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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Jul 12. 2022

연결된 고난 속 공평한 인생-기대하지 않았던 위로를..

감정 알아차림<2022.O.OO>

  3월 25일 우측 난소 제거 수술은 잘되었고, 좌측 난소를 제거해야 한다거나 더 나아가 자궁 적출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무시무시한 예상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다음 주 나오는 조직검사 결과만 무사하면 끝이다. 3월 24일 하루 전날 입원을 했고,  수업을 병실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들었다. 수업 시간에 오고 가는 대화들이 차분히 나에게 힐링으로 다가올 것 같아 마음 편히 수업에 임했다.


  “상담을 한 단어로 하면 무엇일 것 같으세요?” 하고 교수님이 물으셨다. '진심', '마음을 나누다', '소통하다' 등등 많은 답변이 나왔다.

  “저(교수님)는 ‘사랑’ 같아요. ‘인간에 대한 사랑’.”

그러고 난 후, 강신주의 <OOO>을 읽어 주셨다.


  “배고플 때 한 공기만의 행위가 사랑이다. 서너 공기로 압박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타인의 고통이 사무치는 것이 사랑이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울적한 상황에서, ‘사랑’, ‘사랑’, ‘사랑’,……이 끝나지 않을 ‘사랑’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다 보니,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문장을 학우들과 교수님 앞에 꺼내놓았다.


  본격적인 수업으로 넘어가기 앞서 현재 자기의 마음 상태, 한 주간 기억에 남는 일, 교재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부분, 교재에서 궁금한 점 등등 다양하게 잠시나마 나눌 수 있는 개인 자유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갑자기 5학 차 한 선생님이 “OOO(필자) 선생님께 질문 있습니다” 하시면서, “무슨 수술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셨다. 실례가 되는 질문일까 봐 조심스럽게 물으셨지만, 전혀 나에게 실례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해해 주시니 감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어떤 수술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드렸다. 응원을 해 주셨다. 수업을 마치면서 교수님 이하 학우들로부터 단체 응원을 받았다. 정말 기대는 1도 하지 않았던 장면이었다.


  힘든 일을 겪을 때 보면, 항상 위로는 엉뚱한(?) 곳에서 받았다. 수학 공식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1을 주어서 이제 1을 받을 차례야' 하고 있어도 내 예상 목록 상의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적은 극히 드물다. 여기서 위로라 함은, 나 자신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에게 갚을 빚이 없는 사람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됨으로써 진심이 배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까? 


  최근에 '인생이 무시무시하리만큼 공평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늘에 신이 계시다면, 그분이 인간들 각자에게 내려주시는 인생 자체의 모습이 다 달라서 나는 내 인생을 마주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네 인생은 무서울 정도로 공평하구나 하고 마음가짐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가 견디고 나가는 인생의 무게가 전부 다르고, 내려준 인생의 형태가 전부 달라서 그것을 마주하는 나는 ‘감사’도 겸허히 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감사를 내뱉는 순간, 그 감사는 겸허함을 잃는 것 같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겪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체 응원을 받고 나서, 수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동기들과 선배들 중 몇몇은 개인 톡으로 케이크 쿠폰을 보내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1학기 때부터 zoom으로만 만났던 동기들과 선배들로부터 정말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 응원을 받을 줄을 누가 알았을까.


  수업을 몰래몰래 이어나가야 했던 순간에도 그들과 같이 수업에 임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내용을 같은 마음으로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위로와 위안과 안식처였다. 비록 내가 그들에게 이런 위안을 받았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위안은 그들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OOO(화자) 선생님이 위로를 받았겠구나!’ 하고 말이다.


  1학 차 때부터 크나큰 위로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수술 응원만 당신들이 저에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보다 더 큰 위로와 응원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알까요?


  하루하루를 살지만, 모든 것을 내가 다 알 수 없다. 나를 스쳐 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그 속에서 나와도 관련 있는 감정을 느꼈을 이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나의 힘듦이 결코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타인의 고통이 결코 그들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듯이 말이다. 각자의 고난이 연결된 속에 있음으로써 인생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든다. 그리고 그 공평한 인생에서 각자는 겸허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저 또 한 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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