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템, 국민 장난감보다는 우리 집만의 장난감 원칙을!
[아이와 가기 좋은 제3의 공간]에서는 김남매 엄마이자 리틀홈 CCO, 이나연 님이 직접 가보고 고른 다양한 공간을 소개합니다.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놀이터 중에서 익숙한 공간이지만 새롭게, 다르게 놀아볼 수 있는 공간이나 미술관 + 놀이터, 박물관 + 공원처럼 여러 공간이 결합되어 있어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 방법을 바꿔가며 다양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이 한창 친구와 어울려 놀 때라 이웃집에 놀러 갈 일도 종종 있는데 신기할 정도로 대부분의 집 안 풍경이 비슷비슷하다. 비슷한 크기의 텔레비전, 비슷한 형태와 색상의 소파, 심지어 (아이의 성별과 연령에 따라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책장에 꽂힌 책과 장난감의 종류까지 비슷하다. 이 집 저 집의 장난감을 모아 함께 가지고 논다면 자기 것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울 정도다. (물론 아이들은 귀신같이 자기 것을 알아보지만)
국민 문짝으로 시작해 웃돈을 치뤄가면서라도 구해야 했던 변신 자동차와 신상 팽이, 어느 집이나 한 질씩 들인다는 전집, 비싼 가격에도 홈쇼핑에서 연일 매진이던 교구 같은 것 말이다. 나 역시 내 아이만 없어서 속상해하는 건 아닐까, 뒤쳐지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에 구매를 고민했던 아이템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우리 아이들은 핫한 장난감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덕에 쇼핑몰의 인기 아이템을 저격하던 나의 쇼핑 의욕은 크게 꺾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장난감에 관한 합리적인 의심과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21세기 육아와 교육의 화두는 개성과 창의성의 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대부분의 아이들은 창의력 계발에 좋다는 아이템을 똑같이 나누어 갖고 비슷비슷하게 생긴 공간에서 놀며 자라고 있는 것인가? 이상하고 이상했다.
나는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종의 장난감, 100개의 놀이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배에서 나고 자란 쌍둥이도 성격, 취향, 재능이 다르다는데 하물며 다른 집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라면 저마다의 것을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똑같이 생긴 공간에 살아야 한다면 적어도 장난감만이라도 다르게 가지고 놀아야 하지 않을까?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나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나름의 장난감 원칙을 세워 나가기 시작했다.
양육자라면 누구나 장난감에 관한 의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굳이 언급하거나 정리해보지 않았을 뿐. 예가 될까 싶어 우리 집의 원칙부터 공유해보려 한다. 이제부터 서술할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므로 참고만 하시고 우리 집만의 장난감 원칙을 만들어 보시면 좋겠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을 틈 타 한 번쯤 우리 집을 제3의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좋은 장난감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내 아이의 취향과 성향에 딱 맞는 장난감을 고르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우리 아들의 경우 자동차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온 집을 다 덮을 정도의 도로, 백대의 자동차도 거뜬히 주차할 수 있는 주차타워를 원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으론 어림없는 스케일이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상상력으로 ‘있다 치고’ 놀이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주어진 장난감의 크기와 상황에 맞게 의도와 상상을 줄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놀이는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경험상 어느 정도는 실물이 뒷받침되어야 아이들의 상상력도 수월하게 확장되어 나간다. 우리에겐 초대형 도로 매트는 없지만 재료 수레가 있었다. (재료 수레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클릭)
세상에서 가장 큰 미니카 주차장도, 고가도로도, 도개교도 만들면 간단히 해결이다. 손재주가 없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 어설픈 장난감도 번듯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상상력이 있으니 말이다.
+ 김남매가 뭘 가지고 만들며 노는지 장비가 궁금하다면?
다 만들어 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기성 제품에도 여러 장점이 있으므로 함께 활용하면 놀이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장난감을 구입할 때 가격, 크기 등 고려할게 많지만 내가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아이의 놀이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제품인가’다.
내가 생각하는 놀이의 확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다.
첫째, 물리적으로 놀이의 스케일 - 공간의 사용, 아이의 활동량을 확장시킬 수 있는가.
둘째, 아이가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하며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가.
굉장히 인기 있고 기능도 많고 멋지게 생겼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한 두 가지 정해진 방식으로만 반복하여 놀아야 하는 장난감이 있다. 반면 변변한 기능도 없이 심심하게 생겼는데 놀이의 화두가 되어 아이들의 적극적인 개입을 이끌어내는 장난감이 있다. 예를 들어 레고 같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구성하고 상상하며 놀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장난감이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레고가 있다고 아이의 놀이가 저절로 확장되는 건 아니다. 레고를 좋아한다는 아이들의 놀이 모습을 보면 의외로 설명서대로만 만들어 전시하는 것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이가 자신만의 설계로 작은 것이라도 만들어 낼 때 레고의 진짜 가치가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테마의 패키지를 구입하는 것보다 기본 블록을 많이 구비하는 편이 낫다. (그 편이 가격도 훨씬 저렴하다) 자동차나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에겐 레고 세트에 들어있는 바퀴가 턱없이 부족하다. 고맙게도 레고는 바퀴만도 추가로 구입할 수 있다!
다른 종류의 장난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차 장난감의 경우 기찻길이 중요하다. 기찻길 피스가 적으면 한자리만 뱅뱅 도는 정도에서 그치게 된다. 기찻길은 많으면 많을수록 아이가 시도해 볼 여지가 늘어난다. 그래서 여러 브랜드와 호환이 용이하거나 기찻길만 추가로 구입이 가능한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 운 좋게 누가 물려준다 하면 즉시 달려가 얻어와야 한다!
