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감당할 수 있을까
부모님이 이제 근처로 오셨다. 동생네와 우리집에서 가까운, 그러니까 부모님, 동생, 우리집이 삼각형 구도로 떨어져있다. 차로 한 15분 거리.
앞으로 살게 될 아파트는 거실에서 정면으로 새로 산 밭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일부러 밭 근처로 집을 얻어드렸다. 이미 지난 주 토요일에 이사갈 아파트에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에어컨 설치 등을 했다. 그날 아빠는 그 집에 오셔서 막걸리를 사 드시곤 자고 가시겠다 하셨다. 다행히 새로 침대가 들어와서 급히 이마트에 가서 침구류를 사서 꾸며드렸다. 아빠는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그 땅은 정말 어렵게 구했다. 정말 부동산에 나온 땅은 다 보고 다녔는데, 아빠 마음에 들지 않아 해서 난감했었다. 다행히 이 땅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주인이 갑자기 마음을 돌려 안팔겠다 해, 웃돈을 얹어 샀다. 처음에는 너무 분해 하시더니, 이제는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놀러오라며 자랑을 하신다.
오늘이 이사날이었다.
왠만한 건 다 버리고 오자 했는데, 물건 버리지 못하는 부모님 성격상 또 다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보지도 않는 책들이며 예전에 썼던 레포트, 틀지도 못하는 카세트 테이프, 술은 다 먹고 인삼만 남은 인삼주통...
이삿짐 트럭을 떠나 보내고는 이제는 팔아 남의 소유가 된 밭에 들러, 지난 주에 캔 고구마 10상자쯤과 농막에 있었던 짐들을 내차와 아빠차 트렁크에 테트리스처럼 쌓아 옮겨왔다. 새로 산 밭의 측량이 이제 끝나, 앞으로 복토를 하고 농막을 새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일부 짐들은 우선 이 아파트로 옮겨두기로 한 것이다. 밭을 팔면서 10월 말까지 기존에 소유했던 밭의 모든 짐들을 빼주겠다고 했건만, 아직도 그 농막에는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모르겠을 짐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다행히 우리 트렁크에 바리바리 싸들고 온 고구마며, 바베큐 그릴, 낚시용품 등 온갖 잡동사니들도 이삿짐 사다리차를 통해 아파트에 올릴 수 있었다.
점심에 짜장면을 시켜 이삿짐 업체 직원들과 먹었는데, 아빠는 짐 옮겼더니 너무 힘들다며 한잔 해야겠다며 점심 대신 막걸리를 드시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계속 드셨다. 이미 만취.
이삿짐 업체 사람들의 짐 정리를 끝내기도 전에 그 혼잡한 공간 속에 아빠 친구 부부가 오셨다. 그새 이 집에 놀러오라고 연락을 하셨나보다.
꼬인 혀로 친구에게 자랑을 하신다. "저 땅이 내 땅이야. 저거 사느라 돈 많이 썼어. 그래도 후회 안해. 딱 봐도 위치가 좋잖아."
아빠 친구가 맞장구 쳐주신다. 어려서부터 본 아저씨라 아빠 스타일을 아신다.
이미 취했는데 술이 떨어졌다고 더 사오라 한다. 이미 4병은 마셨나보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알콜중독이다. 난리칠 걸 생각하면 그냥 원하는대로 맞추어 주는 게 상책이다. 엄마는 더 사오라 한다. 차라리 드시고 주무시게.
아저씨 부부는 30분도 안되어 몸이 안좋아서 가야겠다 하신다. 이미 취한 걸 보니 얼른 가는 게 상책이라 생각하셨나보다.
이사업체 사람들도 짐 정리를 모두 끝내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복도에서 이삿짐 업체 직원이 나에게 그랬다. 요즘 저런 분 없는데, 어머니 대단하시다고. 아버지 때문에 많이 힘드시겠다고.
아, 수치스럽고 속상했다.
그렇게 모두 보내고 입주 신고, 가스 연결, 인터넷 연결 신청 등을 처리하느라 난 남아 있었다.
계속되는 아빠의 술주정과 잔소리 만으로도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잠깐 엄마를 데리고 나왔다. 금방 취하는 분이 오늘따라 한 6병은 드셨으니 이미 주무실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들어갔더니 주무시고 일어나신 건지, 아니면 안주무신 건지 모르겠지만 깨어 있으셨다. 엄마와 우리를 또 들들 볶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무시지도 않고 하루 종일 취한 상태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엄마는 늘 아빠가 술을 드실 것 같으면 우리를 보내셨으니까.
올케도 오후에 잠시 왔다가 조카 핑계를 대고 금방 갔다. 난 댈 핑계도 없었다.
엄마를 생각해 왠만하면 저녁까지 같이 있으려고 했는데, 아빠의 잔소리와 성화에 진이 다 빠져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집에 간다며 나왔다.
집에 오는 길에 속상해 울었다. 엄마의 일상은 매일 저 술주정을 받아주는 것이었을텐데..
평생 그걸 그냥 받아주고 맞춰 주던 엄마가, 그리고 내가, 우리 가족이 너무 짜증이 났다.
이제 가까이 이사했으니 그걸 더 가까이서 자주 볼 것을 생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아빠의 주사는 갈수록 더 심해지지만 가족도, 의사도 말리지 못한다. 이미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여러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결국 실패, 그냥 무기력하게 맞춰줄 뿐이었다. 그래도 불쌍한 엄마를 위해서는 우리가 가까이 있어야만 했기에 이쪽으로 모신 거다.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하루의 기억을 잊기 위해서는 생각을 딴 데로 돌려야 했다. 다행히 집와 메일을 열었더니 프로젝트 책임자의 추가 분석 요청이 있었다. 차라리 일하면서 기분 전환하자. 음악을 틀어놓고 일을 하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가 오늘 하루 종일 술을 드신 건 의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습관일까?
만약 80년 살던 곳을 떠나 와 낯선 곳으로 보금자리를 맞게 된 생경함 때문이라면, 딱 오늘 하루만 이해하겠다. 오늘 딱 하루만. 좋게는 생각 못할 것 같다.
동생네가 그랬다. 이제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근처에 온 이상, 아빠는 엄마를 볼모로 더 심해질 거라고. 그만 울자.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집안일은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거 아니라해서 이런 글은 일기에나 썼었는데, 나도 왜 여기다 쓰는지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답답함에 어디다 털어놓고 얘기하고 싶었나보다. 어쩌면 지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