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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Nov 20. 2019

3. 겉으로 드러나는 놀이 풍경의 이면 - 2편

골목에서 아이들이 공을 차고 있다면, 놀기 좋은 동네일까?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는 C Program에서 후원한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일명 '놀세권 연구'의 연구자 중 한 명인 최이명 박사가 연구를 통해 수집한 94명 아이들의 GPS 데이터(동선)를 추가 분석하며 발견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합니다. 관찰기 시리즈가 오늘의 대도시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놀이 행태를 이해하고 동네 놀이 풍경에 대한 흔한 오해를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길 바랍니다.



1편 먼저 읽기: https://brunch.co.kr/@weseesaw/177


A와 B놀이터의 이용빈도 및 영향력의 차이 요인 : 중심가로에서의 시야 개방, 진입계단의 유무, 바닥재질


지도상으로 A와 B는 기껏해야 50m 떨어진 비슷한 놀이터 같지만, 아이들에게 둘 사이의 존재감은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중심가로에서의 개방된 시야와 계단 없는 진입, 바닥 재질의 희소성이 두 놀이터의 사용빈도를 완전히 갈랐다(정작 시설물의 차이는 거의 없다). 아래 그림에서 각 놀이터가 주변 아이들을 끌어들이는 양상을 살펴보면, 목이 좋은 놀이터가 넓어야만 하는 이유는 더욱 분명해진다.


놀이터 A와 B사이의 거리는 불과 50m 남짓이지만, 놀이터 B는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나치게 되는 장소인데 반해 길에서 바로 보이는 놀이터 A에는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모여든다. *


그나마 작은 놀이터라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없는 놀이 공간을 만들어서 놀아야 하는 아이들의 경우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성서초교 통학권 내에는 걸어갈 만한 공공 어린이공원이 아예 없는 구역이 존재한다. 동네 뒷산인 성산 근린공원과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의 활동반경 내에 있는 거의 유일한 오픈스페이스다. 학교는 개방적이라 해도 놀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동네 뒷산은 아직 어린아이들끼리 놀러 가도록 허락되는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이 동네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광경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길은 차량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걷는 사람도 주인”이라는 태도를 가진 어른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동네 분위기는 아이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갑자기 훌쩍, 5-6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담을 뛰어넘어 길에 착지한 후, 그대로 내달린다. 놀랄 틈도 없이 다음 아이, 또 다음 아이들이 문이 아니라 담 속에서 뛰어나온다. 꽤 높은 담이라 지켜보기가 조마조마한데, 아이들은 길에서 비비탄을 쏘아대며 바람같이 사라졌다.      



오후 4-5시에 늘 아이들이 있다는 한 동짜리 아파트 앞으로 가본다. 오늘은 발로 공 주고받기를 하는 아이들이 나와 있다. 나중에 온 아이들이 먼저 온 팀에 껴서 할지 기다릴지 고민하는 눈치다. 화단 근처에서는 팽이 시합도 열리고 있다. 운동장에서 하면 종횡무진 넓을 곳을 누비고 다닐 텐데.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넓은 공간, 넓은 공간, 넓은 공간”이라고 답하던 부모들의 인터뷰 결과지가 눈에 밟힌다.


문제는 이렇게라도 놀고 있는 아이들이 소수라는 점이다.


공동육아 커뮤니티 속에서 방과 후를 보내는 아이들의 경우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긴, 바깥활동을 위한 적극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움직이게 되며, 성장하여 더 이상 방과 후 과정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길과 1층 주차장을 놀이에 활용하던 일상의 습관을 이어나간다. 공동육아 커뮤니티에 속한, 또는 속해 있었던 아이들의 경우 놀이환경의 열악함이 부모-자녀들 간 이중으로 연결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상당 부분 상쇄되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인데, 상대적으로 느슨한 관계망 속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경우 공공 놀이공간의 부재가 놀이시간 없는 생활로 직결되고 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가장 많이 노는 데는 길바닥”


“애들이 도대체 놀 수가 없어요, 우리 못 놀아요.”라는 이야기가 동시에 들려오는데, 사실은 비율상 훨씬 더 많이 들려야 할 “아예 못 놀아요”라는 말이 “길에서 놀아요”라는 이야기에 가려지는 경향이 있다. 


