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웬디스 레드 Aug 04. 2020

배란기, 유전자의 노예

유전자 계승을 위한 식욕과 성욕의 오케스트라

 아랫신체 건강한 여성이라면 무릇 겪는 자연의 섭리가 있다. 그것은 유전자 계승을 위한 한 달간의 치열한 신체변화다. 이는 바로 월경주기라는 말로 지칭되며, 이때 많은 여성들이 매달 마치 한반도의 사계절과도 같은, 단계별로 급변하는 신체변화를 체감한다. 그 중에서 주로 실제 고통의 배출을 하는 생리기간이 최악으로 간주되나, 그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사실 일상을 살면서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가 또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배란기이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진화된 동물이라고는 하나, 사실 이 기간만큼 유전자에 압도되는 기간이 있을까. 이 일주일 남짓 시간 동안 여자들의 온갖 본능적인 욕망들은 마치 마그마처럼 펄펄 끓어오르게 된다.


 물론 이 욕망들은 아주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섞여서 나타나나, 그 중 크고 왕성한 것은 식욕과 성욕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먼저 부글거리는 식욕은, 미뢰세포를 마치 배란기 이전의 자신과 영원히 작별하게 만들 듯이, 그 이전의 미뢰세포가 원하지 않던 수준으로 자극의 역치값을 폭발시킨다. 더 맵고, 더 짜고, 더 달게! 본토 중국인도 먹지 않는다는 마라탕 국물을 그릇 바닥까지 퍼먹고, 초코 스프레드 범벅의 버터빵에 머리를 쳐박게 만드는 것이다. 그 순간 마치 요리왕 비룡에 나온 심사관들처럼, 더 강한 맛의 소용돌이에서 헤엄치는 생경한 자신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게다가 든든한 잉여 영양분들이 차곡차곡 복부에 자리잡는 것은 덤이다.


 또한, 끓어오르는 성욕은 더더욱 가관이다. 성욕은 마치 배란기를 일생일대의 결전의 기간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 시기만 되면 이성으로 느껴졌던 남자들을 갑자기 지나치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즉, 그들에게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걸고, 손끝이라도 한번 더 스치기 위해, 수상한 사람처럼 그들 주변을 맴돌게 하는 것이다. 추가로 매 저녁 새로운 이성과 만나는 술자리가 없을지 어슬렁거리게 되는 것도 숙명이다. 더욱이 매일밤 꿈속에 이성들이 갑자기 등장해 복권번호를 불러주지는 못할 망정, 데이트하거나 진한 스킨십을 나누는 시기가 바로 배란기이다. 이 때 유전자는 마치 번식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돌진하는 것만 같다.



태초의 DNA가 널 원하는데 

이건 필연이야 I love us

- BTS DNA 가사 중에서-



 그래서 배란기에는 때때로 자기자신을 알 수 없다. 충실하게 평생 사회적으로 자아를 계발하고 발전시켜왔으나, 이 시기에는 하이에나에 가까운 본능적인 자신이 사회적 자신의 제어를 압도해버린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과 정신에 좋지 않은 남자들임을 알아도 마치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렇게나 무력하게 유전자의 본능에 져버리다니. 그래서 매달 이 시기 꿈틀거리는 욕구가 감지될 때마다 욕망의 전차로 변하는 자기자신이 두렵다. 이번에는 또 어떤 난리부르스를 치게 될지, 혹시나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의 흑역사를 갱신하게 되지는 않을지.


 다만 안타깝게도 매달 매번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신체기관과는 달리, 현재 본인의 사회적인 위치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은 2030대 미혼 직장인 여성.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신체적으로 최적의 임신과 출산기간을 가뿐히 넘기며 오히려 유전자 절멸의 길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 이미 애 낳지 않는 이기적인 세대로 손가락질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렇게 매번 유전자의 절실한 열망도 실망시켜야 하다니. 자신의 본능적 욕망을 실현 못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이렇게 여러 존재를 낙담시켜야 되는 자신이 이 기간에는 꽤 슬프다. 한 평생 특출나지는 못했지만 해를 끼치고 살지는 않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전 06화 남자와 카풀하면 이 자리에 앉으세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