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다.

휴!

by 세만월

교대에서 충무로에서 서울역으로 가야지.

오전 9시부터니깐 10시 끝나서

11시쯤 기차 타면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차표를 끊고

학교 발제 준비를 마저 하고 잤다.


12시가 지나서야 나왔다.

교대역에서 충무로 방향이 아닌 반대쪽 전철을 탔다.

학여울역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가서

바로 들어오는 전철을 잡아탔다.


겨우 8분인가를 남겨놓고

2시 1분 기차를 탔다.


오전 사무실에 들렀다가

집에 돌아와

창세기반 과제를 하고

논문 비대면 미팅을 하고

아이랑 요기를 하고 미술학원 가야지 했는데


창세기반 숙제는 못 하고

몸만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이따 뵐게요


선생님 지금 끝나서 1시 줌 미팅은 안 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평소처럼 애 재우고 밤 10시 반에 해요.

네. 감사합니다.


창세기반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논문 미팅도 양해를 구했다.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변호사님께 인사드리며


변호사님,

우리 애가 커서 변호사 된다고 하면

뜯어말릴 것 같아요.

맞아요. 힘들어요.


근데 지난번 머리보다 지금 머리 스타일이 좋으시네요.

그래요? 훨씬 젊어 보여요?

네. 훨씬요. 너무 애쓰시네요. 감사합니다.


서류란 서류는 여기저기 숨 막히게 쌓여 있고

나랑 자료 입증하는 사이사이에도

수십 통의 전화가 울리고

문자메시지가 오고

톡이 오고.


누가 누굴 걱정하냐 싶은데도.

나는 그 사이 급하게 은행 내역이 필요해

사무실 맞은편 은행에 들러 떼오고

울 아버지는 요양보호사님하고 은행 가서 떼온 거

사진 찍어 보내고

울 어머니는 입증 안 되는 부분

계속 통화하며 고민하고


정신을 쏙 빼놓고

기차다.

휴!


회사 다닐 때는 출퇴근 시간 맞춰

기차 타려 종종걸음으로 뛰 다녀서

지금은 뛸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오늘도 앞에 두 대를 놓쳐 또 뛰었다.

그래도 지금 기차다.

휴!


지인들이 어떻게

매번 그렇게 출퇴근을 해?

매번 그렇게 학교에 다녀?


그런데 지난 교육분석 때였다.


○○이가 그래서 회사 다니고 학교 다니고 한 걸 거야.

맞아요. 저는 기차 안에서 힐링받아요.

사람들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물리적으로 출퇴근만 5시간이니까요.

근데 그만큼 힐링이 되거든요.

그래, ○○이에게 아주 중요한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자기만의 공간이고

좋아하는 자연도 보고

어디론가로 흘러가는.

네, 좋았어요. 지금도 좋고요.


지금 기차다.

휴!


숨 한번 쉬고

남은 시간 힐링받고

오후 일정 아이와 잘 보내고

성경 공부로 잘 마무리하련다.


오늘 아침 8시에 사무실 앞 스벅에 가 있었다.

아이가 등교는 잘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좀요.

그래. ○○야, 엄마가 너 목소리 듣고 싶대.

받아봐.


누구세요~?

또 장난기 한가득 목소리로

느끼한 톤으로 묻는다.


누구세요~?

엄마.

누구세요~?

나, 돼지 엄마. 이따 학원에 있어. 엄마가 그리로 갈게.

돈가스 먹고 미술 가자.

누구세요~?


크게 웃고는 먼저 끊으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계속 장난이다.


누구세요~?


그럼, 엄마 끊는다.

누구세요~?

엄마, 끊어. 안녕, 이따 봐.


어제 심리검사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아직 초2라고 했지?

엄마 곁에 있으려고 하면 된 거야.

껌딱지면 돼. 걱정 마.

네. 껌딱지예요.

그리고 지난번 여행은 잘 다녀왔어.

앞으로도 방학 때 일주일 정도는 국내든 어디든

아이랑 같이 단둘이 추억 많이 쌓고.

이제 2,3년도 안 남았어. 조금만 더 크면 같이도 못 다녀.

네.

사춘기 때 엄마랑 떠올릴 기억이 있는 게 좋아요, 아이한테.

네. 말씀해 주신 대로 꼭 아이랑 시간 보낼게요.


기차에 몸을 맡기고

한껏 다시 찾은 여유를 갖는다.

기차다.

휴!


감사합니다.

무조건 감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