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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Oct 30. 2019

2. 아이들이 못노는 이유가 절대시간의 부족일까 1편

Part 1. 아이들의 생활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는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최이명 박사가 연구를 통해 수집한 94명 아이들의 GPS 데이터(동선)를 추가 분석하며 발견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합니다. 관찰기 시리즈가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이해하고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종종 미디어에 소개되는 초등학생의 하루 일과표는 모두의 눈을 의심하게 한다. 


자료출처를 보면 아이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보고서에 있는 내용인지라 더욱 놀랍다.


강남지역 6학년의 하루 일과는 수록된 내용 중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그 동네에 사는 자기 친구들의 대부분이 학원 숙제 때문에 5시간밖에 못 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하니 이 정도 수준이면 대놓고 벌어지는 아동 학대가 틀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며, “아이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 노는 것”이라 단정 짓는 어른들이 늘어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일부 지역에서 살인적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생활이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특정 지역, 특정 집단에서 통용되는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놀이가 사라진 더 복합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를 자꾸만 흐리는 것 같아 매우 두렵다. 아이들이 정말로 그렇게까지 시간이 없다고? “시간이 없어 놀지 못하는 아이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귀가 시간이 너무 빨라져서 큰일”이라는 부모들의 걱정이 우리의 모순된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정규수업 시간이 짧은 초등학교 저학년은 일생 중 자유시간이 가장 많은 시절이고, 그래야 하는 시기이다. 교육정책에서도 1-2학년에게는 “숙제 없는 학교”를 모토로 내걸고 있다. (공교육이 아이들을 풀어주려 애쓸수록 불안감에 더욱 부추겨지는 사교육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학년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오후 1-2시. 그때부터 일몰 전까지가 기관에 소속되어 돌봄을 받지 않는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나가 놀 수 있는 시간이다.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에 참여한 아이들은 “어머니가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또는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 일하는 경우”에 해당되었으므로**, 학원 일정을 제외하면 방과 후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그룹이다. 


이미지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워크샵


우리가 조사한 4개 대상지에는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지역과 공동체 및 대안적 가치를 지향하는 지역 등이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사교육의 종류와 내용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중학년 이하에서 시간 사용의 양적인 측면은 지역 간 차이보다는 개인적 편차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어느 지역이든, 학원이나 방과 후 프로그램 1-2개를 소화하고 있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패턴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로 거의 쉴 새 없이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학원 일정을 소화하는 아이도 있지만, 다섯 시간 중 두 시간 이상을 집에서 보내는 아이들도 20%를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에 참여한 아동 94명의 평일 평균 사교육 시간과 집에 있었던 시간 분포. 아이들의 시간이 학원 수업만으로 꽉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후 2-7시 사이, 아이들의 시간 사용 행태를 좀 더 단순화시켜 표현해보면 아래와 같이 대략 5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유형 A는 적어도 평일 하루 1시간 이상씩 바깥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학원과 집에 있었던 시간에는 개인차가 존재하지만, 이 아이들은 놀이-배움-휴식이 어느 정도 균형 있게 구성된 생활을 하고 있다. 


유형 B는 방과 후 시간의 대부분을 사교육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다.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못 노는 그룹으로, 실제 조사 결과에서도 일몰 전 바깥놀이 시간이 가장 적었다. 


유형 D는 사교육 시간이 하루 2시간이 되지 않지만, 집에서 나머지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이들이며, 유형 C는 사교육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둘 다 2시간을 넘는 아이들이다. 


기타 E의 경우 엄마의 일과를 따라다니거나, 공동체 네트워크에 소속되어 시간을 보내거나, 또는 학교 돌봄 교실이나 지역기관에서 오후를 보내는 아이들이다.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에서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 (최이명)


강도 높은 학습으로 저녁 먹기 전에는 놀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는 B그룹을 제외하면, 사실상 아이들이 갖는 자유시간은 생각보다 많다. 집에서 이루어진 그룹과외나 개인 레슨, 학습지 선생님 방문시간 등은 이 분류상에서 모두 사교육에 포함시켰으므로, 그래프에 표현된 집에 있던 시간은 간식 먹기, 휴식, TV나 영화 시청, 독서, 스마트폰 게임, 형제자매와 놀이 등을 위해 사용한 나름대로의 여가시간에 속한다. “집에 있었던 시간+ 바깥놀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쓸 수 있었던 시간이라면, 적어도 연구 참여자들 중 2/3 이상의 아이들이 일몰 전 2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은 가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시간이 아예 없다는 말보다는 줄어든 시간이 서로 맞지 않아 놀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동네에서는 이렇게 쪼개진 시간 속에서도 아이들이 한데 모여 놀이 기회를 만들어내고, 어떤 동네에서는 자유시간이 있더라도 각자의 집에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아이들은 친구와 놀 수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이, 초등학교보다 한참 늦은 4-5시경이었음을 떠올려 보면 이는 더욱 확실해진다. 이 무렵의 아이들이 하원 후 일제히 놀이터로 뛰어가 해질 때까지 놀 수 있는 이유는, 물론 숙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모일 수 있는 조건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마련되기 때문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출처>

*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의, 아동에 의한, 아동을 위한 2014 어린이 연구원(Greeny) 연구보고서 : 대한민국 아동을 말한다, 2014

**참여자들의 인구사회적 특성을 전업주부 또는 이에 준하는 그룹으로 한정한 이유는 놀이에 대한 물리적 환경의 영향을 중점적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참여자들 중에는 어머니가 일을 하지 않지만 학교 돌봄 교실을 이용하거나 공동육아 커뮤니티 또는 지역기관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5%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본 에세이는 2018년 최이명, 김연금 외 2인의 연구자가 씨프로그램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동네놀이환경진단도구개발' 연구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결과물입니다. 본 자료를 무단 도용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지난 에세이 보기


0. 들어가며: https://brunch.co.kr/@weseesaw/147


1. GPS와 통행일지가 말해주는 것들: https://brunch.co.kr/@weseesaw/148



놀세권 체크리스트로 우리 동네 진단해보기

우리 동네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인지 자가 진단해보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소개합니다. 


놀세권 체크리스트 소개 : http://c-program.org/playground

놀세권 체크리스트 다운로드 받기: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결과 영상으로 만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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