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1년간 서빙 알바를 했던 적이 있다. 가족들은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에 5시간 알바를 하고 나면 마치고 나서도 이른 오후다. 다른 사람들이 다 일을 하고 있을 시간에 나는 종종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간다.
서울에 있는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 전시회, 예쁜 공원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전쟁 기념관에 적혀 있는 수많은 이름들을 보며 잠잠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궁을 돌며 옛날의 이곳은 어땠을지 공상하기도 했다.
서울 식물원에는 씨앗 도서관이 있다. 나팔꽃 씨앗을 받아 심어 보기도 했다. 나팔꽃은 아주 길게 자라 창가를 둘러쌌다. 작은 봉우리가 피고 그 안에서 씨앗이 나왔다.
수박씨나 토마토, 참외 등등 마구잡이로 키우다가 뿌리 파리가 꼬여 전쟁을 치루기도 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하고 아주 먼 우주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잡다한 것을 토론하거나 계획하는 모임이었다. 아주 낯선 사람과 죽기 전 날 무엇을 할지에 대해 대화하기도 했다.
매일 같이 무엇을 할지 정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알바를 마치고 나면 햇빛 아래를 한참 걸으며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
살아간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제야 내가 결정하고 선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지시한 대로 살아가지 않으니 막막한 시간이었지만 나름의 기쁨이 있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걷다가 선릉과 정릉에 들어갔다. 날이 흐려 비가 조금씩 내렸고 숲길에선 비릿한 흙내가 났다. 나뭇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이 머리나 등에 떨어졌다. 내 머리 위 수없이 뻗어나간 가지가 보였다. 서로 얽혀있는 복잡한 그 나뭇가지가 나에게 말해오는 듯했다.
‘무의미한 것은 없어. 가지가 갈래로 뻗어나가 저 하늘을 뒤덮는 것처럼, 모든 건 의미가 있는 거야. 누적되어 가는 거야. ’
내가 실수한 날들, 이겨낸 날들, 좌절하고 울고 포기한 날들,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은 날들. 모든 날들이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가고 나무의 두께가 더해지는 ‘과정’ 임을 깨달은 순간 내가 대견스러워졌다.
어쩌면 나는 내가 넘어질 때마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것인지 모른다. 모든 게 망가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허망함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나의 생각은 틀렸다. 내가 살아온 나의 나이테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자라지 않는 나무는 없다. 위로 자라지 않는다면 아래로 뻗어갈 것이다.
남들이 시간 낭비라 부르던 그 해가 지나고, 나는 더 먼 곳을 혼자서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드닝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식물과 사람은 꽤 비슷한 면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은 훨씬 더 다양한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귀중한 시간이었다.
무의미한 것은 없어. 모든 건 누적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