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면 그만인 거다.
‘100일 동안 날마다 스쿼트 100개씩’ 프로젝트를 62일 차에서 잠시 멈추어야만 했다. 중간에 몸이 아파 이틀 정도 하지 못한 것을 제외한다면, 나름대로 순항 중이었다. 물론 프로젝트의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기까지 크고 작은 굴곡이 꽤 있었다. ‘100일 동안 날마다 스쿼트 100개씩’에는 ‘아침 8시 전에 약을 먹고 운동을 하는’ 미션들이 시리즈처럼 연결되어 사실상 챙길 것이 많았다. 처음에는 오전 7시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다.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앉아 지금이 일어나야 할 시간인지 고뇌한 것 도 여러 번. 운동복을 갈아입고 폼롤러며 마사지볼이며 챙겨 매트를 펴는 순간까지 머릿속의 온갖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며 지금의 생활을 만들어 왔는데, 당분간 운동을 멈추어야 한다니.
면역력이 약해지면 생긴다는 대상포진이었다. 폐와 장기에 퍼져 있는 염증을 줄이기 위해 복용하고 있는 스테로이드가 문제였을까. 고용량은 아니지만 장기 복용했던 탓인지 몸의 면역력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해졌었나 보다. 혹은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어떤 자극을 몸에 주었길래 대상포진이 염증이 있는 내 몸까지 찾아왔을까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약해진 면역력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이 못 미더워졌다.
스쿼트 62일 차에서 63일 차로 넘어가던 날, 나는 어렵게 습관으로 만들어 두었던 아침 운동을 놓아야 했다. 언제 다시 시작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마음이 와르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몸을 챙기기 위해 시작했던 운동이었다. 살면서 ‘홈트’를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고, 헬스는 가장 재미없는 움직임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몸을 이해하고자 시작했던 게 운동이고 스쿼트였는데. 흩어져 있던 근육들을 찾아내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체력을 조금씩 추스르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을 때, 나는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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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은 스쿼트 100개부터’라는 제목으로 이 매거진을 시작했다. 유육종증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한 지 약 한 달쯤 지났을 때였으며,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조금은 우울해하고 있었던 때였다. ‘100일 동안 날마다 스쿼트 100개씩’이라는 S의 뜬금없는 제안이 반가웠던 것은 더 나빠질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2020년 1월 23일, 우리의 스쿼트 챌린지는 시작됐다. 나와 S는 스쿼트 하는 모습을 타임랩스로 찍어 서로 공유했다. 인증샷 같은 거였다. 매일 스쿼트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몸이 피곤할 때도 있었고, 그냥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S는 야근이나 약속이 길어진 날에 새벽에 스쿼트를 했다. 이게 뭐라고 싶다가도 우리는 매일 했다. 매일 영상을 공유하고, 영상이 제때 올라오지 않으면 서로의 안부를 챙겼다. 무형의 서로를 토닥이며 스쿼트 100개를 하는 일상을 만들어 갔다. 조금씩 몸의 변화가 감지되는 것만큼 허물 거리던 운동 습관에도 단단한 근육이 생겼다.
100일의 반인 50일을 성공적으로 마쳤을 때, 나와 S는 서로를 축하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우리가 함께 시작하고 함께 끝낼 줄 알았다. 서로가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대로만 한다면 100일쯤은 거뜬해 보였다.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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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시작했으니 함께 끝낸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내가 대상포진으로 챌린지를 쉬는 동안에도 S는 혼자서 스쿼트를 하고 타임랩스 영상을 업로드했다. 나처럼 아프지 않고 매일매일 이어 할 수 있다는 것에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점점 벌어지는 격차를 바라보는 마음이 그저 편하지만은 않았다. 언제 저걸 따라잡나, 사실 따라잡을 수도 없는 거 아닌가.
멀어지는 격차보다 쉬는 동안 어렵게 만들어 놓았던 습관이 망가질게 무서웠다. 약을 먹고 운동을 하던 아침시간에 구멍이 나버렸다. 어떻게 구멍을 메꿔야 하나 싶다가도 결국엔 “그냥 쉬세요”라고 조언한 의사의 소견을 전적으로 따르기로 했다. 약 2주 정도가 지나자 등에 오돌토돌 띠를 두르고 있던 포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제 운동을 해도 괜찮겠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는 나에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쾌한 목소리와 반짝이는 눈으로 답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몸은 운동하지 않는 일상에 꽤 적응한 듯했다. 다시 운동을 챙기는 습관을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고 그럼에도 다시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설렘이 공존했다.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은 62일 차를 떠올리며, 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63일 차를 이어나갔다. 친구들은 나의 두 번째 시작을 따뜻하게 반겨 주었고 그날 밤 S는 82일 차를 완료했다는 영상을 올렸다. 내 몸을 더 이해하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었고 프로젝트였지만, 잠시 멈추었을 때 매일 영상을 올리던 S가 있었기에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행동’이 ‘습관’이 되는 놀라운 비법 중에 하나는 그 행동을 함께 하는 ‘좋은 파트너’일지도.
비록 S와 동시에 100일을 채우지는 못하더라도 괜찮은 일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날을 세고 있고, 스쿼트 영상을 올리고 있으며, 함께할 파트너가 있고, “아무렴 어때” 하고 응원을 해 주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두 번째로 시작해도 괜찮은 일이었다.
함께 시작하고 함께 끝낸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아도 실패했다거나 의미가 사라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나는 스쿼트 100개 100일 프로젝트에서 이제 63일 차를 완료했고, S는 82일 차를 끝냈을 뿐이니까.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 거다.
글과 함께 소개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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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ego & Medasin "Sunday Vib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