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gge Copenhagen # 3
맑고 맑은 코펜하겐의 날씨는 행여나 고독한 여행자 힘빠질라 가여삐 여긴 하나님 선물 같았다. 날마다 창문을 열어 볼 때면 어찌나 감사가 절로 나오던지. 감사함 충만한 여행자가 기뻐하지 않을 순간이란 없었다. 특히나 상쾌함 가득한 아침엔 더더욱!
각각의 건물이 가진 개성과 느낌에 더 즐거워지는 거리 산책. 시크한 도시 위에 세워진 따스한 건축물의 어우러짐이 코펜하겐의 매력 포인트인 것만 같다. 사람을 닮은 건축물이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스며들어 있는 철학내지는 의도가 사람을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스토리가 깃들어 있을지 궁금해지는 거리와 건축. 참 묘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머무는 동안 대중교통을 종류 불문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코펜하겐 카드를 구입했다. 센트럴 역 부근에 있는 information center에 가서 사용 가능 범위에 대한 안내를 간략히 받고 우선 3일 이용 가능하도록 하였는데, 첫 사용 시간부터 시간이 count 된다. 티볼리 가든이나 몇몇 미술관/박물관 프리패스가 포함돼 있고 제일 좋은 건 다음 날 향할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가는 기차도 코펜하겐 카드로 탈 수 있다는 것! 신나는 마음으로 버스에 냉큼 올라탔다.
우연히 만난 건물 벽화가 인상적이다. 혹 이 동네 랜드마크는 아닐런지. 건물에 호흡이 입혀진 듯한 느낌이다. 푸르른 나무 두 그루와 벽화의 조화는 마치 의도된 전시회같은 느낌마저 안겨준다. 그림같은 이 도시의 매력 발산은 이 곳에서도...
힙하고 핫한 동네 Jægersborggade(예어스보겔)에 다다랐다. 덴마크의 전형적인 아침 식사인 GRØD(그뢰드)를 먹어보기 위함이었는데, 이른 오전임에도 동네 사람들, 출근길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같은 여행자들로 안팎이 채워져 있었다. 그뢰드는 고유명사격으로 오트밀 죽을 칭하는 것 같았다. 오트밀에 물이나 우유를 부어 걸쭉하게 죽처럼 끓인 음식이라고 한다. 저들에게는 특별할 게 없을 듯한 그뢰드를 이 곳에선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했다. 트렌디함을 물씬 풍기면서도 모든 게 자연스럽게 예뻐 기분이 좋아졌던 곳. 결국 이 후에도 2번을 더 방문했다.
묵직한 원목 테이블과 빈티지한 스툴이 시크하게도 놓여져 있다. 홈쿠킹 용으로 오트밀도 판매하고 있었다. 패키지가 참으로 사랑스러워 구매 충동이 마구 일어났었던... 한 무리가 경쾌한 수다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간 흔적마저 뭔가 사랑스럽다.
흰 벽과 뭉툭하고 작은 테이블이 자아내는 느낌이 꽤 감각적이다. 나홀로 여행자인 나는 벽에 기대어 자리를 잡아본다. 액자 속 사진을 통해 원하는 그뢰드를 미리 점찍어 보는 것도 재미나겠다 싶은...
따스한 오트밀죽 위에 원하는 토핑을 선택해서 얹어 먹을 수 있다. 생과일, 건과일, 견과류 등의 토핑이 있는 듯 했고, 주문 전 영어로 된 작은 메뉴판을 별도로 볼 수 있었다.
내가 주문한 수퍼 건강식 아침식사 메뉴는 사과 & 당근 주스와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맛있었던 과일과 견과류 토핑을 올린 기본 오트밀 죽. 기대보다 훨씬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가 나가 버린 그릇마저도 설정인 듯 사랑스럽다, 후훗.
아침의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건강한 메뉴로 아침을 챙기고 함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여행자인 나는 고독과 외로움을 부러 선택했던 것 이었기에 여행 내내 싫지 않았지만 순간 저 무리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단 생각도 하게 됐다. 저들이 더(?) 가진 듯 보이는 '여유'에 한없이 질투가 났던 걸까.
