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다 가자꾸나.
오늘 새벽 KTX를 타고
서울 주소지 투표소에 가 투표했다.
아침 기상부터 투표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
선거일은 지키려고 하는 편이다.
매번 투표소에 들어설 때마다
엄숙해진다.
투표를 마치고
서울역 한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고 있다.
투표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내 앞으로 3미터 정도 앞에
덩치가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보고는
상가 건물로 그늘이 드리워져
햇볕도 없는 인도 도보에서
재빨리 양산을 켜고는 내 얼굴부터 가렸다.
양산 아래로 보이는 땅 밑 시선에서
그 사람이 나에게 걸어올까 싶어 긴장하고 있었다.
2미터 정도를 걸었는데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제야 양산을 내리고 그 뒷모습을 다시 보았다.
맞은편 김밥 집으로 들어가는
체격이 있는 한 여성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거니?
나에게 화가 났다.
엄숙한 투표소에서
선거권을 행사하고 내려오는
당당한 한 사람의 발걸음은
온데간데없이
두려움에 쪼그라든 모습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맘을 놓는 서울역사 안이다.
서류가 정리되어도
어디선가 비슷한 풍채만 보아도 놀라 자빠지는
나의 나약함은...
그가 투표를 압도했다.
3시간이 걸려 행사한 나의 선거권은
금세 잊혔다.
나의 선거권은 신성했고
나의 결혼식도 신성했다.
하지만 나의 결혼은 실패했다.
실패 요인이 나에게 있었구나 싶었다.
금세 쪼그라드는 나의 이 두려움...
나의 나약함의 근원지
나의 이 두려움은
나의 문제이구나.
양산으로 피하지 않고
쪼그라든 나를 마주해야 할 때이구나 생각했다.
기차는 출발했다.
기차 안 내 좌석에 앉아 마음이 놓여서일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기차에서 참 많이도 운다.
쭈구리인 나를 세울 사람은 나이고
내게 당당히 선거권을 행사해
투표해 주어야 하는 이도 나인데.
관계가 정리된 후에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내 한켠에 쪼그라 있는
이 두려움을
일으켜 세우는 일인 것 같다.
끝이자 시작이라고 했던가.
앞으로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내 아이를 챙기기 앞서
나를 챙겨야 하는 것이겠구나.
지금 달리는 기차 안이
그저 좋구나!
많은 감정들이 오가는 지금이다.
그래도 좋구나!
기차 안, 내가 좋아하는!
참, 좋구나!
그러나 이내 곧
슬프고 서럽다.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쩌지 못하구나.
그래, 넌 좋은 게 아니라 슬프구나.
잠시 기차 안에서 쉬다 가자꾸나.
그러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