이 동네는 구릉지 아파트 단지와는 반대로, 아이들이 성장하면 좀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활동 영역이 조금만 넓어져도 좋은 공간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섯 살에 경쟁하듯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들은 3학년만 되면 집에서 800m 정도 떨어진 유수지 체육공원에 친구와 둘이서만 가기도 하고, 심지어 어른 없이 한강으로 나가기도 한다. 지금까지 조사했던 어떤 동네에서도 이렇게 도전적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아이들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는 나이부터 아직 부모로부터의 독립보행이 완성되지 않은 초등 저학년까지, 아이들과 부모들은 집 앞 놀이터가 없는 동네에서 자구책을 찾으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골목에서 주로 노는 아이들. 그나마 길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 동네에서 많이 노는 아이들이다 (출처: 위 2장 직접 촬영, 아래 3장 연구 참여 어머니 제공)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공격적인 공동주택 공급을 지속해 온 한국이지만, 구릉지의 태생적인 한계를 단지계획으로 현명하게 극복하고 놀기 좋은 동네로 재탄생시킨 사례를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애타게 찾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구릉지가 무조건적으로 아이들 놀이에 불리한 것은 아님을 관찰할 기회도 있었기에, 전면철거 재개발보다는 재생으로 방향을 돌린 현재의 기조가 구릉지에서도 놀기 좋은 동네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를 만들어내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놀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은 기본적으로 밝다. 이 때문에 많은 오독(誤讀)이 발생하며, 그 자리에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놀이 없는 일상이 가려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기억했으면 한다. 특정 놀이터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면, 그 풍경을 “우리 동네는 놀기 좋다” 가 아니라 “여기에 더 큰 놀이터가 있어야 했다” 는 신호로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향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조성될 계획이 있다면, 반드시 그 놀이터에 최대한 가까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라.


특정 놀이터에 아이들이 몰려 있다면, 그 풍경을 “우리 동네는 놀기 좋다” 가 아니라 “여기에 더 큰 놀이터가 있어야 했다” 는 신호로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단지 설계하는 분들에게는 놀이터를 시장이나 슈퍼마켓이라 생각하고 계획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상가를 주동 뒤에 숨겨놓으면 사람이 오겠는가?


먹고사는 것보다 덜 긴급한 문제라 생각되기에, 놀이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여겨지는 요즘이기에 오히려 상가보다 더 목에 죽고 살게 된 장소가 바로 놀이터다.


길에서 노는 아이들은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강한 그룹이다. 요즘의 길은 예전과 달라서 아이들이 놀기에 적합한 환경도 아니고, 아이들이 저절로 모일 수 있는 공간도 아니기에 자신의 능력과 어른들의 지지가 있는 환경에서만 놀이가 가능하다. 놀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수줍고, 몸이 날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들도 그냥 나가볼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길에서 이미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놀이터는 간절하다. “다른 동네 놀이터에 가면, 워터파크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놀아요.” 길에서 매일 논다는 아이 어머니가 웃으며 이 말씀을 하시는데, 연구나 하고 있는 나는 그저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놀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수줍고, 몸이 날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아이들도 그냥 나가볼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20p


본 에세이는 2018년 최이명, 김연금 외 2인의 연구자가 씨프로그램의 의뢰를 받아 진행한 '동네놀이환경진단도구개발' 연구과정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결과물입니다. 본 자료를 무단 도용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놀세권 연구자의 동네 놀이 풍경 관찰기

지난 에세이 보기


0. 들어가며

1. GPS와 통행일지가 말해주는 것들

2. 아이들이 못 노는 이유가 정말 절대시간의 부족일까

3. 겉으로 드러나는 놀이 풍경의 이면 - 1편



놀세권 체크리스트로 우리 동네 진단해보기

우리 동네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동네인지 자가 진단해보는 간단한 체크리스트를 소개합니다.


놀세권 체크리스트 소개 : http://c-program.org/playground

놀세권 체크리스트 다운로드 받기:

'동네 놀이환경 진단도구 개발 연구' 결과 영상으로 만나보기:



<겉으로 드러나는 놀이 풍경의 이면 - 2편> 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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