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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Nov 19. 2019

3. 겉으로 드러나는 놀이 풍경의 이면 - 1편

놀이터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면, 놀기 좋은 동네일까?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는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최이명 박사가 연구를 통해 수집한 94명 아이들의 GPS 데이터(동선)를 추가 분석하며 발견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합니다. 관찰기 시리즈가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이해하고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Public Health Note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놀지 못한다고 아우성인데, 또 다른 쪽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들려온다.


“우리 동네 놀이터에는 애들 진짜 많은데”, “요즘 아이들 시간도 없다는데, 집 앞을 내다보면 거짓말 같아”, “아이들이 밤늦도록 나와서 뛰어다니니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잘 지경”.


아이들이 길에서 노는 동네도 있다.  자주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은 아니지만, 열악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으로 긴밀한 공동체 네트워크가 만나는 지점에 종종 아이들의 길 놀이 풍경이 생겨난다. 설상가상으로 또 다른 오해도 따라온다.


우리 어렸을 땐 놀이터가 없었는데도 잘만 놀았지, 아이들은 길에서 오히려 더 창의적으로 놀지 않나?


동네의 특정 시간, 특정 지점에서 마주치는 단편적인 풍경들은 “요즘 아이들이 못 논다지만 우리 동네는 예외”라는 오해를 쉽게 불러일으키곤 한다. 놀고 있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높은 톤의 재잘거림이 주는 경쾌함은 그들이 서 있는 놀이 환경의 열악함을 덮고, 이 시간에 놀이터나 골목에서 보이는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각자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간과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놀이터 풍경은 한 장소에 대한 집중적인 선택으로부터 비롯된다.


동네에 놀이터가 아무리 많이 조성되어 있어도, 아이들이 가는 놀이터는 정해져 있다. 친구를 찾아야 빨리 노는데 외진 놀이터를 탐험하고 있는 아이가 있겠는가?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지나가는 중심 생활가로변의 놀이터는 그래서 가장 붐빌 수밖에 없고, 이 놀이터의 풍경이 항시 노출되니 우리 동네 아이들은 잘 놀고 있다는 착시가 생길 만도 하다. 경사지의 경우 이러한 놀이터 쏠림 현상은 더욱 극대화되는데, 사람들이 경사를 피해 가장 효율적으로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지형을 따라 한정되는 까닭이다. 경사지 재개발 아파트 지역에서 만난 연구 참여 부모들은, 많고 많은 단지 내 놀이터 중 한 곳(A)을 집중적으로 지목했다.


“저학년 때는 일단 여기에 오면 친구 하나는 걸린다는 믿음이 있어서, 무작정 나가서 놀면서 기다릴 때도 많았어요.”

“우린 이 놀이터를 학원 가는 중간에 만나서 간식 먹는 장소로 써요. 학원이 전부 건너편 아파트 상가에 있어서 여기를 지나야 갈 수 있거든요. 애들이 너무 많아서 놀기는 좀 그렇고.”

“너무 과밀하니까, 어떤 때는 친구들이 모이면 한 그룹이 통째로 다른 놀이터로 이동해요.”

“4학년쯤 되면 놀이터에서 눈치를 받아요. 이 나이에 탈 만한 건 그네뿐이고 그나마 경쟁이 치열하니까, 옆에 있는 작은 대나무밭으로 들어가 놀기도 하고. 그런데 안에 숨어서 안 좋은 행동 할까 걱정도 되고요.”

“워낙 장소가 좁은데 야구, 축구하는 애들까지 전부 여기 있으니까 불편해요. 다른 놀이터가 전부 모래로 되어 있으니 더 우레탄 바닥으로 모여드는 것 같아요.”

“단지 내부가 미로 같으니, 여기 말고는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랜드마크가 없다고 해야 하나? 8살이면 혼자 나갈 수 있는 나이잖아요. 그런데 102동 놀이터에서 만나,라고 말해도 동이 ㄱ자로 꺾여 있는 데다 길도 복잡하고 계단도 많으니 앞쪽인지, 뒤쪽인지, 여긴지 저긴지 어른들도 헷갈려요. 아이들은 더하죠, 못 만나요. 그러니 이쪽으로 다 와요. 여긴 길에서 바로 보이니까.”



작은 놀이터가 많은데 한 놀이터에만 아이들이 집중되는 경우, 이 동네의 놀이터가 모자란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필요한 곳에 없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다른 놀이터를 줄이고 아이들이 집중된 바로 그 장소에 훨씬 더 큰 놀이 공간이 조성되어야 했다.


단지 내 놀이터를 균질하게 깔아 놓는 것과 공평함(equity)은 다른 개념이다.


성장주기에 따라, 소외되는 연령대 없이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활동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공평함이라면, 대부분의 공동주택 단지설계는 큰 아이들에게 공정하지 않다.


한국의 단지계획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오픈 스페이스는 수익성 극대화를 위한 주동 배치와 주차, 차량 동선이 모두 해결된 후 고려되기 시작하는데, 주동 사이에 남아있는 공간으로는 큰 아이들이 원하는 공놀이 장소 등을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본 에세이는 2018년 최이명, 김연금 외 2인의 연구자가 씨프로그램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동네놀이환경진단도구개발' 연구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결과물입니다. 본 자료를 무단 도용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지난 에세이 보기


0. 들어가며


1. GPS와 통행일지가 말해주는 것들

2. 아이들이 못 노는 이유가 정말 절대시간의 부족일까



놀세권 체크리스트로 우리 동네 진단해보기

우리 동네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인지 자가 진단해보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소개합니다.


놀세권 체크리스트 소개 : http://c-program.org/playground

놀세권 체크리스트 다운로드 받기: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결과 영상으로 만나보기:



<겉으로 드러나는 놀이풍경의 이면 - 1편> 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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