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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추어리 Aug 16. 2024

<잠입>-4


5월 20일

상춘은 새로운 모바일 게임을 다운받았다. 거기에는 해당 게임으로도 모자라 음성채팅을 하루 종일 켜두고 친목을 하는 모임이 많이 있었다. 예쁜 캐릭터를 기반으로 잡담을 채팅이나 음성으로 주고 받았다. 일대일 관계가 아니라서 그런지 이런 곳에서도 정치질이라는게 존재했다. 상춘은 금방 그 분위기에 적응했다.

     

 잠입 둘째 날 밤에는 뜻밖의 친구를 얻었다. 낮에는 층마다 위치한 작은 슈퍼에서 빵이나 과자를 사서 요기를 하곤 했는데, 가끔 밤마다 끓여 먹던 라면 따위의 야식이 생각나는 날에는 고역이 따로 없었다. 슈퍼는 대부분 음료 냉장고까지 가게 안에 밀어 넣고 잠금을 철저히 했기 때문에 털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그때 1층에 있는 카페가 불현듯 떠올랐다. 아침마다 점심마다 삼삼오오 모여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줄지어 사가는 싸구려 카페. 문을 닫았어도 따끈하게 데운 쿠키의 잔향이라도 맡고 싶어 문 앞을 서성이는데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캄캄해서 숨어다닐 필요가 없다고 방심한 사이 나의 존재를 들켜버렸다. 손부채로 바람을 끌어모아 킁킁대던 그 자세로 그녀와 첫 대면을 했다. 그녀는 카페 안으로 나를 초대했다. 커튼으로 가려진 창고 안에는 커피머신이나 도구 따위가 잘 정돈돼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문을 열면 작은 방이 마련돼 있었다. 그곳의 분위기는 마치 지하에 있는 다락방같았다. 아주 두세평 남짓한, 세모난 방을 제 취향대로 한껏 꾸며두었는데 그것이 낭만이 있으면서도 숨길 수 없는 지하의 쿰쿰한 냄새는 감출 수 없었다. 예쁜 얼굴에 늘 땀냄새 가득한 아저씨들의 사랑을 받는 카페 여사장의 은밀한 삼각 휴식처라. 어쩌면 그런 점에서 나는 조금의 구역질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음침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는 방에 앉아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먹으면서 나는 눈물이랑 콧물을 흘렸다. 마라맛이 나는 매콤한 라면이 너무 맛있기도 했고 뽁뽁이만으로 느낄 수 없었던 어떤 포근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굉장한 실수를 해버렸다. 아니 금방 그녀가 죽어버렸으므로, 그래서 나의 잠입이 들키지 않았으므로 대외적인 실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하고있는 모든 일을 불어야만 했다. 나는 굉장히 외로웠노라고, 그래서 잃어버린 아빠를 찾아서 이곳으로 왔다고. 그리고 여기서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거기서 오는 편안함을 느꼈노라고.     


 꽤나 나이가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용산구에 있는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다(물론 옥상에서 보이는 스카이라인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결혼은 하지 않고 직장서 모은 돈으로 평생 꿈이던 카페를 차려서 수입도 쏠쏠하다고 했다. 부유? 부유하지만 안정된 보금자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마음씨도 넉넉했다. 실은 가출청소년인게 찜찜하긴 하지만 어차피 아빠라고 해도 본인 단골손님일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상가 안에서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귀엽고 머리가 긴 여자애를 만나서 너무 좋다고 했다. 이곳 상가 10군데 중 한두군데는 여자 경리를 두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보통 이 카페에는 오지 않았고, 일만 하고 후다닥 이곳을 떠나기 일쑤였다는 거다.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하거나, 하기 싫거나, 뭐 그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가에서 일어나는 순수한 노동과 이 산업의 역사는 무시할 게 못된다고 했다. 그날 밤 나는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 상가는 숭고함이 담긴 곳이었다. 무식하고 더러워 보이지만 순수한 육체적 활동을 통해 진정한 일의 의미를 구현하는 곳이라고. 그러니 너희 아빠는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단 하나, 일과 사랑에 대해서 나는 물었다. 이 일의 가치에 대해서는 분명 알겠으나 그것이 사랑을 뛰어넘어야만 하는 법은 어디에 있나요? 철학에 대해서 논하자면 순수한 노동의 실현보다도 먼저 연구된 개념이 사랑 아닌가요. 노동과 벌어먹기의 숭고함이 사랑을 나누고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건 이런 건물 속에나 깃든 질서가 아닌가요. 나는 3층 휴게실의 벽 사진을 보여주었다. loss 스티커만 남은 벽지를. 그녀는 내가 반색하고 던진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대답은 하지 못했으나, ‘bittersweet’한 어른 특유의 웃음만을 짓다가 내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는 한 10분 정도를 내리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선언했다. 언제까지라도 작은 뱅크시같은 너를 전폭 지지하겠노라고. 우리는 작은 방에서 서로 팔베개를 하고 쪽잠을 잤다. 아슬한 온기가 있는 삼각형 안에서 그녀는 나와 같이 잉태된 쌍둥이같기도, 아니면 그녀의 소중한 곳에 나를 품어주는 엄마 같기도 했다. 태어난 이후로 만난 최초의 자궁. 아니면 집. 달큰한 쿠키 냄새가 난다. ‘home sweet home’. 슬프게도 나는 이 말이 블랙 유머로부터 나온 말임을 안다.     


 그녀는 다음날 낮에는 가방에 쿠키와 냉동 마들렌 같은 것을 몇 개 챙겨 넣어주었다.     


