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덕후가 소개하는 <우리나라에 미출간 된 청소년 SF 13권>
가끔 소설을 읽다가 영화가 떠오르고, 게임을 하다가 만화가 떠오르는 그런 경험 없으신가요? [월간 스토리]는 손보다 발이 바쁜 이지유 작가님이 1달에 1번, 하나의 주제를 기반으로 함께 즐기면 좋을 그림책, 단/장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다큐멘터리 등을 모두 모아 하나의 글로 소개합니다. 월간 스토리를 통해 소설, 그림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넘나드는 재미, 장르에 따라 살짝살짝 변주하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지는 시간을 만나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
우선 주인공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청소년이 주인공이면 작품 속 세계관은 청소년의 입장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오로지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SF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몸은 성인과 같고 세상을 탐구하는 호기심과 욕구 또한 매우 크지만 이를 이루기에 어려움이 많다. 이들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공간이 부족하며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전이다. 게다가 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각종 규칙은 청소년을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현실 상황이 이러하니 클릭 한 번이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게임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탈출구를 선사한다.
사실, 게임을 즐기는 데는 돈이 필요하다. 빠른 컴퓨터일수록 흥미진진한 게임을 즐길 수 있는데, 컴퓨터는 비싸다. 그래서 피시방에 가지만 여기도 공짜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싸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게임을 모티브로 한 소설을 읽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출간된 작품 속 주인공들은 어쩌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출간된 책 속에는 십 대의 청소년이 게임 개발자이거나 프로게이머 또는 해커이기도 하다. 게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게임 SF의 내용이 훨씬 풍부해졌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책. 'The Homeward Bounders' by Diana Wynne Jones (1981)
톨킨의 제자이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쓴 다이아나 윈 존스의 작품. 12살 제이미는 둘러쓰면 낯선 세계로 가는 망토를 발견한다. 낯선 세계란 이 세상과 다른 세상이 맞닿은 경계. 다중 세계가 이 경계들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전체가 거대한 게임판이다. 변신의 귀제 헬렌과 악마 사냥꾼 조리를 만나 동맹을 이룬 제이미는 경계를 벗어나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
책 속 이야기에서는 십 대의 아이들이 게임판에 던져져 집을 찾으려 애를 쓰지만 현실 세계에서 10대들의 처지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회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청소년들. 현실 속 청소년들은 보드 게임판의 말처럼 자신의 의지를 하나도 표현할 수 없는 신세인 것 같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세계를 찾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도!
두 번째 책. 'Shade’s Children' by Garth Nix (1997)
14살이 되면 모두 죽어야 하는 세상, 이 세상에서 14살이 되는 생일은 ‘슬픈 생일’이다. 독재자는 청소년들의 뇌와 신체 부분을 분리해 생체 기계를 만든다. 이건 정말이지 디스토피아와 끝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쉐이드’라 불리는 존재는 어린이들을 구출해 먹이고 재워준다. 그러나 쉐이드는 지옥에서 탈출한 아이들에게 독재자를 파괴하라는 임무를 주고 위험한 곳으로 보내는데 돌아오는 아이는 극소수다. 운 좋게 살아남은 엘라, 드럼, 닌드, 골드 아이가 임무를 완수하면서 알아낸 ‘쉐이드’의 정체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14살 청소년들, 현실 속의 14살 청소년의 삶은 이와 크게 다를까? 아니, 이들은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세 번째 책. 'Feed' by M. T. Anderson (2002)
모든 인간의 뇌가 피드에 연결되어 있는 세상, 이곳에서는 개인의 잡다한 기억들이 자동으로 업로드되어 거대한 집단의식을 생성한다. 이곳에 연결된 10대들은 서버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 유도하는 소비성향을 따르고, 혹시라도 피드에 순응하지 않거나 반감을 가진 정황이 포착된 이가 있다면 아플 때 치료를 받을 수 없음으로 물론이고 죽기도 한다. 주인공 바이올렛처럼.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 SNS에 매달리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이동기기로 SNS에 접속하는 것은 뇌가 접속되는 것과 같으며 어떤 사이트를 방문했는지에 따라 개인의 취향이 모두 파악되어 광고창에는 내가 보고 싶은 상품만 뜬다. 근거 없는 소문이 사실이 되고 그 탓에 사람이 죽기도 한다.
