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ro Nov 13. 2020

누구도 함부로

학원 수학 강사일을 10 가까이했다.
대학에서 학생회 생활을 하느라 나이도 많은데 학점을 못 챙긴 채로 학교를 나왔다. 취업은 어려운데 당장 먹고  돈이 필요하니, 일단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 쉽게 구해진 학원강사 자리였다. 시간 대비 보수도 많고 하다 보니 점점 노하우가 생겨 힘도  들고, 경력 붙어 인정도 받으니 그만둘 이유가 없어 계속했다. 결혼 전에는 대형학원에서 일했고 결혼하고  쉬다가 3 전부터 용돈이라도 벌어야겠어서 파트타임으로 다시 시작했다. 지금은 월수금요일마다 마포의 작은 동네 학원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두시에 출근해서 수업 준비를 하다가 시간표대로 아이들이 등원하면 해온 숙제를 채점하고 틀린 문제를 고치게 한다. 실수를 찾아 한번에 고치면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문제들은 팁을 주고 다시 풀게 한다. 숙제가 마무리되면 오늘 수업 내용의 개념을 설명한다. 기본문제 몇 개를 같이  다음,  두 페이지의 관련 문제는 혼자 풀게 한다. 나는 교실을 돌면서 어깨너머로 풀이하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그게  답답할 때는 교탁에 서서 잠자코 기다린다.
그렇게 일이십 분 뒤에 채점해보면 가관이다.  전에 설명한 내용을, 중요하다고 두세 번 말한 포인트까지 깡그리 까먹고 엉망으로 풀어놓은 아이는 반드시 있다. 어쩔  대다수가 그렇다. 새어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설명이 부족했겠지, 생각하며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한다. 중요 부분, 실수 많이 나오는 부분은 여러 번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다시 풀게 하면 대부분은  나은데 끝까지 어디 갔다 온 애처럼 말도 안 되게 풀어놓는 아이가 반드시  있다. 인내심을 끌어 모을 단계는 거기서부터다.
문제 풀고 채점하고, 배우고 반복하고, 틀리고 고치고, 아이들과 나는 수업 시간 내내 줄다리기한다. 아이들은 조금 나아갔다 되돌아왔다, 알았다 까먹었다 하고 나는 밀어주었다 당겨주었다, 대견했다 속이 터졌다 한다.

이십 대고 미혼이었을 때는 에너지가 많았으니 가르치는   잘했던 거 같은데 애들이 예쁜 줄은 몰랐다. 대부분 그맘때 애들은  안 듣고 시끄러운 데다, 잘해주면 기어오르고 무섭게 굴면 불만이 터졌다. 사실 수학 지식과 풀이 기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크고 작은 감정 문제들을 수습하며 면학 분위기로 수업을 끝마치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 생각하면 아직 어린 어른일 때라 연애가  안되거나 집안 문제로 속이 시끄러우면, 어제도 못하고 오늘도 못하는 아이들이 야속해서 짜증이 불쑥불쑥 돋아나기도 했고, 가끔은 충고랍시고 사춘기 여린 마음에는 충분히 따가울 말들도 아무렇지 않게 쏘아대곤 했다. 그러다 간혹 감정이 틀어진 아이에게서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상담전화는 길어졌고, 원장에게 한소리 듣고 나서 어깨가 축 처져 퇴근했다. 그럴 때는  아이들이 까다로운 고객 같다고만 생각했지 내가 그 애를 할퀴어서 어쩌나 그런 생각은 못했다.

그래도 가끔은 수업시간 내내  맞춰주고  문제라도  맞으려고 고개를 파묻고 애쓰는 아이들 보면 기특하고, 그 애들 성적이 조금씩이라도 오르면 보람도 느끼고는 했지만 역시 아이들 하나하나와 제대로 가까워지지 못했다. 밥줄이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이니까 매일 정답과 오답 사이에 파묻히고, 원장 눈치보기와 학부모 비위 맞추고, 끝났다 싶으면 돌아오는 끝도 없는 시험대비에 진이 빠졌던 기억만 넘친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기르면서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니 무언가 다르다. 여전히 나는 무서운 수학, 걸리면 죽는다, 그래도 가끔 웃겨 등으로 호불호가 뚜렷한 선생이지만, 자꾸 애들 주변을 서성이며 전에 안 하던 소리를 하게 됐다. 그 애들의 맞고 틀린 문제 말고도 다른 것들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저녁 먹고 왔어? 너는  쉬는 시간에 사발면만 사 먹니? 오늘 추운데 겉옷은? 영어학원은 얼마나 오래 수업해? 안 힘들어? 집에 가면 혼자 있어? 그런 물음들이 매일 같이 생겨난다. 아이들은 사적인 질문들에 때로 얼버무리고 때로 귀찮아하고 가끔은 묻지 않은 것까지 신나서 대답해준다.

전에 없던   하나로,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애들 뒷모습을 그냥 바라보기도 한다. 복도를 울리는 웃음소리,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다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마는 여린 팔들과 저녁의 거리로 뛰어나가는 홀가분하고 천진한 발걸음을 바라본다. 하원길에 신나지 않은 아이는 없으므로 그걸 보는 나도 괜히 기분이 좋다.
그러다가 가끔 내가 알지 못하는 시간들까지 생각하고는 한다
이를테면 무엇인가로  아이를 먹여 저만큼 자라게 만들었을 누군가의 ,  아이가 자라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았을 많은 얼굴들, 작은 몸을  없이  껴안았을   같은 것들. 그 애의 존재가 특별하고 무거워진다. 내가 떠올리고 상상하는 만큼, 아이와 나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그 애를 사랑하는 누군가의 눈으로 바라보면 애들이  예쁘다. 가끔 나도 모르게 얄미워하고 한심하게 여겼던 마음까지 슬그머니 사라진다.

 아이는 아주 많은 시간을 총깡총 건너온 것만 같다. 지금의 나는   없는 시간.
그러고 보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험은  다른 사람의 어린 모습들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지난날을 헤아리고  켜켜이 축적된 시간을 실감하게 되면, 누구도 함부로 그를 미워할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순간의 문장-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