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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 SAW Dec 11. 2019

[월간 스토리] 세번째. 오즈의 무한 변신

오즈의 마법사부터 위키드, 에메랄드 시티까지

가끔 소설을 읽다가 영화가 떠오르고, 게임을 하다가 만화가 떠오르는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월간 스토리]는 손보다 발이 바쁜 이지유 작가님이 1달에 1번,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함께 즐기면 좋을 그림책, 단/장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등을 모두 모아 하나의 글로 소개합니다. 월간 스토리를 통해 소설, 그림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넘나드는 재미, 장르에 따라 살짝살짝 변주하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는 시간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타임스유니언센터


미국의 캔자스 농촌에 사는 도로시는, 


집에 있다가 느닷없이 불어 닥친 회오리바람에 집이 통째로 날아가는 바람에 의도하지 않게 오즈 왕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집으로 돌아올 방법은 오직 하나, 에메랄드 시에 사는 마법사를 찾아가 귀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도로시는 노란 길을 따라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뇌가 없어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새들도 자신을 업신여긴다고 여기는 허수아비와 심장이 없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기는 양철 인간, 자신감을 잃어버려 작은 동물조차 잡지 못하는 겁이 많은 사자를 만나 각자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동행한다. 자,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잡히는가? 


첫번째 에디션의 표지 (출처: 위키피디아 (The Wonderful Wizard of Oz))


그렇다.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지어 1900년 출판한 동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이야기다. 책은 출판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당연히 1903년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바움은 그 후 13편의 이야기를 더 만들어 책으로 내서 현재 14편의 이야기가 있다. 


1902년 뮤지컬의 홍보 포스터와 허수아비, 양철 인간의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The Wizard of Oz (1902 musical)


오즈의 마법사가 인기를 얻은 이유는, 


책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들이 약자를 대변하기에 알맞을 뿐 아니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해석 가운데 허수아비와 양철 인간을 농민과 공장 노동자로 비유하고 노란 길은 금과 같은 색이라 자본을, 또 에메랄드 시는 수도로써 워싱턴 DC를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는데, 이 탓에 매카시 열풍이 불던 1950년대에 이 책은 어린이용 문학서임에도 불구하고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이야기의 세계관, 곧 아무리 꼬인 일이라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반드시 옳게 풀린다는 세계관이 단단하고 등장 캐릭터의 상징성이 워낙 좋아 다양한 변주가 가능했으니 할리우드가 이 이야기를 놓칠 리 없었다. 사자가 울부짖는 영상으로 유명한 제작사 MGM은 이 이야기의 판권을 사들여 원본에 충실하게 “오즈의 마법사”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 1939년 개봉했고 이 영화에 나온 노래 ‘Over the rainbow’는 아직도 인기가 식지 않은 채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도로시 역할을 맡은 배우 Judy Garland이 불렀던 'Over the Rainbow' (출처: 위키피디아 (Over the Rainbow))


1978년에는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어 “마법사 (The Wiz)”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는데, 음악 담당에 퀸시 존스, 도로시 역에 다이애나 로스, 허수아비 역에 마이클 잭슨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등장해, 미국에서 연극과 뮤지컬 최고의 상이라 일컫는 토니상 7개 부문을 휩쓸었다. 


마이클 잭슨과 다이애나 로스의 Ease On Down The Road (The Wiz)


아, 마이클 잭슨이 허수아비라니!


연이어 1985년에는 집으로 돌아온 도로시가 미쳤다는 판정을 받아 정신병원에 갇혔으나 가까스로 탈출해 오즈로 다시 가서는 위기에 빠진 오즈 왕국을 구한다는 내용의 영화 “마법의 나라 오즈”가 개봉되었다. 도로시는 1939년의 영화에 비해 더욱 어려져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어린아이의 모습에 가까워졌고, 이 영화를 시작으로 오즈의 마법사는 더욱 과감하게 변주를 시도한다.


이듬해인 1986년에는 일본에서 “오즈의 마법사”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다. 총 52편이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1년 동안 방영이 되었는데, 이때 애니메이션을 본 사람이라면 “캔자스 외딴 시골집에서 어느 날 잠을 자고 있는데,”로 시작하는 주제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도로시와 훨씬 친근함이 느껴지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배경음악은 재즈라 매우 독특한 매력이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난 오즈의 마법사, Ozu no mahôtsukai (출처: IMDB)


1995년에는 그동안 나쁜 마녀로 알려졌던 서쪽 마녀가 실은 약한 오즈의 시민들을 대변하는 의로운 마녀 엘파바였으며 엘파바가 왜 그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로 풀어낸 소설 “위키드”가 나왔다. 그레고리 매거리는 원작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를 더욱 확장시켜 그동안 도로시와 세 친구들에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마녀에게로 옮겼다. 


'위키드 소설'과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위키드 뮤지컬' (출처: 위키피디아)


소설 위키드는 2003년에 뮤지컬로 만들어져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하기에 이르렀다. 틀을 깨고 자유를 얻으라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 “중력을 벗어나라! (Defying Gravity)”가 인기를 얻었고 편견을 이기고 새로운 삶을 찾는 노래 “언리미티드”는 “Over the rainbow”에서 첫 소절을 가져와 이 노래가 원작을 충실히 영화한 “오즈의 마법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Idina Menzel의 Defying Gravity 공연


2007년에는 드디어 SF 버전이 나온다! 


SF를 전문으로 방영하는 사이파이 텔레비전에서 21세기 버전의 오즈의 마법사 ‘틴맨’이 3부작으로 방영되었다. 스팀펑크스타일로 재해석한 이 드라마는 앞서 나온 원작과 영화, 뮤지컬이 시종일관 밝은 이미지인 것에 반해 어둡고 음울하지만,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풀고 한 세계를 구원하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은 전작들과 같다. 


출처: Pinterest


2013년, 디즈니가 만든 영화 ‘오즈 그레이트 앤드 파워풀’에서는 도로시가 아닌 마법사에게로 초점이 옮겨갔다. 서커스에서 마술을 부리던 오스카는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오즈로 오고, 왕이 될 마법사가 하늘에서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오즈의 시민들은 맞춤하게 찾아온 오스카를 마법사로 여겼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오스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마법사의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기존에 없던 다양한 캐릭터들을 쏟아내며 오즈의 마법사를 새로운 눈으로 보도록 만들었다.



웹툰계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4년 우리나라에서는 웹툰 “오즈랜드”가 인기를 끌었다. 여고생인 주인공은 격투기에 능한 타고난 파이터로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뒤 영혼이 오즈랜드로 떨어져 도로시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놀랍게도 오즈의 마법사는 당시 114년 전 만들어진 이야기였지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가져다 써도 잘 맞는 보편적인 틀을 가지고 있음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2017년에는 미국 NBC에서 드라마 “에메랄드 시티”를 방영했는데, 무대를 현대의 미국으로 옮기고 인물도 모두 현대인이지만 오늘날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은 120년 전 바움이 구축한 ‘오즈’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http://conversationsabouther.net/




하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 웹툰, SF, 판타지 드라마로 만들어지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녀, 마음을 찾고 싶은 양철 인간, 용감해지고 싶은 사자, 똑똑해지고 싶은 허수아비, 약자를 대변했지만 결국 악하다는 평만 들은 마녀, 어쩌다 보니 원치 않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권리는 없고 의무만 이행해야 하는 마법사와 같은 캐릭터에 쉽게 몰입한다. 특히 이 사회의 약자 입장인 어린이와 청소년은 더욱 몰입하기 쉽다. 


아마도 우리가 ‘오즈의 마법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 캐릭터와 세계관 속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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