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로얄 방식의 청소년 소설과 게임 그리고 영화.
가끔 소설을 읽다가 영화가 떠오르고, 게임을 하다가 만화가 떠오르는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월간 스토리]는 손보다 발이 바쁜 이지유 작가님이 1달에 1번,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함께 즐기면 좋을 그림책, 단/장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등을 모두 모아 하나의 글로 소개합니다. 월간 스토리를 통해 소설, 그림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넘나드는 재미, 장르에 따라 살짝살짝 변주하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는 시간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
군사훈련 목적으로 외딴섬에 갇힌 여중생 21명과 남중생 21명이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를 죽인다는 내용으로, 최후에 살아남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전략, 계략, 속임수 등을 쓴다.
주인공들이 모두 십 대의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는데, 폐쇄된 사회 속에서 죽음에 내몰린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직의 이득을 위해 희생되는 대상이 청소년들이라는 설정은 수많은 이들의 분노 섞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청소년을 약자로 자리매김하고 이들을 인격체가 아닌 자원으로 삼는 덜 떨어진 어른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은 어른은 없다. 그러니 누구나 약자의 처지에 있어본 적이 있는 것이다.
배틀 로얄은 프로 레슬링 경기 방식 중 하나로, 여러 명의 프로 레슬러가 한 링에 올라가 최후의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싸운다. 링 위에 올라간 선수들은 승자가 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데, 주로 약한 선수들이 팀 한 팀을 이루어 강한 선수를 한 명씩 제거해나가는 전략을 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승리를 위한 순간적인 결정일뿐 결국은 모두가 적이다.
독재국가 ‘판엠’은, 기득권을 지닌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캐피탈과 그 둘레에 위치한 가난한 13개의 변방 도시로 구성되어 있다. 권력자들은 가난한 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신박한 진압 방법을 생각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헝거 게임이다.
각 도시는 매년 10대 남녀를 각 한 명씩 헝거 게임에 출전시켜야 한다. 제비뽑기로 뽑힌 청소년들은 게임을 위한 대규모 세트장으로 내몰린 뒤 갖은 계략을 써서 서로를 죽인다. 비운의 참가자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해에 먹을 식량을 배급받을 수 있고 자신이 사는 구역에 면제권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은 생중계되어 모든 국민이 실시간으로 시청한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최대의 오락 거리이자 동시에 커다란 공포로 다가와 다른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캣니스 애버딘은 이를 역이용해 반란에 성공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민주적인 판엠을 만든다. 사회 속 약자인 청소년이 게임에는 억지로 끌려 나갔을지 모르나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이 속한 사회의 미래까지 바꾼다는 점,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힘이 어린 여주인공으로부터 나왔다는 점, 또 그런 청소년을 돕는 선한 어른들이 있다는 점을 부각해 많은 독자의 사랑을 얻어냈다.
모두 세 편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청소년 소설 헝거 게임은 인기가 하늘을 찔렀으며 당연히 영화제작자의 눈에 띄었다. 결국 이 소설은 모두 4편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소설 속에 나오는 게임 세트장과 등장인물의 옷과 무기의 실사를 보는 것은 또 다른 흥미를 선사해 영화는 개봉할 때마다 흥행을 이루었다.
레고처럼 블록을 쌓아 세계를 구축하는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떠올리는 그래픽에 배틀 로얄을 결합한 ‘배틀 로얄 게임’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줄어드는 세상 속에 던져진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배틀을 벌여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포트 나이트, 에이팩스레전드 등이 이 유형의 게임인데, 뭐니 뭐니 해도 이 계열의 최강자는 배틀 그라운드다.
2017년 출시된 배틀 그라운드는 드넓은 대지에 100명의 플레이어가 낙하산을 타고 동시에 투입되어 배틀 로얄 방식으로 전투를 벌인 뒤 승자를 가리는 게임이다.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양한 무기를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친구나 가족이 전략적 팀을 이루어 적을 몰아내며 점점 좁아드는 공간 속에서 게임을 벌인다. 게임은 모바일 버전도 출시되어 게임에 입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즐기는 인기 게임이 되었는데, 가족 단위로 게임에 들어와 같은 의상을 사서 입고 전략적 팀을 이루어 게임을 즐긴다. 물론 가족이라도 마지막에는 한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함정!
그러나 인간을 극한 상황에 밀어 넣으면 어떤 육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지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이 이와 같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찾는 또 다른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십대들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아를 찾는 일을 해나간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게 해 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십대들은 20세기에 십대 시절을 보낸 성인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영어덜트를 위해 쓰여진 소설과 그를 기반으로 만든 영화, 그리고 게임에는 21세기를 살아가야할 십대들에 대해 가장 객관적, 논리적, 구체적으로 고민한 작가 집단이 만든 이야기와 시나리오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 속에는 대부분의 성인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발한 자아 찾기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입시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무슨 소설이냐고 할 것이 아니라 공부대신 영어덜트 소설을 손에 들려주는 여유 있는 어른이 되어 보자. 또 십대들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무조건 방해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십대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내버려 두자. 어른들은 그들이 여는 미래의 문을 조용히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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