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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Aug 19. 2024

<아담의 이브화>-1

 나이 서른이 되도록, 지정된 공간 밖에서는 여자와 말을 섞어보지도 못한 사내가 있다. 이 나이를 먹고도 사내라고 한 것은 내가 아직 동정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그런 나를 불쌍히 여긴다. 너는,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에게 둘러싸이는 것 밖에 없으면서 왜 아직도 그런 신세냐는 타박을 들을 때면 화가 치밀어 이런 말을 읊조리고 싶다.

“모든 욕망은 손톱으로부터 나온다.”     


 네일 샵에서 일하는 사내가 여성혐오증에 걸렸다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꽤 어릴 때부터 이곳의 일을 시작했으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이성에 대해 알아갔다.

 여자에 대해 잘 몰랐던 내가 그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 번째 방식은 그들을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 것이었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여자와 바르지 않는 여자. 전자의 경우, 매니큐어는 그녀들의 옷과 같은 존재였다. 그런 점에서 그녀들에게 후자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은 사람은 나체로 밖을 신나게 쏘다니는 정신병자나 다름없었다. 샵을 안방처럼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은 자신들이 그런 몰지각한 여성이 아님을 다행으로 여겼다. 한 번은 그녀들의 근거 없는 우월감이 의아스러워 원장에게 물은 적도 있었다.


 “도대체 여자들에게 손톱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원장은 40대의 돼지 노처녀로,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입만 열면 여성이나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만을 쏟는 사람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일은 아름다워지는 일이라고 했다. 손톱에 관해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중요한 것은 매니큐어를 바른다는 행위인 것이었다.

 이후로 한참 동안 나는 항상 그 의문에 휩싸여 지냈다. 가게 사람들로부터는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 앞으로 심상치 않은 한 손님이 앉았다.  그녀가 흰 손가락을 야들야들 떨며 내 앞에 내밀었을 때, 나는 드디어 해답의 순간이 다가왔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은 앞머리를 축 늘어뜨린 그녀는 내가 규정한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여자였다. 그녀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여자가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손톱은 무언가를 입었던 흔적이 남아 있으나, 그 모양은 아주 추상적이었으며, 대체로 끝은 모두 닳아 없어지고 긁히고 벗겨져 있었다. 마치 원하지 않은 관계를 하고 난 것처럼 그런 손톱들은 대부분 매니큐어를 아슬아슬하게 절반 정도만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스스로의 자책감 때문인지 일부는 자의로 찢고 뜯은 상태였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런 여자들은 언제나 파출소에 신고라도 하러 온 사람처럼 부끄러워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순결이었다.     


 정말로 솔직히, 나는 어떤 여자의 손톱을 사랑한 적이 있었다. 흰 쿠션에 던져진 길고 가는 손톱. 볼록한 굴곡을 따라 진한 알코올 향으로 파헤쳐지는 연약한 에나멜 옷자락. 그녀의 헐벗은 손톱은 언제나 홍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매니큐어가 지워지자마자 그녀는 조급하게 검은색 매니큐어를 집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정말로... 검은색으로.. 발라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이따위의 어이없는 질문을 하면서까지 그녀를 붙잡았다. 그때, 그녀가 나를 보며 지은 표정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런 저주가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너는 매니큐어를 바르는 여자와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다.’


 고로 나는 사랑의 대상으로 매니큐어를 절대 바르지 않은 여자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고자 하는 욕망이 너무 강한 나머지 본연의 것 마저 부끄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식의 여성들을 혐오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느 날, 나원장은 이상한 조개껍질 같은 것을 손톱에 붙이고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안남이는 여자가 어떤 손톱을 하는 게 좋아?”

 매니큐어를 하나의 옷으로 생각하는 나에게 그런 질문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동정의 사내로서는 당연히 헐벗은 손톱을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덧붙여 나는 꼭, 절대로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는 여자를 만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원장이 그 투박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매니큐어를 벗겨두지 않으려는 여자는 있어도, 절대 바르지 않는 여자는 없단다.”


 그 한 마디로 인해 나에게 여성이란 불신의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후 가게의 손님들은 물론,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라 한들 모두 손톱을 담보로 잡힌 아름다움의 노예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깊은 좌절에 빠졌다. 가게 안의 매니큐어를 온통 마셔서 없애버리고, 아세톤으로 된 비라도 내리게 해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을 씻겨버리고 싶었다. 어느 날, 아무리 가늘고 풍만한 손톱을 마주해도 의기소침한 내 모습을 본 나원장은 내게 먼저 들어가 보라고 했다.


