 중심인 남성)에는 실제 아버지와 남편을 얼마간 투영해서 썼다. 카페 주인은 글을 쓰는 중반에 위기와 절정으로 삼을 소재가 필요하여 중간에 투입했는데, 그녀가 없었다면 소설의 중심 소재인 '애착'을 이만큼이나 표현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더불어 본 원고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영상 등 다른 콘텐츠로 구현했을 때에도 다채로울 수 있기를 원했는데, 붉은 장미와 세모난 단칸방이 시각적인 생동감을 부여해준 것 같아 아주 고마운 캐릭터가 되었다.
대주제가 애착과 모험이라면, 미아의 생각이 아닌 전체적인 배경은 용산의 신도심과 구도심을 그려내는 데 있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용산의 구도심인 전자상가는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실제로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또 떠돌고 있었다. 굴다리를 중심으로 모 제품을 강매당한 중년세대의 기억, 호텔 스카이라인을 세우기 위해 허물어지는 대형 상가와 아찔했던 비트코인 채굴의 역사, 그 인근에서 수십년간 택배박스를 싸며 살아온 사장님들, 그리고 끌차를 끌고 다니는 직원들의 모습과 실수 썰까지 남편과 동네 이웃들에게 여러가지 설을 묻고 들으며 소재로 삼아 적었다. 굴다리 건너편의 분위기는 내가 직접 몸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전자기기의 메카, 용산에서 MZ세대의 카페 메카, 용리단길로 변화한 그 곳에서 내가 경험한 두 가지 색을 온전히 담고 싶었다. 그럼에도 신용산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이유는 어느 화려한 건너편에서 아직도 치열하게 본업을 이뤄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더 초점을 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용산은 참으로 재미있고 기이한 동네다. 내가 중심 배경을 잡은 전자상가 인근 외에 이촌이나 이태원쪽으로만 넘어가도 여전히 빈부격차가 눈에 훤히 보이는 동네가 아주 많다. 그런 용산구를 중심으로 작품 하나를 완결시킬 수 있었다는 것은 현 시대에 서울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 영광이었다.
본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며 '결핍'이라는 키워드를 언급했는데, 본 소설 역시 주양육자에 대한 애정결핍을 소재로 삼고 있다. 다만 소설이 미아 1인칭 시점이라는 점을 이용하고, 극단적인 성격으로 설정하여 절대적인 애정결핍이 아니라 어쩌면 애정결핍을 주장하는, 다소 중립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한껏 격앙된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싶기도 했다. 미성숙한 청소년으로 설정한 것도 그런 느낌을 한껏 살리는데 도움이 된 듯 하다. 더불어 '미아'라는 이름도 본인 스스로 지어낸 것이 아니던가. 동태탕을 냉동실에 집어 넣으며 '무엇이든 제 이름대로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소설은 3만자 내외로 구성돼 있는데, 실은 본 소설의 결말부분 이후의 '박스 안에서의 여정'을 더 적어가려는 계획도 있었다. 용산에서 택배 포장을 마친 후 거대한 차에 실려서 일산의 어느 물류창고에 도착, 또 그곳에서 일일 알바를 하는 청년들의 손과 손을 타고 종국에는 (미아의 환상 속에 있는) 행복한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망상)의 나래를 그려가고 싶었다. 다만 소설의 제목과 소재가 <잠입>이라는 점과 더불어 용산 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초점을 두고 싶어 상기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쪽을 선택했다. 미아가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된 이유와 실천했을 때의 각오, 마음가짐을 더욱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에 대해서. 작품 내에서 미아는 아버지를 '가정을 등한시하고 돈벌이에만 집착하는' 인물로 나오지만 사실 그 모습은 아주 평범한 현대인이다. 혹여나 매우 성실하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가장이나 번듯한 청년이 상처를 입는 오해는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다만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토록 험난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사랑보다 일'이 항상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그것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자주 이야기 되지만,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묻는 일은 아주 적기 때문이다. 가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이 내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더더욱 폭력적인 말로 들린다. 그렇게 살기 싫은 사람이 나 말고 또 아주 여럿이 있고, 또 이미 고통을 받고 있다면 이것은 내가 양보를 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더더욱 공론화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이미 고통받고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 바친다. 그리고 미아 혹은 나처럼 작은 일에도 깊게 상처받고 크게 부풀리는 마음 약한 애어른에게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