어떤 장난감이든 ‘확장’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여 고심한다면 다양한 놀이법을 발견할 수 있다.
소꿉놀이 장난감의 경우에도 그릇류만 구입하고 음식은 색종이나 클레이 같은 것으로 만들어 놀게 한다거나, 인형놀이를 좋아하면 옷이나 액세서리를 만들어 보거나, 블록 장난감 등을 조립해 가구나 집을 만들어 함께 놀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이런 게 바로 일상의 창의융합 아닐까?
장난감을 사준 것으로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 장난감을 고를 때부터 확장이 용이한 것을 심사숙고하고, 이후엔 아이의 노는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그 장난감을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적절히 건드려주어야 한다. 장난감이 많다고 절로 잘 노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엄마들 사이엔 소위 연령별, 성별에 따른 필수 장난감이 있다. 이런저런 장난감을 두루 가지고 놀아야 제대로 성장할 거라는 생각에 어느 집에 가나 장난감 가게를 옮겨온 듯 다양한 종류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취향과 성별이 다른 아이들을 키워보니 장난감이 많다고 다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고, 성별에 따라 구분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아이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 유독 좋아하여 ‘깊이 파는’ 장난감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루두루 장난감을 갖추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종류 한 두 가지를 부족함 없이 챙겨주는 쪽을 택했다. 유행하는 변신 로봇은 하나도 없지만 기찻길은 온 집에 깔아도 될 만큼 많은 식이다. 한 가지 장난감만 가지고 놀다 보면 편협해질 것만 같지만 나의 경험상 놀이가 깊어질수록 아이들의 사고와 놀이방식이 자연스레 넓어졌다. (기차가 변신을 한다!)
장난감의 깊이를 갖추려면 쇼핑몰을 들여다보기보다 아이의 흥미와 놀이 방식을 관찰하는 것에 훨씬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유아용 제품은 유독 알록달록한 색감에 캐릭터 범벅이거나 재질도 플라스틱 등으로 가볍게 만든 것이 많다. 인기 캐릭터라는 이유로 마감도 미감도 형편없는 것을 비싼 값에 파는 경우도 흔하다.
나는 아이들이 장난감을 통해서도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안목을 길러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딸이 디즈니 공주에 한창 빠져있을 때 왠지 인형을 하나 사줘야 할 것 같았는데, 플라스틱 공주 인형은 만화 속 얼굴과 달라서 싫다고 단호히 이야기하는 통에 결국 하나도 사지 못했다.
기차를 좋아하는 아들도 그 유명한 토마스 기차는 너무 눈을 부릅떠서 무섭다며 자신이 보기에 멋진 기차를 고르기 위해 몇 주나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캐릭터가 있으면 무조건 좋아할 것이다.’ ‘유아용이니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사실 어른들만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접함으로 그 능력이 더 향상되는데 오랜 시간 곁에 두고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꽤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장난감 하나를 고를 때도 심미안을 작용해야 한다. 가격에 부담이 없어 잠깐 가지고 노는 것이라면 모를까, 오래 소장해야 할 장난감이라면 더더욱 아이들의 의견을 물으며 우리 가족의 눈에 아름다운 것을 고르려 노력했다. 같은 아이템인데 단지 디자인과 재질 때문에 가격이 높다면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기꺼이 값을 더 지불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가까워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도 많지만 우리가 아름답다 여기며 아꼈던 것들은 버리지 않고 곁에 두고 있다.
아름다운 장난감은 소모되는 놀잇감을 넘어 취향과 추억이 담긴 보물이 된다.
나는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아이와 ‘함께 노는’ 방법을 고민한다.
아이와 어른은 인지 수준이나 경험력이 다르기 때문에 자칫하면 어른이 놀이를 일방적으로 끌어가기 쉬운데 적절한 놀이 아이템을 선택하면 이를 쉽게 조율할 수 있다. 룰이 없어 자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놀이와 달리 보드게임은 정해진 룰을 따라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가 대등하게 어울릴 수 있어 특히 권하고 싶다.
보드게임의 장점은 이 외에도 여러 가지다. 3-4인이 모여야 가능한 게임이 많아 육아에서 제외되기 쉬웠던 아빠까지 열외 없이 연합해야 하며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고모까지 함께 할 수 있는 다인용 게임도 많다.) 지는 것 싫어하고, 제멋대로 하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패배를 받아들이고 규칙을 준수하며 사회성을 배울 수도 있다. 가격대도 다른 장난감에 비해 합리적이다. 단점이라면 보드게임은 워낙 종류가 방대하여 처음엔 선택하기가 어렵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즐긴 보드게임을 리틀홈에 여러 개 리뷰하였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이의 성향과 수준을 고려하여 선택하는데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다.
장난감은 아이들 일상의 큰 부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선택하는데 내 아이의 취향과 필요보다 주변의 이야기, 광고와 유행 등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잘 놀게 하는 장난감은 아이가 머무는 모든 공간을 놀이터, 제3의 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집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아이를 자기답게 키우고 싶다면 우리가 장난감 하나까지도 원칙대로 고르는 별나고 극성스런 일상의 연구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 플라스틱 빨대 장난감이 궁금하다면?
글: 리틀홈 CCO 이나연님
편집: C Program Play Fund 김정민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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