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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경 Oct 24. 2020

비속어 쓰며 힘을 과시하는 사람, 이름을 부르자.

OOO씨 말을 왜 그렇게 하죠, 귀 소금물로 씻어야 겠다.

 비속어 쓰며 본인을 과시하는 사람은 조용하게 이름을 불러보자. 본인의 이름을 조용하고 명확하게 부르면 사람은 순간 긴장한다. 이름을 모르면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요’ 하고 질문을 하자. 이럴 때 ‘내 이름을 알아서 뭐하게’라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비속어로 부를 수 없잖아요, 부모님께서 지어준 좋은 이름이 있으신데’라고 하자. 이름을 알려주면 ‘감사합니다. ooo선생님’이라고 하자. 선생님이라고 호칭을 해 주면 사람들은 스스로 본인의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고 조심하게 된다. 어린 자녀랑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게 되기도 한다.  

   

승객: “아이 XX 진짜, 불면증이라 열차에서 좀 자려고 했더니. 이래서 난, 애기들 너무 싫어

아이 엄마:‘(미안해하며 남편에게) 죄송합니다. 여보 열차 칸 사이 공간에서 아이 달래고 올게’

남편: ‘당신도 한 숨 자야 되잖아. 열차 칸 사이는 너무 시끄러워서 아이가 더 울 텐데'.

아이 엄마: 다른 분들도 주무시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아이 달래러 갔다가 올게 ‘

남편: ‘아이가 힘들어서 우는 건데 어쩔 수 없잖아. 힘들게 서서 3시간 넘게 있어야 되는데..

승객: ‘저기요, 가실 거면 좀 빨리 가주세요.’ 잠을 통 잘 수가 없잖아요.

남편: ‘ 선생님도 이런 과정을 거치고 어른이 되신 거예요, 아이가 우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죄송하지만 저희도 피해 안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 들으셨잖아요.   

 

 영화 중에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맘충’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원 의자에서 앉아서 유모차를 한 발로 밀며 전화로 수다를 떤다. 그곳을 지나는 직장인이 그런 지영을 보고 ‘팔자 좋다’ 한다. 그들의 눈빛은 ‘아이생각 안 하고 공원 와서 쉬는 맘충이네’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를 보살피기 위해 아이의 눈높이에서 24시간 근무한다.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를 돌보다 보면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 의미가 없어도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어 진다. 하루 종일 긴장의 연속인 생활에서 아이가 울게 되면 온 신경이 아이에게 집중한다. 피곤함의 연속인 생활에 직장 안 다니고 편하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이기적이다.   

  

 비속어로 상대를 무시하면서 본인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곤충으로 빗대어서 상대를 낮추는 비속어가 너무도 많다. 진지충, 한남충, 급식층, 맘충, 틀딱충 등등 정말이지 모든 사람을 다 벌레로 통일을 시킨다. 이렇게 벌레로 싸잡아서 비유하는 내면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면 증오하고 비하하며 본인을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진지충(매사에 진지한 자세를 견제하여 주변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람), 한남충(한국 남자 벌레), 급식충(급식을 먹는 학생들), 맘충(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어른), 이런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제로이다.

   

  비속어로 ‘충’으로 만들고 법으로 정하지도 않은 예의범절을 강요하고 본인들은 대단한 인격체나 된 듯 그들을 모욕한다. 'oo충‘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일상에서 스트레스가 많은데 더 긴장하게 되고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더욱더 받는다. 칸트는 말한다."인간을 다른 창조물로부터 구분되게 하는 것으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격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성에 위배되지 않을"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통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도 상처를 받는다. "자신을 벌레로 여기는 사람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다". 듣는 순간 화도 나지만 반박도 못하게 되면 자존감도 떨어지게 된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배려 사회가 되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피하고 싶어 진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당신이 기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나면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하면서 우아함을 잃지 않도록 하자. 상대방이 원하는 페이스에 빨려 들어가지 말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는 2016년 민주당 전당 대회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은 정치 역사상 최고의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미셸 오바마 부부를 공격하는 트럼프의 행태를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미셸 오바마가 트럼프를 품위 있게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은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갑니다.” 공격하기 위해 비판의 말을 하고 존중 없이 포장하는 말에 상처 받지 말자. 사람들은 상대가 존중해주면 본인도 예의를 갖추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공인도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신념이 무너진다. 아주대학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와 아주대 의료원장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봉사하는 맘으로 외상센터에서 근무하는 이국종 교수이다. 이국종 교수의 3일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존경하는 사람이 많은 상태다.     


