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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Oct 30. 2019

2. 아이들이 못 노는 이유가 절대시간의 부족일까-2편

Part 2. 초등학생을 위한 동네는 없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는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최이명 박사가 연구를 통해 수집한 94명 아이들의 GPS 데이터(동선)를 추가 분석하며 발견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합니다. 관찰기 시리즈가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이해하고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1편 먼저 읽기:

 


해가 어스름히 깔릴 무렵, 우리 동네에 나와 노는 아이들 한 무리를 지켜본다. 


그래 딱 저만큼이다. 맨날 노는 아이만 놀기 때문에, 거의 모두 알아볼 수 있는 얼굴들이다. 이 동네에 초등학생이 얼마나 많은데, 전부 집에 있겠지. 4학년쯤 되면 일주일에 한 번 노는 아이도 찾기 어려워진다. 비단 우리 동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을 옮겨가며 조사를 해보아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왜 한창 놀고 싶은, 친구와 가장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능력이 꽃피는 나이에 아이들은 급속히 놀이터에서 사라져 갈까?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 갔을까?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연구)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활동을 위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규칙에 대한 이해가 정교해지고, 신체능력은 눈부시게 발달한다. 이맘때 아이들이 손으로 던지거나 발로 찬 공은 아파트 유리창이 깨질까 무서울 정도로 강력하고, 멀리 나간다. 놀이터 기구들이 시시해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놀이터 기구에 쓰인 주의사항을 모두 반대로 하는 것도 모자라, 놀이터 주변 축대 위나 담장으로 기어올라가 어른들의 걱정을 유발하는 것도 모두 이 시기의 아이들이다. 

     

군산 프로젝트 때 만났던 아이들의 목소리와도 유사하다. (출처: 세이브더칠드런)


서너 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큰 아이들이 겁난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공에 맞을까봐 무섭고, 잡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부딪힐까봐 조마조마하다. 술래한테 잡힐까 바람같이 달아나는 아이들은 미끄럼틀에 앉아서 내려갈까 말까 망설이는 꼬마들을 훌쩍 뛰어넘는다. 알게 모르게 서로 눈치를 본다. 신경이 쓰인다. 


이 아이들에게 놀이기구로 들어찬 놀이터는 이미 오래전에 몸에 맞지 않는 작은 옷이 되었다. 작은 아이들에게는 적당한 공간이, 큰 아이들에게는 큰 공간이 필요하다. 


보도블럭 공터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놀이들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연구)


그러나 근린공원과 같이 아이들이 놀기 좋은 커다란 평지가 동네에 있는 경우가 서울 시내에 얼마나 될까.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되는 놀이터도, 공공 어린이공원도 성장한 아이들의 요구에 맞는 면적과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공원녹지법상 0.15ha의 어린이공원 면적이 제시되어 있으나 이 역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대개는 0.1ha 내외, 그보다 더 좁은 공간에 복합 놀이대와 나무 몇 그루, 벤치 몇 개를 갖춘 전형적인 놀이터에서 자전거와 킥보드, 배드민턴과 줄넘기, 그네를 타기와 잡기 놀이, 공차기, 이제 막 걷고 비틀비틀 뛰기 시작한 꼬마들과 운동기구를 사용하며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어른들이 공존한다. 


어린이공원보다 상위 위계의, 넓은 놀이장소는 성장한 아이들의 활동에 적합할 뿐 아니라, 시간이 쪼개진 아이들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이다. 


시간이 나는 아이들은 무조건 그 장소로 달려 나갈 것이고, 누군가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들 것이다. 누군가는 더 놀기 위해서 학원시간을 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넓은 놀이장소의 중요성은 현장조사를 통해서도 누차 확인된다. 대부분의 동네에서 학교 운동장의 접근이 어렵거나 개방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면적 0.3ha(50 m×60m 정도의 크기) 이상의 평지형 놀이장소가 집 근처에 있고 없음은 “평일” 놀이시간의 상당한 차이로 이어졌다. 이는 아파트 단지 내 또는 주변 지역에 작은 놀이터가 몇 개나 있는지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아래 그래프에서 목동 vs 다른 지역의 평일 놀이시간) 


큰 아이들이 모이고 활동하기에 유리한 면적 0.3ha 이상의 놀이장소가 있는 목동의 평일 놀이시간은 다른 지역의 평일 놀이시간과 하루 평균 15~25분가량의 차이를 보였다.


평지형의 넓은 놀이장소


어딘지 익숙하다. 사실 이 모든 요건을 갖춘 공간은 가까이에 있다. 바로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 운동장이다. 공놀이가 가능한 넓은 공간과 놀이터가 함께 있는 데다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니 친구를 찾아 헤맬 이유가 없다. 그러나 원래 아이들의 것이어야 하는 이 공간은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빨리 돌아가기를 종용하며, 주말의 가장 놀기 좋은 시간의 운동장은 사회인 체육동아리들이 선점한 지 오래다.  


언제 들리든 운동장에서 친구들을 만나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연구

    

각종 사건 사고로 불안감이 극도로 높은 사회에서, 학교 문을 닫고 아이들을 집으로 빨리 돌려보내려는 학교의 태도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원녹지가 열악한 동네일수록, 성장한 아이들에게는 운동장이 오아시스 같은 공간임을 학교가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초등학생들은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적합한 공간이 없어서 못 노는 경우가 더 많다. 동네가 좋은 공간을 열어준다면, 아이들의 시간은 다시 모일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해도 여전히 이들의 놀이를 환대하며, 더 크고, 넓은 공간을 허락하는 동네를 상상하고 기대한다.


출처: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연구


동네가 좋은 공간을 열어준다면, 아이들의 시간은 다시 모일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해도 여전히 이들의 놀이를 환대하며, 더 크고, 넓은 공간을 허락하는 동네를 상상하고 기대한다.


본 에세이는 2018년 최이명, 김연금 외 2인의 연구자가 씨프로그램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동네놀이환경진단도구개발' 연구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결과물입니다. 본 자료를 무단 도용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 해당 데이터는 동네별로 특정 조건을 충족하는 아동(예: 어머니가 전업주부인 아동)에 한정하여 소규모 샘플 (20~30명)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동네에 사는 모든 어린이들의 상황을 대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네 전체의 맥락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라며, 동네 간 비교를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지난 에세이 보기


0. 들어가며


1. GPS와 통행일지가 말해주는 것들


2. 아이들이 못 노는 이유가 정말 절대시간의 부족일까



놀세권 체크리스트로 우리 동네 진단해보기

우리 동네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인지 자가 진단해보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소개합니다. 


놀세권 체크리스트 소개 : http://c-program.org/playground

놀세권 체크리스트 다운로드 받기: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결과 영상으로 만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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