 나는 근처 공원으로 가 꽃밭을 거닐었다. 한 여름의 꽃들은 온통 낯익은 빛을 띠고 있었다. 저걸 닮아가고 싶은 건가. 겹겹이 피어난 붉은 손톱 한 송이를 누가 꺾는다. 그리고 돌멩이로 사정없이 찧었다. 붉은 액체가 흐르고 꽃잎은 형체가 없이 사라진다. 나는 있는 힘껏 미간을 찌푸리고 가만히 그 손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희고 작은 그 손은 거대한 아세톤 비보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팜므파탈. 여성도 여성이 아니지도 않은 철없는 어린 아이에게서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아저씨, 마실래요? 딸기주스예요. 제가 만든 거예요.”

 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눈치챘는지, 아이는 다가와 작은 음료수 뚜껑을 건넨다. 나는 조심스레 받아들여 그것을 진짜로 마셔버렸다. 아이는 손뼉을 쳤다.

 “맛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더 만들어줄래?”


 나는 정말로 더 마시고 싶었다. 위선적인 손톱의 색을 한 꽃들을 모두 마셔 한 줄기 오줌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맛도 색깔도 전혀 딸기 같지 않은 딸기주스를 마시기 위해 아이에게 줄 꽃을 꺾었다. 붉은 꽃잎을 양손 가득 담아 아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거 다 만들려면 달도 뜨겠다!”

 “아니, 네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해줘.”

 그렇게 말했는데도 캄캄해질 때까지 아이는 붉은 액체 만들기에 몰입했다. 나는 옆에 앉아서 그 순수한 손이 꽃잎을 하나하나 짓이기는 것을 보았고, 가끔씩 딸기주스를 받아 마셨다. 달이 뜨고도 점점 밝아지는데도 꽃잎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 아이는 돌멩이에서 눈도 떼지 않았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 하지 않겠니?”

 “아니요”

 “이름이 뭐니?”

 “이화요. 여섯 살이에요.”

 이화의 말은 그 깨끗한 손처럼 군더더기가 없었다. 공원 끝과 이어진 시장에서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놀아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병뚜껑을 채우는 일에 다시 몰두했다. 여덟 번째 꽃을 삼키며 나는 이화의 손을 덥썩 잡았다.


 “이제 그만 마실래.”

 “아직 꽃잎이 이렇게 많이 남았는걸요.”

 “내일 마실래.”

 입은 텁텁했고 속이 뒤틀려왔다. 그러나 우리를 멈추게 한 건 이화의 손가락 끝에 살짝 띈 붉은 기 때문이었다. 이화는 손가락을 꿈틀대며 팔을 잡아 뺐다. 작은 손가락이 달빛에 흩날렸다. 나는 이화의 손을 붙잡았던 허공의 그 자리를 더듬었다.


 “매일 여기에서 노니?”

 “응.”

 집에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지만 캄캄한 수풀 속에 이화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이화의 옆에 쪼그려 앉아 함께 이화의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화는 가만히 있었지만 심심해하지 않았다. 나란히 모은 무릎에 두 손을 올려두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화는, 처음 보는 아저씨의 옆에서 그렇게 침착하고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이화의 손끝의 붉은 기가 아직 남아있는지 궁금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아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손톱에 엄지손가락을 올리고 결을 따라 쓰다듬었다. 빤질빤질한 거기에는 수줍음도 없었다. 나는 불현듯 이화의 손톱을 핥고 싶었다. 은은히 베였을 꽃잎의 향기가 없어질 때까지 이화의 날 것을 내 혀로 감고만 싶었다.


 달이 유난히 많이 떠 있는 밤이었다. 달빛은 이화의 머리 위에서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가로수마다 걸려있는 가로등도 달이었고, 가끔씩 지나가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도 달빛이었다. 누군가 움직이는 것 같은 달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그 달빛들이 두려웠다.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딱, 딱, 하는 소리가 아름다운 고요를 깨뜨렸다. 이 완벽한 순간을 나는 왜 망치고 있는 건지는 몰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얼마 후에 멀리서 꽃무늬 옷을 입고 걸어오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화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화는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가 버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화를 품에 안은 여인은 내 쪽을 바라보았으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둘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녀들이 사라진 곳을 더듬었다. 아무런 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게의 불은 꺼져 있었다. 그러나 불투명한 유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흐릿하게 비친 내 모습은 너무 늦게 눈에 띄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유리 속에서 나는 매니큐어 진열대 위에 서 있다. 팔을 흔들고 제자리에서 높이 뛰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난장판이 되었다. 내 머릿속이.


 멀리서 달이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유리 속 내 얼굴을 비추었다. 눈이 부셔서가 아니라 기분이 나빠 인상을 쓰고 뒤를 돌아보았다. 근처 아파트 경비원이 입을 떡 벌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이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고 옆으로 돌아 아무렇지 않게 걸었다. 달은 얼마간 제 자리에 있다가 천천히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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