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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PD Jan 09. 2022

걸어야 만날 수 있다

미국 서부 트래킹 코스

핸드폰에 카메라가 3개인 이유가 있다. 숲을 바라볼 때와 나무를 안는 기분은 같을 수 없다. 바라다보는 바다와 스노클링으로 들여다보는 바닷속 세상은 완연히 다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질주에 쉼표를 마련한다. 또 다른 감각으로 서부를 받아들여 보려 한다.


아치스 국립공원 Delicate Arch


비지터 센터 추천 1순위다. 한 시간이 넘는 트래킹 코스다. 멀리서 봐도 충분하리는 판단하에 짧은 산책 코스를 따라 전망대로 오른다. 너무 나도 작게 보이던 아치는 가까이 오라는 신호가 희미하게 감지된다. 본격 트레킹 도전에 나선다.


신발을 갈아 신는다. 물통을 가득 채운다. 한 시간 넘는 트레킹 코스는 나무 그늘이 없다. 화장실도 없다. 사람들의 줄만 이어질 뿐이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맞추던 동료가 바뀌어 있음을 깨닫는다. 마주오는 이들에게 길을 양보하려 암벽에 바짝 몸을 붙여본다. 햇볕을 머금은 열기가 전해져 온다. 문득 시야가 열린다. 시간이 멈춘다.


그리스 극장 무대를 닮은 거대한 사암 위에 16미터 높이의 아치가 올려져 있다. 비와 바람은 인격을 가진 조각가다. 원대한 계획이 없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극장에 둘러앉아 정신을 수습한 이들이 길게 줄은 선다. 홀로그램이 아님을 확인한다. 아치는 인생 샷을 담으려는 피사체의 존재감을 지워버린다.


평형감각을 혼미하게 하는 경사면에 앉아 멍 때린다. 문득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지금도 미소를 띠게 하는 순간 포착이다.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발길을 돌리기 위해서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거라 최면을 건다. 암벽이 아치를 시야에서 앗아가기 바로 전까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다. 저 멀리 주차장을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 위에는 말이 줄어들어 있다.


옐로우스톤 Norris Geyser Basin


이틀 동안 이어진 개성 넘치는 hot spring, geyser 등과의 만남은 noris 입구에서의 무덤덤함이 된다. 산책 코스를 정하기 위해 안내 표시판 앞에 선다. 그림으로는 노리스가 설명될 수 없음은 입구를 통과하고 바로 확인된다.


나무로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에는 난간이 드물게 설치되어 있다. 길 옆으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뜨거운 연못들이 이어진다. 억척스러운 생명력은 다채로운 색을 만들어 낸다. 마른 구멍으로는 땅 아래의 세상을 담은 연기들이 뿜어 낸다. 어쩌다 이곳에 이르러 생을 마감했는지 알 수 없는 동물의 사체도 눈에 띈다. 알 수 없는 과거 언젠가는 나무도 살 수 있던 땅이었음을 알려주는 화석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을 걸어도 노리스 지역의 1/5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그 옛날 이곳에 다다른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진다. 유럽에서 온 탐험가들은 진실을 전하고도 허풍쟁이가 된다. 보지 않은 눈은 영화나 소설의 상상력을 존경하게 된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고서야 지구에 발을 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브라이스 캐년 Navajo Loop Trail


24시간 여정의 마지막은 저녁노을이다. 거인들이 소원을 빌며 조심스럽게 쌓은 듯한 붉은 돌탑들 너머로 노을이 진다. 2000m가 넘는 고지대다. 5월에도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차가운 강풍으로 서로를 부둥켜안게 한다. 탑의 기단부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가 시야에 들어온다. 호기심이 동한다. 하지만, 찬 바람은 일행들을 차 안에 머물게 한다.