의료원장: ‘뭐 이따위 새 X가 다 있어, 이거?

교수: ‘그거는.(말을 하지 못하고 계속 막말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의료원장: ‘놔, 이 새 X야!

교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죄송합니다'.

의료원장: ‘때려치워 이개 XX야 꺼져, 인간 같지도 않은 XX 말이야. 나랑 한 판 붙을래. 너!

교수: ‘아닙니다(기가 죽은 채 대답한다)    


 이 파일이 공개되면서 이국종 교수는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회의 지도층이라는 분의 비속어와 막말로 대화하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막말을 받는 상대가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이국종 교수라는 것에 더 충격이다. 의료원장은 비속어를 쓰면서 본인의 자리를 과시하는 모양새이다. 어린아이도 비속어를 쓰면서 말하면 울어버린다. 하물며 어른이고 인정받는 의사 선생님에게 비속어로 말해서 상대를 겁을 주는 모양새는 좋지 않다. 계속되는 대화에는 의료원장이 ‘난 너를 인간 취급 안 할 거야, 앞으로 그만 나가’ 어떻게 지성인이 지성인을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번 경우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할 수가 없다.     


 비속어와 같이 신조어로 인해 사회적인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신조어 중에는 좋은 뜻도 있지만 안 좋게 표현되는 것이 더 많다. ‘오글거린다.라는 말로 인해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이 마치 죄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나대지 마’라는 말로 인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소심해져 버린다. 비속어로 말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조어 중에 비하하는 신조어가 대화에서 더 큰 상처가 되니 문제다. 손태규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 교수는 말한다. ‘예로 멘붕이라는 단어를 쓰면 이미 그런 의식 세계가 스스로 파괴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언어라는 게 그렇게 사람의 의식세계를 지배하는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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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듯 신조어를 쓰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지는 듯해서 어른 아이 할거 없이 신조어 사용을 빈번하게 한다. 신조어를 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행동의 제약이 심해지면 좋지 않다. 공익광고협의회에서 광고한 광고 중에 ‘학교 폭력-톡 쳤을 뿐인데’에서는 친구니까, 재미 삼아 던진 한 마디가 상대방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무심코 톡 던진 비속어와 신조어 한마디가 언어폭력이 되고, 그 친구들이 가해자로 ‘톡’ 쳐지는 순간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납니다. 지금 나의, 우리 아이의 단톡 방은 안전한가요?라는 광고이다.  

   

 비속어와 좋지 않은 신조어는 SNS상에서도 문제가 많다. 아이들은 요즘 카톡 단톡 방에서 대화 자체로 따돌림을 한다. 초대를 하고서 단톡 방에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초대받은 아이는 상처가 되어도 대화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대화에 답글을 안 하니까 결국 상처가 된다. 아이들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오프모임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고 말할 때마다 반이 비속어이다. 비속어를 쓰면서 말하면 본인이 더 힘이 있어 보인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에게 듣기 싫다고 표현하고 싶으면 '비속어를 빼고 말을 하면 훨씬 잘 알아듣겠는데요'라고 말을 하자.     


 비속어 쓰며 본인을 과시하는 사람에게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자. "김 OO 씨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라고 하자.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비속어를 쓰면서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부모, 형제, 선배, 동료들 중에 존재함이 곧 존엄함인 사람이 있다.  존엄함을 주는 사람은 본인 스스로가 자존감이 높아서 주변인도 보살피는 여유가 있다. 로마의 국부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말한다. 그의 책 <의무론>에서 인간을 특정 짓는 것에는 ‘숭고한 태도’와 ‘우월한 태도’,‘존엄’이라고 한다. 비속어 쓰며 본인을 과시하는 사람에게는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자. ‘O OO 씨 좋은 말도 많은데 비속어로 말하면 당신에 대한 저의 좋은 감정이 사라집니다’라고 경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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