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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May 16. 2019

독일에는 뭔가 특별한 놀이터가 있다?!

[Place we like] 미 매니저의 독일 놀이터 탐방기 

[Place we like]에서는 Play Fund가 흥미롭게 (가) 본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미팅, 출장으로 가보았거나 호기심에 이끌려 주말에 슬쩍 찾아갔거나,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은 다양한 공간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독일의 놀이터들] 한 줄 미리 보기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놀이터.


드디어 독일의 놀이터를 가보다

(뜬금) 독일 놀이터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놀이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관련 레퍼런스들을 찾을 때, 항상 좋은 사례로 나왔던 놀이터는 독일의 놀이터였습니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된 조합놀이대 대신 나무와 흙, 숲 등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는 시설들, 그 시설들은 어떤 정형화된 놀이를 제시하기보다는 아이들이 들를 때마다 새로운 놀이를 가능하게 하는 시설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모험심을 자극하면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놀이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드디어 제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동생 내외가 살고 있는 독일로 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동생 내외가 살고 있는 곳은 독일의 서쪽 끝, 프랑스와 인접해있는 인구 18만 명의 작은 도시, 자르브뤼켄 (Saarbrücken)이라는 곳입니다. 유명한 관광도시가 아니어서 보편적인 독일 사람들이 언제나 이용하는 일상의 놀이터를 가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다행히 동행해준 딸이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비행기 타고 큰 놀이터를 가보는 것이냐며, 놀이터에 대한 기대를 더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놀이터를 둘러보았습니다. 


강 건너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 나무숲 사이로 놀이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진: 미 매니저) 



놀이터 주변 환경이 특별합니다.

 

놀이터를 가보자고 나선 길은 제법 상쾌하고 청량했습니다. 첫 번째 놀이터는 시내에서 자르 강을 건너는 다리 밑에 자리한 놀이터였습니다. 놀이터가 공원 안에 있어도 별도의 공간처럼 이질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곳의 놀이터는 제법 주위의 경관과 잘 어울렸습니다. 경관으로도 잘 어울렸지만, 놀이터가 놀이터 주변 산책로, 공원까지 연결되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만 뛰어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잔디밭이 놀이터 밖으로도 꽤 길게 연결되어 있어서 뛰어나가도 전혀 위험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주위를 둘러보니 이 놀이터로 접근하는 길에 차도가 없었습니다. 다리를 기준으로 양쪽에 시내가 위치해 있어서, 놀이터를 이용하려면 낮은 지대로 내려와야 하는데, 이때부터는 산책로를 따라 자전거길과 보행로만 있습니다. 한강공원도 자전거길과 보행로가 강을 따라 이어지고 곳곳에 놀이공원이 있지만 가다 보면 어느새 주차장이 나오고 차가 바로 내 옆으로 지나가 깜짝 놀라게 되는 구역도 있죠. 그런 의미에서 놀이터를 찾아가는 여정에 차를 한대도 (아, 강건너로는 보였습니다만) 보지 못했다는 건, 꽤나 신선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밖으로 뛰어나갈까 봐 울타리를 쳐야 하는지,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면 경계 식재를 어느 정도 빡빡하게 심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해야 했던 지난 놀이터 사업이 떠올랐습니다. 


뒤로 강을 건너는 다리가 보이는, 큰 나무들 사이의 놀이터와 놀이터 옆 너른~~~~ 공터.(사진: 미매니저)


두 번째 놀이터는 자르 강변을 따라 쭉 이어진 산책로, 산책로는 그 자체로 거대한 나무가 우거진 숲이었는데, 제법 바람이 많은 부는 날씨였는데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청량한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저 멀리 미끄럼틀이 보입니다. 미끄럼틀이 내려오고 있지만, 그 미끄럼틀을 지지하는 어떤 형태의 시설이 보이지 않아 처음엔 꽤 놀랐는데, 이내 어떤 놀이터인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놀이터를 찾아 떠나는 길 왼쪽 풍경과 오른쪽 풍경 (사진: 미매니저)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두 번째 놀이터 (사진: 미 매니저)