우리는 거대한 게임판의 캐릭터와 같은 것이다.
네 번째 책. 'Dangerous Reality' by Malorie Blackman (2004)
도미닉의 엄마는 매우 유능한 과학자로 무엇이든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시스템인 VIMS(a Virtual Interactive Mobile System)의 개발자다. 이 놀라운 발명품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선보이던 날, 어떤 훼방꾼의 계략으로 시연은 실패로 돌아간다. 도미닉은 엄마를 위기에 빠트린 사람을 찾아 수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기계와 달리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는다. 게다가 어른들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세상이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아마 어른들의 뇌를 프로그래밍하고 싶지 않을까!
다섯 번째 책. '싱커' 배미주 (2010)
영화 아바타가 지구를 휩쓸고 가던 바로 그때 우리나라에 동시에 출판된 청소년 SF. 신아마존이라 불리는 게임에 접속한 주인공들은 동물의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이루어진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 상의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결국은 인간 역시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점을 깨닫는다. 날마다 사라지는 종이 있는 요즘, 정말로 생물은 신아마존 같은 가상의 세계에만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여섯 번째 책. 'Insignia' by S. J. Kincaid (2012)
미래의 어느 시기 태양계 내 행성의 자원이 고갈되자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볼품없는 외모와 더불어 14년 인생에 즐거움이라곤 찾을 수 없었던 톰은 가상의 현실 게임의 세계에서만 들어서면 180도 달라진 사람이 된다. 이를 눈여겨보던 군은 톰을 데려다 머리에 송수신기를 심고 전투 드론을 조종하는 훈련을 시킨다. 그는 전쟁 영웅이 된다. 그 와중에 톰은 친구를 사귀고, 다양한 종류의 어른들을 만나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과 결정, 행동을 하며 성장해 간다.
일곱 번째 책. 'RUSH' by Eve Silver (2013)
엄마가 암으로 죽고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려 부모에게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16살 미키는, 어느 날 달려오는 트럭에 치일 뻔한 어린 소녀를 구하려다 자신이 사고를 당하고 만다.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미키는 다른 세계로 이동해 로비라 불리는 곳에서 멀쩡하게 살아났다. 그러나 그곳은 게임의 세계. 이곳에서 미키는 다루라 불리는 외계인을 처치하라는 임무를 받는다. 이상하게도 미키와 함께 외계인을 해치우는 게이머들은 모두 10대의 청소년.
이들은 게임 안에서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죽기에, 그들의 게임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게다가 현실 세계를 무사히 지키려면 이 청소년들이 외계인을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래야 하는 걸까? 이 작품은 후속작으로 PUSH와 CRASH 가 있다.
여덟 번째 책. 'The Eye of Minds' by James Dashner (2013)
<메이즈 러너>의 작가 제임스 대시너의 작품으로 무대는 거대한 미로가 아니라 가상현실의 세계 VirtNet이다. 마이클은 게이머들이 다 그렇듯 게임 안에서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보낸다. VirtNet은 현실에서 벗어나 돈을 내는 만큼 자극적이고 재미난 가상현실을 서비스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죽을 염려 없이 모험을 즐기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데, 뇌의 깊숙한 부분을 자극하는 만큼 중독성이 크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가상의 세계에 해커가 등장해 사람들을 뇌사 상태로 만들었다. 해커는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 가상세계 운영자들은 해커는 해커만이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해 마이클을 영입하지만 그는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신이상이 될 수도 있다. 마이클의 미래는 어찌 될까?
아홉 번째 책. 'In Real Life' by Cory Doctorow and Jen Wang (2014)
안다는 시간만 나면 대규모 멀티 플레이어 롤플레잉 게임 Coarsegold Online을 즐긴다. 실제 세계에서는 별 특징 없는 평범한 청소년이지만 게임 안에서 안다는 리더, 파이터, 영웅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전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안다는 게임 안에서 금을 파는 농부 캐릭터인 중국인 레이먼드를 사귀면서 경제, 사회, 정치, 행동주의, 젠더 문제 등 광범위한 사회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이 아름다운 그래픽 노블로 묵직한 내용을 잘 소화해주고 있다.