5년이 지나 탑돌이 일정을 포함시킨다. 노을 바라다보던 트래킹 입구 앞에 선다. 대지는 태양의 힘으로 서서히 온기를 회복한다. 가파른 절벽을 간신히 지그재그로 만든 길을 따라 돌탑들에 다가선다. 아슬아슬하게만 보이던 기둥들은 의외로 듬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탑들 사이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가늘고 길게 뻗어 있다.


탑의 기단부에 다다르자 기둥들은 현실감을 잃는다. 아마추어의 실력으로는 담아낼 수 없다. 그저 눈과 바람으로 작품을 느낄 뿐이다. 아는 만큼 꿈꾸고, 본 만큼 상상할 수 있다면, 또 하나의 무기를 장착하는 시간이다.


세콰이어 국립공원 General Sherman Tree


2000m를 차로 오를 수 있어 다행이다. '아름드리'는 한국의 아기자기한 숲을 위한 표현이다. 마천루로 가득한 맨해튼의 좁은 거리를 연상케 하는 세콰이어들의 둥지에 들어선다. 수차례의 산불로 쓰러져간 동료들을 바라보며 2000년을 넘게 살아남은 결과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라는 제너럴 셔먼 트리를 만나기 위해 주차장을 찾는다. 차를 세우려다 버스만 정차하는 공간임을 확인하고 핸들을 돌린다. 조금 더 오르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차를 세우고 상쾌한 숲 속 나들이에 나선다.


숲이 뿜어내는 공기는 긴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에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준다. 쓰러진 나무들은 지금껏 버티고 있는 나무들이 살아온 흔적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었던 작고 여린 시절이 있었다. 불에 덴 흔적은 생채기로 남아있다. 지금은 성인 십여 명이 둘러서도 모자란 건장함으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트레킹 코스의 끝은 버스 승차장이다. 피곤함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자 버스가 들어온다. 주차장에서 차를 몰고 바비큐 장이 있는 구역으로 산길을 올라본다. 6월 중순에도 지난겨울의 흔적이 여기저기 드러난다. 가끔 공원 순찰차만이 지나다니는 한가로움이 좋다.


메사 베르데 Cliff Palace


고지대의 평평한 대지 사이로 협곡이 만들어진다. 지붕에 해당하는 대지에는 옥수수 밭이 펼쳐지고, 절벽에는 삶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천년이 넘지 않는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활 터전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악한 환경으로 몰아세웠을까. 가이드는 몇 가지 가설을 들려준다.


협곡으로 갈라선 대지를 달리는 도로에는 View Point들이 마련되어 있다. 반대편 절벽에 자리한 주거 공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약 시간에 맞춰 계곡을 건너 가이드 투어에 합류한다. 좁은 산길과 사다리로 이루어진 진입로를 지나면 하얀 벽돌로 건축된 도시가 나타난다. 종교의식을 위한 공간, 마을 회의 공간, 너무나도 작은 출입구를 가진 다층의 주거 공간들이 빼곡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의 흔적이다. 아니, 고대 선조들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힘겨웠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애리조나, 뉴 멕시코, 유타에는 인디언들의 흔적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간혹 사진으로 접하며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메사 베르데와의 만남은 더 많은 트래킹을 예약하게 한다.


가야 할 곳들


헬기가 아닌 두발로 그랜드 캐년을 만든 콜로라도 강을 만나는 트래킹.

캐년 랜드의 니들즈와 미로를 찾아 나서는 트래킹.

아치스의 하드 코아 트래킹 코스라는 악마의 정원.

애리조나의 눈처럼 하얀 모래사막 하이트 샌드 트래킹.

자이언 캐년의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트래킹.

새도나의 데블스 브리지 트래킹.


사진은 육안으로 확인하고픈 충동을 불러온다. 2차원 정보는 4차, 5차원적 체험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아직도 걸어야 할 곳들은 많아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혼자 걷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맥락 없는 대화로도 충분한 동행과의 시간이 주는 기쁨도 있다. 이제 막 여행은 시작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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