“즐거운 여행(잠입)이 되길 바래”     


 그녀도 나도 그래봐야 우리가 그렇게 멀리 떨어질 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건물을 떠나지도 않을 건데, 그리고 반나절 정도 지나면 다시 만날 텐데, 나의 잠입을 여행이라고 다정히 불러주기까지 했다. 그녀만 있으면 이곳에 있는 건 나에게 절대 부유하는 게 아니었다. 아빠쯤은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다정하고, 언제나 내 곁에 있다. 혹시나 그녀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저기 삼각진 구석 어디에서 예쁜 팔을 베개 삼아 베고 나를 기다리며 단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충만해졌다. 나를 기다리는 예쁜 사람. 그런 사람은 존재만으로 인간의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아빠에게 나라는 존재도 그렇지 않았을까.          


 인공공원에서 멍하니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분명 땀이나 줄줄 흘리고 패트롤 찍은 질럿처럼 캐리어나 떠그덕거리며 옮기는 인생 패배자들로만 생각했던 그들이 숭고한 노동자로 보였다. 어젯밤에는 무의미한 변호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아량 넓은 말이 최면처럼 내 머리에 박혔다. 아니면 사랑하지 않아도 될 것 마저 사랑하는 그녀의 말이라면 무작정 믿어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눈앞의 이들은 출근부터 퇴근할 때까지 일에 몰두했다. 애초에 이곳에 머무는 시간도 물건을 떼러 가거나 박스를 한참을 옮기고 나서 지나가는 길에 구슬같은 땀을 식히러 잠시 들른 것 뿐이었다. 얼마나 바랐으면 검은색 티셔츠가 갈색 빛을 띠고 있었고, 숱 없는 머리칼은 땀에 젖어 웨이브를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그게 영화 300에 나오는 용감한 용사처럼 보였다. 구릿빛 외관에 온 근력을 사용하고 땀을 흘려대는 성인 남자라. 사랑을 우선하지 않을 뿐이지 그들은 주어진 일을 전력을 다해 해내는 숭고한 노동자였다. 그의 힘을 쓰고 그가 분출하는 수분일 뿐이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땀이다. 이제 나는 그들을 숭고한 노동자라고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것에 아빠를 포함할 지는...     


 그날 밤에는 장미꽃을 한참 들여다봤다. 딜러들이 물건을 떼러 가는 내리막길 길목에는 초록색 펜스가 있었다. ‘나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라고 하는 노래를 그 부분만 연신 흥얼거리면서. 선선한 여름 저녁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향기가 시원하게 불어와 땀냄새를 씻어주는 것만 같았다. 장미는 3M정도 되는 펜스 가득히 피어 있었다. 여기저기서 개최하는 장미축제에 갈 필요도 없이 만개하고 빽빽하게 핀 장미가 꽃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미는 넝쿨과다. 그리고 적게는 세 송이, 많게는 열 송이가 스티커사진을 찍는 사람들처럼 얼굴을 아주 가까이 붙이고 피어났다. 그리고 화려하게 붉다. 피는 무엇인가. 식물의 DNA도 사람의 피처럼 진해서 어떤 것들은 떨어지지 못하고 그렇게 붙어서 피는 건가 싶었다. 떼려도 뗄 수 없는, 진한게 피라면 아빠랑 나는 왜 이렇게 헤어져 있어야만 하는 건가. 마음껏 사랑하고 붙어 있으라고 신은 피를 붉고 진득하게 만들어서 인간의 몸에 주입한 건 아닐까. 그게 자연의 섭리라면 왜 모든 사람들은 그 섭리를 지키지 않고 떨어져만 있나. 제 손을 다쳐가며 장미 가시를 다듬어 돈으로 파는 플로리스트적인 낭만에 취해 사는 것도 아니면서. 그마저도 꽃 한 송이 사다가 아름다움을 즐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아니 애초에 꽃을 산다는 건 외롭다는 뜻이고 그런 사람들은 외로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카페 사장님과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외로운 사람이 꽃을 꺾는다고. 마음껏 모여 필 수 있는 장미가 질투나서도 아름다움을 영원히 내 곁에 두고자 하는 욕심이 있어서도 아니라고. 그래도 나는 혹시나 자연이 오해를 할까봐서 모여 있는 꽃들은 그대로 두고 혼자서 처연히 피어난 장미만 꺾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초록 이파리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솜털같은 가시가 많았다. 외로움을 꺾는 일은 이렇게 아프고 유난스럽다. 하늘엔 흰 구름이 떠가고 파란 하늘이 더욱 대비됐다.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외로움을 견디는 일은 일이 처음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연거푸 찾아오는 미방문의 좌절이 아니라, 찾아가면 반겨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단 한번도 거절당한 적 없는 싱싱한 관계. 거기에 걸어보는 희망. 희망이 있어서 철봉에 데인 물집이 가시에 찔려도 아프지 않았다. 아니, 물집과 함께 마음이 자꾸만 팽창해갔다.     

 사람들이 떠나고 카페 앞을 서성였다. 그날처럼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먼저 맞이해주면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양손에 장미를 한가득 꺾어왔으므로 문을 열 손이 모자랐기 때문에 그걸 핑계 삼아 헛기침을 하며 한참을 서성여도... 그런 일은 없었다. 반투명한 문 사이를 들여다 봤다. 깊은 맘속 내 맘을 비춰준 작은 불빛이 보였다.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하는 숫총각처럼 문을 열고 짜잔 하면서 등장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소녀’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려 개구진 표정을 하고 문을 밀었다. 그리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사람처럼 커튼을 정수리로 통과하고 고개를 들었다. 정수리를 쓸어내리는 커튼이 머리를 쓰다듬듯 부드러웠고 고개를 들자 온몸이 찌르르했다.     


 그녀는 덩굴 같은 초록색 테이프에 목을 매달고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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