맛있는, 예쁜, 그리고 즐거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한적하고 고요하게 산책을 했다. 예어스보겔은 사색하며 산책하기에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동네였다. 조금만 걸어가면 안데르센의 묘비가 있기로 유명한 아이스텐스 묘지 공원(Assistens Kerkegård)이 있어 숲을 즐기는 듯한 녹음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도 있고, 어느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도 한적한 맛이 일품이다. 감각적이고 맛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군데 군데 모여 있고 모든 게 이 곳에선 느리게 가는 것만 같아 나무늘보가 된 기분마저 든다. 느림의 미학을 이렇게 트렌디하게 경험해볼 수 있다니...
서로 다른 색의 건물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을 나무를 액자 삼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건 분명 나만은 아닐 듯. 서로 앞다투어 높이 솟으려는 듯 보이는 서울의 아파트와 고층 빌딩 사이에서 지나다니다가 이렇게 동화 같은 곳에 나 홀로 서 있자니 정말 동화를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이렇게 바라만봐도 행복하지...했던 저 순간.
코펜하겐의 건축물과 꽃과 푸르름은 너무나도 친해보인다. 서로가 서로의 절친이라 말하는 것만 같은 느낌. '그렇구나'라고 미소 띤 대답을 해주고픈 느낌 말이다. 정처없이 거닐며 햇살과 여유로움을 내일이 없을 듯 누리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타 도심 속 잘 정비된 마켓 Torvehallerne(토르브할렌)으로 향했다. 주 목적은 The Coffee Collective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함이었지만 마켓 구경은 실로 재미난 일이기에 아니 할 수 없지. 여행 중 정말 신나는 일 중 하나가 로컬 시장이나 벼룩 시장을 만났을 때가 아니겠는가! 토르브할렌은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적잖은 버스가 지나는 노선이다. 지하철을 이용할 시에는 Nørreport 역에서 내리면 토르브할렌을 바로 찾을 수 있다.
야외엔 테이블이 구비돼 있다. 시장 안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디저트를 마음껏 사가지고 나와 즐길 수 있는 곳. 점심시간엔 인근 직장인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이 곳에서 식사를 즐긴다고 한다. 도시의 세심한 배려같이 느껴졌던 곳. 시장과 사람에게서 만큼 활력과 생동감을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듯!
토르블할렌은 두 개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모두 구경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되는 Alice in Wonderland 같은 곳이다. 마음 단단히 먹고 가지 않으면 어느새 두 손은 꽤 무거워진다. :)
드디어 나에게 허락될 커피 타임!! 100% 공정 무역으로 원두를 구입하고, 원두, 로스팅 및 커피 추출에 있어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단한 브랜드, The Coffee Collective.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The Coffee Collective와의 첫 만남은 espresso로 하고 싶었다. 본연의 맛부터 느껴보고 싶단 생각에...꼬숩고 부드러워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던 생생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espresso를 마시고 나니, 가을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노라니, Eddie Higgins Trio의 연주로 'Les feuilles mortes(고엽)'이 듣고 싶어졌다. 음악과 함께하니 순간 더 짜릿하게 행복했다.
아.... 따스한 가을 햇살에 몸과 마음이 녹아 내리고, 고소하고 부드럽기 그지 없던 커피가 있고, 내 귀에 흐르는 음악이 있고, 멍하니 바라보며 사람들의 생기와 활력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에 있는데, what else can I do? 무계획 속의 계획이 여행 컨셉이었지만 이 날만큼은 literally '자유'를 실천해 본 날이 아니었나 싶다.
호텔 알렉산드라 로비에 있는 내가 코펜하겐에서 첫 끼를 해결한 베트남 식당 lêlê도 보인다. 반가운 ^^ 토르브할렌에는 GRØD, Mikkeller & Friends 그리고 덴마크 전통 음식과 유명 베이커리까지 모든 로컬 브랜드가 한 데 모여있어 하루 종일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한참을 토르브할렌에서 서성거렸다. 커피를 마시고, 원두를 사고, 생각을 끄적이고, 모든 것을 탐색하듯 바라봤다. 그래도 언제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더라. 시장에 있노라니 마음을 열어 줄듯 말듯 도도한 이 낯선 도시 코펜하겐이 내게 손을 내밀어 준 것만 같았다. 악수를 한 번 하고나니 부쩍 친해진 느낌처럼... 이제 우린 '아는 사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간다는 게 더할나위없이 행복했다. 가만히 있어도 특별한 느낌이 드는, 무작정 거닐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게 여행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 나는 코펜하겐을 여행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