초록색이 눈에 띄게 많았던 놀이터들을 보며 또 한 번 놀랐던 것은 조경이 정말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사진이 온통 초록 초록할 정도로 큰 나무들과 잔디밭 숲을 이루고 있는데, 나뭇잎들이 헝클어져 떨어져 있지 않아서, 미끄러져 넘어질 위험이 적었습니다. 잔디밭 한가운데 놀이터가 있지만 놀이시설이 위치한 모래바닥 사이사이로 잔디가 삐죽삐죽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나무가 울창하지만 깨끗하게 가지치기되어 있어 시야를 가리지 않고요. 모래 놀이터가 있지만, 모래에서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자연경관과 꽤 잘 어울리는, 놀이터가 있지만 놀이터에서만 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넓은 공간, 탁 틔여 있어 누구든 놀이터를 멀리서도 지켜봐 줄 수 있는 분위기, 헝클어져서 헤쳐 나가야 하는 느낌이 아닌 푸룻 푸릇하고 깨끗한 놀이터, 독일의 놀이터는 놀이터 자체보다 놀이터 주변 환경이 꽤나 특별했습니다. 




놀이시설물은 특별할까요? 


자, 그럼 놀이터 안에 있었던 시설은 어땠는지 들어가 봅니다. 궁금하실 두 번째 놀이터 위주로 소개합니다. 

흥미진진한 놀이시설물, 곧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데.. (사진: 미 매니저) 


제가 가장 좋아했던 시설물입니다. 아이들 모습은 조심스러워서 많이 담진 못했지만, 이 사진을 찍고 난 뒤에 꽤나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이 곳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친구들도 금세 정상을 정복하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막 만 3세가 지난 저희 딸도 호기롭게 도전했습니다. 놀이터 원정대라 이름 붙일 정도로, 놀이터를 많이 데리고 다녔던 터라 이 정도면 우리 딸도 할 수 있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누가 이렇게 미끄럼틀 어려운데 매달아놨어.(사진: 미매니저)


어느 정도 올라간 다음, 어느 지점에서 딸은 부들부들 떨며 앉았습니다. 어른이 함께 올라가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저도 무섭더라고요. 사진으로 보면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지만, 정말 무서웠습니다. 중간에 제 동생을 애타게 찾을 정도로. 


드디어 들어갔습니다! (사진: 미 매니저)


그리고 결국 미끄럼틀을 탔습니다. 이제 막 3세가 지난 딸에게 조금 가혹한 시설물이 아니었을까 싶었는데, 딸과 비슷해 보이는 또래의 친구들은 무섭지도 않은지 자유자재로 올라가고 내려왔습니다. 아마도 일상에서 이 놀이 경험이 단련되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또 재밌었던 건 매번 다른 시작점에서, 다른 경로로 미끄럼틀까지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군산 놀이터 설계를 하면서, 설계를 진행해주셨던 건축사사무소 53427의 고기웅 소장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조합놀이대에선 들어가는 곳, 나오는 곳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고, 들어가서 나오는 곳까지 도달하는 경로가 단순한 놀이대가 많습니다. 

조합놀이대는 다양한 시작점과 끝점 그리고 그 두 지점을 잇는 다양한 경로가 존재하여 아이들에게 다양한 놀이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조합놀이대는 들어가는 곳도 나오는 곳도 다양하고, 매번 새로운 경로를 찾아 놀 수 있는, 거기다 다양한 근육까지 사용하게 되는 멋진 놀이터였습니다. 물론 저희 딸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온 뒤 다시 올라가길 거부했지만요. 




그런데 이런 놀이터, 과연 독일에만 있을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이 놀이시설물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군산 나운동 놀이터에서였습니다. 군산 놀이터 환경진단을 위해 놀이터 실사를 나가 공공놀이터 몇 군데를 둘러보았는데 눈에 띄는 곳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어린이 공원 74개 중에 61번 놀이터입니다. (주소: 군산시 나운동 1529)



풍경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합니다. 실사를 갔을 때 올라가 보았는데 성인 여자의 키를 감안하고 보신다면 꽤 높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산의 작은 공공어린이 공원에도, 이런 시설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또 발견했습니다. 바로 아이와 가기 좋은 제3의 공간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나연 님이 모험가의 놀이터 편에서 소개한 춘천 꿈자람 어린이 공원입니다. 나연 님의 글을 보고 바로 그 주말에 아이를 데리고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꿈자람 어린이 공원, 못 올라가서 불만인 어린이 (사진: 미 매니저)