실제 세계에서는 별 특징 없는 평범한 청소년이지만 게임 안에서 안다는 리더, 파이터, 영웅이 될 수 있다.
열 번째 책 'The Leveller' by Julia Durango (2015)
닉시는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현실 세계로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의 모토는 ‘한 시간 안에 집으로!’ 십 대를 자녀로 둔 부모들은 아이들이 게임 속에서 놀 것이 아니라 얼른 현실로 돌아와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공부하기를 바란다. 어느 날 닉시는 자살 유언을 남기고 가상현실 게임 MEEP으로 들어가 행방불명되어 버린 아이를 찾아달라는 부모의 부탁을 받았다. 이 일은 위험할수록 보수가 좋다. 윈을 찾아 MEEP으로 들어간 닉시는 이 모든 상황은 아이가 원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게임 속에서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지의 존재는 왜 윈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일까?
열한 번째 책. 'War Cross' by Marie LU (2017)
에미카는 웨이트리스이면서 게임 세계의 현상금 사냥꾼으로 일하는 십 대 청소년이다. 돈이 없는 십 대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까? 그녀는 특수한 안경을 쓰고 가상현실 게임인 Warcross에 접속해 불법 거래를 일삼는 범죄자들을 잡는데, 게임의 창시자인 히데오가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본 뒤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히데오는 게임에 접속하는 특수렌즈를 만들어 게이머들이 더욱 실감 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지만, 렌즈를 제거한 뒤에도 게이머의 뇌는 계속 게임에 접속된 상태로 있게 만드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이렇게 하면 나쁜 생각을 하는 뇌를 교정할 수 있고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에미카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야기가 단조롭고 결말이 예상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이와 비슷한 설정의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열두 번째 책 'The Battle' by Karuna Riazi (2019)
한국 드라마 애호가이면서 조상이 이슬람이나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루나 리아지가 쓴 십 대를 위한 게임 소설로, 주만지를 연상시키는 전작 The Gauntlet의 후속작이다. 12살 아마드 미르자는 동급생 친구 위니와 함께 친척이 보내준 가상현실 게임 Blood and Iron에 접속한다. 그러니 이들이 게임에 접속하는 순간 뉴욕의 시간이 멈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쁜 뜻을 가진 캐릭터가 나타나 세계를 장악하려 한다.
결국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12살 어린이들, 아니 청소년이라고 해야 하나! 이들은 어떤 전략으로 세상을 구할까?
열세 번째 책 'SLAY' by Brittney Morris (2019)
17 세의 키에라 존슨은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 Jefferson Academy에서 유일한 흑인이다. 또한 그녀는 비밀 멀티 플레이어 온라인 롤플레잉 카드게임 SLAY의 개발자이면서, 게임 속에서는 누비안 족 캐릭터로 분장해 흑인 게이머들과 어울린다.
그녀는 오직 게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한편 10대 청소년이 SLAY 세계에서 분쟁으로 살해당하자 현실 세계에서는 SLAY 게임은 인종 차별과 소수자를 억압하며 각종 폭력단체와 갱단의 집합지라고 여긴다. 키에라는 SLAY세계에서 백인 차별에 관한 각종 협박에 시달리며 더 이상 편안한 곳이 아님을 깨닫는다. 키에라가 현실 세계와 게임의 세계에서 모두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세계를 지키려면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해야 할까? 저자를 닮은 책의 표지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청소년은 가상으로 구축된 게임 세계에서 친구를 사귀고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데, 이들은 어리고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유쾌한 구석이 있어 어른들은 하지 않을 선택과 행동을 한다.
나아가 어른들은 상상도 못 할 규모의 인류애를 가지고 있으며 이타적이고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런 속성 때문에 청소년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디스토피아로 그려지는 SF에서 세상을 구원할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실제 세계에선 볼품없지만 게임 세계에선 영웅이 된다는 설정은 자칫 청소년들이 게임을 현실 도피처로 삼으려 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 관심받지 못하고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재능이 미래의 세계에선 아주 중요한 재능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SF소설은 현실을 도피하라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청소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른들이 알아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자, 이제 청소년을 이해하고 어른들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지 알고 싶다면 청소년이 주인공인 SF를 읽어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들과 가볍게 들를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제3의 공간들을 소개하는 뉴스레터가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찾아갑니다. 구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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