이 공원에는 이런 종류의 놀이시설물이 여러 개 있는데 아쉽게도 6세 이하는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이런 놀이시설은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옆으로 가, 옆으로 가 (사진: 미 매니저)

다시 독일로 돌아와 봅니다. 낮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위의 영상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시설물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발을 팔을 높이 들고 발을 올리고 옆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독일과 한국의 놀이시설물들이 꽤나 비슷합니다. 


조금 편안해진 표정 (사진: 미 매니저) 



이제 다른 놀이기구를 만나볼까요? 


일명 바구니 그네입니다. 


여럿이 탈 수 있는 그네 (영상: 미 매니저)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아이가 타기 전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이 엄청난 초콜릿이 묻은 아이스크림을 이 그네 위에 나누어 먹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엔 두 명이 타고 놀다가 한 남자아이도 아이스크림을 들고 와 함께 타기 시작했는데요. 이 시설물은 저희에게 꽤나 유명한 그네입니다. 일명 슬그머니 놀이기구라고 불립니다. 혼자 온 친구들도 이미 놀고 있는 친구들 틈에 슬그머니 끼어들어갈 수 있는 놀이기구라는 의미입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놀이를 이어가는데, 낯을 가려 상호작용을 시작하기 어려워하는 친구들의 놀이 경험을 촉발시켜줄 수 있는 기구입니다. 


세화 놀이터에 설치된 그물침대 그네 (사진: playbook.or.kr)


다음은 모래놀이터로 가봅니다. 독일의 놀이터 바닥은 전반적으로 모래 바닥이었는데, 모래 놀이를 위한 모래놀이공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래의 입자가 모래놀이공간 밖의 모래와 달랐습니다. 부드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가는 노란색 감이 도는 모래였는데, 그 촉감이 좋았는지 아이가 한참을 모래 놀이터에서 조몰락거리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나라도 별도의 모래놀이 공간을 두는 곳들도 많아졌습니다. 특히 우레탄 바닥 놀이터가 많은 우리나라는 모래놀이 공간을 따로 만들어 두기도 합니다.


이모와 모래 놀이 삼매경이신 어린이 (사진: 미 매니저)


눈치채셨겠지만, 독일에서 만난 놀이터의 놀이시설물 대부분은 제가 한국에서 만났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설물 자체는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놀이터 개선사업을 시작하던 2014년에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디자인의 놀이시설물들에 대한 요구가 있었지만, 어느덧 우리나라의 놀이터에서도 제법, 멋진 시설물을 많이 찾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하지 않기도, 특별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놀이터를 만드시는 전문가분들도 다양한 사례를 많이 참고하시면서 동시에 사용자인 우리 아이들을 디자인 과정에 참여시켜 최대한 아이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가 가능한 다양한 놀이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놀이터를 특별한 곳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지, 아이들이 스스로의 위험을 인지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허용하는지, 자연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환경에서 놀이터를 이용하는지, 안전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놀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놀이터들은 특별한 것 같지 않으면서도 특별했습니다. 


# 번외 편.

두 개의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는 속도가 꽤 빨랐습니다. 아이가 깜짝 놀랐죠. 이렇게 놀이터 곳곳에 흥미진진한, 예측하지 못하는 신나는 요소가 숨어있습니다. 형태는 비슷해 보여도 이런 작은 요소에서 아이는 평소에 경험하지 못했던 재미를 만끽합니다. 

이렇게 빠른 미끄럼틀 처음이야. 소울둥절 (영상: 미 매니저) 




아이들의 동네에서, 일상에서 다양하고 재미있는, 살짝 스릴 넘치는 놀이터를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차도로 뛰어나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모래놀이터를 한없이 파헤쳐도 청결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놀이터 밖으로 나가면 차도를 만나 뛰어놀 수 없는 세상이 아니라, 어린이가 놀이터를 넘나들며 너른 공터를 자연스럽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C Program Play Fund 신혜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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